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여성되기
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는다
이것을 일컬어 신비한 암컷이라 말한다
신비한 암컷의 문
이것을 일컬어 하늘과 땅의 뿌리라 한다
미묘하면서도 끊어지지 않아
마치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아무리 써도 끊어지지 않는다
들뢰즈가 말하는 무리와 떼를 이루는 동물 되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무리들 전체의 결연관계나 동맹관계와 같은 물질의 생성적 근원의 상태, 즉 순수한 기관들 없는 몸이 되는 것을 우리는 ‘여성 되기’라고 말할 수 있다. 들뢰즈-가타리가 이야기하는 기관들 없는 몸은 흔히 전통적으로 이야기되는 “무극(無極)이면서 태극(太極)”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러한 무극이면서 태극은 “움직여 양이 되고, 고요하여 음이 되는 것의 본원적 몸(所以動而陽 靜而陰之本體也)”을 일컫는다. 즉, “움직여(사회적 관계를 맺어서) 양(수컷)이 되고, 고요하여 음(암컷)이 되는 것”이 모든 물체가 지니고 있는 기관들 없는 몸의 근원적 성격이다. 따라서 노동자, 시인, 배우, 교수, 변호사 등등이 되는 것은 우리가 사회체의 무리가 지니고 있는 이질적 요소들과 동맹이나 결연의 관계를 맺어서 무엇인가를 생산하여 드러난 생산물, 즉 기관들로 가득 찬 몸의 수컷이 되는 것이고, 노동자, 시인, 배우, 교수, 변호사 등등의 생산물을 생산하도록 고정된 영토로부터 탈영토화하여 기관들 없는 몸이 되는 것을 암컷 되기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들뢰즈의 여성되기와 노자가 이야기하는 암컷 되기는 유교나 플라톤주의의 남성/여성의 이분법이 도사리고 있는 남성지배체제의 지배적 대상으로 추락하는 집단적 여성되기와는 다르다.
인간사회에서 남성/여성의 이분법은 거시적인 국가의 지배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국가철학이 미시적인 가족체제 속에서 아버지의 가부장적 지배체제를 강화하거나 미시적 관계의 권력을 남성의 손에 쥐어주기 위한 단순한 언어의 기호체계일 뿐이다. 따라서 아버지-어머니-나(아들이나 딸)로 이어지는 가족적 권력의 계승체계는 음과 양, 즉 암컷과 수컷으로 구성되어 있는 모든 개개의 몸을 단순히 남성-여성의 단일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치환하여 남성들의 서열관계로 구성되어 있는 지배체제를 더욱 용이하게 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런 의미에서 근원적 기표로 존재하는 남성과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존하고 있는 남성과 여성은 단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형성하기 위하여 수많은 다양성을 주인/노예의 이분법으로 양분한 것일 뿐이다. 따라서 암컷 되기란 밴드와 무리로 존재하는 동물 되기로부터 돌아와 무리의 경계들 속에서 무리들 전체를 지속적으로 기관들 없는 몸이라는 내재성의 장, 즉 모든 것을 생성하는 블랙홀이나 혼돈의 바다가 되도록 유지시키는 힘이 되는 것이다. 동물되기는 무리에 대한 매혹과 다양성에 대한 매혹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암컷되기는 무리에 대한 매혹과 다양성에 대한 매혹을 신비한 몸의 내부에 간직하여 수많은 벡터의 힘을 지닌 강렬도로만 유지되고 흐르게 하는 것이다. 즉 동물되기라는 관계에서 벗어나 들판이나 숲의 경계에 있는 별종적 위치를 점유하는 것이 암컷되기이다. 모든 것의 경계에 있다는 것은 모든 것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모든 물질적 존재, 즉 개개의 몸은 들판이나 숲의 경계에 있는 별종과 동맹관계나 결연관계를 맺는다.
힘의 서열이나 권력을 통한 몸과 몸이 맺어지는 영토화된 관계는 친자관계이다. 흔히 페미니즘 영화의 대작으로 알려진 <델마와 루이스>에서 루이스와 새로운 동맹관계를 결성한 델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은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나의 남편이야”라고 말한다. 이러한 말은 수많은 자본주의적 구조의 관계 속에서 가능하다. “당신은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나의 동료 과장(혹은 부장)이야, 당신은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나의 학문적 동료인 교사(혹은 교수)야. 등등등...” 그러나 전제군주나 자본주의의 권력체계 속에서 집단적 기표로 존재하는 남성들(자본가, 사장, 교수, 검사, 경찰, 등등)은 또 다른 집단적 기표로 존재하는 여성들(노동자, 직원, 학생, 상인, 민중 등등)으로 하여금 동맹관계나 결연관계를 포기하고 “나는 너의 아버지이고, 너는 나의 자식이야”라는 친자관계의 그물 속으로 들어오도록 끊임없이 강요한다.
