


고려말과 이조초기 이방원派에 끝끝내 반기를 든 우리나라 최초의 유교학자
안향선생을 기려 주세붕선생이 1542년 풍기군수시절에 사묘를 세워 안향의
위패를 봉안하고, 다음 해 학사를 건립하여 백운동서원을 창건한데서 '소수
서원'이 유래한다. 1550년 풍기군수였던 퇴계 이황선생께서 조정에 간하여
'소수서원'이라는 사액을 받게되어 공인된 사립고등교육기관이 됩니다.
이로써 우리 역사에 '패거리정치'가 탄생하게 되고 '끼리끼리문화'가 21세기인
현재까지 그 질긴 생명력을 이어져 오는 역사적인 계기가 마련되는 기념비적인
현장이 보존되게 됩니다. 서원 내에 있는 '충효교육관'이 그 건물의 명칭처럼이나
빌어먹을 박정희式의 냄새를 요란하게 풍기고 있었습니다.







소수서원에 붙은 이름하여 '선비촌', 자랑스레 거금의 입장료까지 받아가며
70여채의 양반촌을 건립하였으니, 그들 소수의 부귀안위를 위하여 희생을
강요 당하였을 다수의 양민이 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입구의 건립
취지문에서도 아주 노골적인 '선비정신의 계승과 올바른 가치관 정립, 그리고
역사관 확립을 위한 산교육장'으로서가 아니라 민중을 더욱 폐민으로, 결국은
산중의 화전민으로 전락시킨 산 기념비로서의 의미가 상당하였다.
세상에! 상민은 교육시키면 양반에게 기어먹을 계기가 되므로 그들이 글자를
깨우치게 해서는 않된다는 저리도 자랑스러운 '서원'의 유학 양반님들이시여..



이 '선비촌'의 저잣거리 상점에서 파는 '찹살강정'의 맛은 지금껏 내가
먹어본 강정 중에서 으뜸이었음을 자랑스럽게 덧붙이면서
이곳 서원에서 500미터 풍기읍 쪽으로 오다 큰 길가 '풍기인삼한우' 가든의
한우등심은 1인분(170g) 2만원으로 기막힌 맛과 저렴한 가격으로 평소 1인분에
3만원~5만원이라는 놀라운 값으로 서민들의 접근을 막아왔던 한우 등심을
푸지게 접할 수 있음을 추가합니다. 금방 잡은 암소 한우의 간과 천엽은 서비스이니
데스크에 미리 부탁하셔야 맛볼 수 있으며, 부위별로 1근에 2만 1천원에서 2만
오천원이면 박스에 냉장 포장까지 집까지 들고 갈 수 있고, 국내에서 가장 긴
죽령 터널을 지나면서 영주와 풍기에 대한 기억에서 씁스레한 '서원'은 어디론가
잠적해 버리고 알싸하게 넘어가던 '한우등심'만 남았으니, 이곳 풍기가 고향인
양반님들의 원성은 온통 내 탓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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