따라서 델마가 남편에게 말하는 “당신은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나의 남편이야”라고 말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사회체가 강요하는 가족주의적인 친자관계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부부나 친구, 연인 등등의 관계가 근원적으로 동맹관계나 결연관계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다. 각각의 개별적인 노마드적 개체는 그러한 동맹관계나 결연관계를 통하여 개개의 개체들이 스스로 나무되기, 돌되기, 바람되기, 늑대되기 등등의 지속적인 생성을 달성한다. 따라서 모든 생성적 되기의 극한이라고 할 수 있는 암컷되기는 수많은 개별적 개체들이 동맹관계나 결연관계를 맺을 수 있는 수많은 선분의 경계에 위치하여 각각의 개별적 개체들이 스스로 생성하도록 에너지 원천 기계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계에 위치하기나 여성되기를 블랙홀이나 혼돈의 바다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들판이나 숲의 경계에 있는 암컷되기의 별종적 위치를 노자는 봉우리나 능선이 아니라 계곡에 있는 “골짜기의 신” 되기라고 명명하고 있다.
계곡의 골짜기는 돌, 나무, 바람 등등의 모든 것이 들어와서 돌, 나무, 바람으로 생성되는 곳이다. 따라서 “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는다.”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 우리는 골짜기를 바라보지 못하고 높은 봉우리와 능선, 커다란 바위, 그리고 숲을 보지만, 그 봉우리와 능선, 커다란 바위, 그리고 숲은 골짜기에서 비롯되고 골짜기에 의해서 봉우리와 능선, 바위, 숲으로 존재하게 된다. 노자는 “이것을 일컬어 신비한 암컷이라고 말한다.” 마치 모든 것들과 관계를 맺어 스스로 돌, 나무, 바람, 그리고 봉우리와 능선으로 생성되기를 만드는 “골짜기의 신”처럼 “신비한 암컷”은 모든 것들과 관계를 맺어 그 관계를 맺는 개체들 스스로가 아이되기나 동물되기와 같은 생성으로 나아가도록 만든다. 따라서 암컷되기란 곧 세상만들기이고 새로운 미래의 세계를 창조하는 운동이다. 즉, 여성되기는 무리들이 만드는 사회체를 지속적으로 기관들 없는 몸으로 만드는 운동, 즉 사회체 스스로 지속적인 혁명을 하도록 만드는 힘이다.
혁명은 무엇인가? 혁명은 탈영토화인 동시에 재영토화이다. 따라서 대지나 가물가물한 내재성의 장, 혹은 기관들 없는 몸이 되는 절대적 탈영토화가 곧 암컷되기라면, 이 세상의 모든 물질적 존재들이 암컷되기와 맺는 결연관계는 모든 개체들 스스로가 생성을 이루어 새로운 영토를 구성하는 재영토화라고 말할 수 있다. 다라서 혁명은 지도나 계몽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리를 구성하는 구성원들 스스로가 새로운 그 무엇되기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새로운 사회체의 생성이다. 노마드의 삶이 탈영토화와 재영토화의 과정이듯이 사회체의 생명도 탈영토화와 재영토화의 과정이다. 전제군주의 영토나 자본주의의 영토로부터 이루어지는 개별적 탈영토화가 곧 새로운 미래의 재영토화가 되는 이유가 바로 탈영토화와 재영토화가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개체의 생성으로 이루어지는 암컷되기를 노자가 “신비한 암컷의 문/ 이것을 일컬어 땅의 뿌리라 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땅은 근원적으로 기관들 없는 몸이며 내재성의 장인 암컷이고, 그리고 그 땅 위에 하나의 영토를 구성한 사회체나 개별 생명체 또한 근원적으로 기관들 없는 몸이며 내재성의 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신비한 암컷의 문”이다. 이러한 “신비한 암컷의 문”이 지니고 있는 섹슈얼리티의 매력은 무리나 밴드의 매력보다 더 큰 매력이기 때문에 “신비한 암컷의 문”은 사회적 관계를 맺는 쾌락의 생성 뿐만 아니라 모든 남성의 암컷되기와 모든 인간의 동물되기를 경유한다. 그리고 모든 남성의 암컷되기와 모든 인간의 동물되기는 곧 이 세계의 땅을 되기로 만드는 것, 즉 자신의 이웃관계와 식별(혹은 지각)불가능성의 지대를 끊임없이 발견해 나가는 것이다. 대지의 미래를 창조하는 새로운 재영토화를 위한 지각불가능성의 지대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은 “미묘하면서도 끊어지지 않아/ 마치 있는 듯하지만/ 아무리 써도 끊어지지 않는다.” 실로 암컷되기의 힘은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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