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노마드와 노마돌로지

체 게바라 2006. 9. 9. 15:14

 

노마드와 노마돌로지

 

인간이라는 동물은 고정된 계급으로, 혹은 확고부동한 위치로 존재하는 정착민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풍요로움과 사랑, 그리고 우정의 삶을 찾아서 떠나는 노마드(유목민)의 동물이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모든 동물들은 노마드이다. 물고기나 기러기와 같은 동물들은 계절에 따라서, 혹은 먹이나 산란기를 찾아서 이동하는 동물들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동물들과 달리 일정한 이동의 루트나 길이 정해져 있지 않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동물들은 일정한 이동의 루트나 길이 정해져 있지 않다. 마치 럭비공이 튀어오르는 것처럼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동물들은 사랑과 우정이 맺는 관계의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 각기 다른 이동의 루트나 길을 만들어 나아간다. 따지고 보면 노마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인간을 포함한 동물만은 아니다. 인간과 동물이 사랑과 우정의 삶을 찾아서 끊임없이 떠나는 것처럼, 풀과 나무, 혹은 돌과 바람 등과 같은 모든 존재들은 그 무엇과 만나는 생성을 찾아서 끊임없이 이동한다. 인류의 역사 뿐만 아니라 우주와 자연의 역사도 노마드들의 끊임없는 이동과 탈주의 역사이다.

 

모든 존재의 이동과 탈주를 가로막는 것은 어떤 존재의 삶을 갉아먹는 것이다. 물고기의 이동하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댐과 동물들이 이동하는 루트에 만들어진 덫은 물고기와 동물들을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죽이기 위한 것이다. 물고기와 동물들은 거대한 댐을 넘거나 덫을 피하기 위하여 온갖 위험을 무릎쓰거나 심지어 죽음으로 항거한다. 이동과 탈주가 없는 삶은 죽음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인간들도 마찬가지이다. 거대한 댐과 숲 속에 있는 덫이 물고기와 동물들의 삶을 갉아먹거나 죽이고 있는 것처럼 인간의 이동과 탈주를 가로막는 울타리와 덫은 인간의 삶을 걹아먹거나 죽이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이동과 탈주가 가로막히기 시작한 것은 인간들 사이에 지배자가 존재하면서 피지배자들에게 정착을 강요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루어진다. 지배자는 폭력과 설득을 통하여 인간의 이동과 탈주를 가로막는다.

 

지배자의 폭력은 눈에 보인다. 그러나 지배자의 설득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배자의 설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우리는 스스로 사유하고, 그리고 스스로 사유한 지식을 실천해야만 한다. 우리는 스스로 사유하고, 스스로 사유한 지식을 실철하는 사람들을 지식인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존재와 삶이 노마드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지식인의 사유와 지식도 또한 노마드적이어야만 한다. 따라서 우리는 노마드적인 삶과 사유의 형식으로 구성된 지식을 노마돌로지(Nomadology)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노마드적인 삶의 기준과 가치에서 벗어나서 지배자의 폭력과 설득을 용이하게 하거나 지배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유의 형식과 지식도 존재한다. 우리는 이러한 사유의 형식을 국가철학(State Philosophy, or State Knowledge)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우리 인간의 무리 속에 지배와 피지배의 구조가 존재하는 한 노마돌로지의 지식인과 국가철학의 지식인은 뒤섞여 있다. 이러한 지식인들 속에서 노마드적인 지식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이론과 실천, 그리고 끊임없이 지배와 종속의 구조가 도사리고 있는 현실적 삶과 지식체계에 대한 저항, 혹은 그러한 삶과 지식체계에 대한 노마드적 분석의 이론과 실천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노마돌로지의 지식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국가나 민족, 혹은 자본이나 사회적 위치 등등을 우선적으로 사유하지 않고 각각의 삶과 사랑의 생성적 측면이 지니고 있는 생명성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사유하는 것이 오늘날의 노마드 지식인들이 사유하는 노마돌로지이다. 고도의 산업문명 속에서도 우리가 우리의 삶과 사랑을 노마돌로지가 지니고 있는 삶의 생명성으로 사유해야만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마돌로지란 무엇인가?"라는 서론의 글을 시작하는 것은 오늘날의 중·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가르치는 인문학적 지식, 그리고 오늘날의 국가와 민족 중심의 인간사회와 삶의 구조가 너무나도 노마돌로지와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단지 지식인 집단의 현상일 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형태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의 삶의 구조 깊숙히 들어가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것과는 달리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구성하는 먹을 것, 입을 것, 그리고 거주할 곳을 찾아서 끊임없이 이동하는 노마드들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현실에 정착하여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단지 그 사회의 주인 역할을 하거나 노예의 역할에 안주하고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이 글에서 굳이 유목학이나 유목주의, 혹은 유목민이 아니라 노마돌로지나 노마드라고 부르는 이유는 원시시대부터 근대 이전, 오늘날의 몽골 초원이나 남미의 고산지대, 혹은 아프리카의 원시림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유목주의나 유목민과는 달리 오늘날의 사람들은 지배와 폭력의 권력으로 구성된 궁궐이나 성을 도시 밖으로 내쫓고 그 도시의 심장으로 이동하여 도시 속에서 유목민적 삶과 사랑을 찾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화 과정을 통하여 서구·백인·남성 중심의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 근대의 국가철학에서 소외된 근대 이후의 노동자, 여성, 흑인, 그리고 비서구인들 모두는 초원을 찾아서 떠나는 옛날의 유목민들과 마찬가지로 황폐한 도시 속으로 들어와서 서구, 백인, 남성들을 도시 밖으로 몰아내는 도시유목민, 즉 노마드들이다.

 

따라서 이러한 노마드들의 삶을 고민하는 인문학의 이론과 실천을 추적하는 사람들을 노마돌로지의 지식인이라고 지칭하는 것이다. 이 글은 순전히 노마드적 지식의 논리를 추구하는 지식인들을 위한 노마돌로지의 계보를 추적하기 위한 것이다. 마치 들판에 있는 나무나 풀, 혹은 다람쥐나 개미들이 자연과 더불어 유목적으로 살고 있는 것처럼, 뉴욕이나 런던, 혹은 서울이나 동경에 살고 있는 흑인들이나 여성들, 노동자들이나 유색인, 그리고 도시 빈민들은 생명성을 보장하는 풍요로운 삶과 사랑을 찾아서 항상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노마드들이다. 이들을 현혹시키는 것은 오늘날의 국가장치로 이루어져 있는 매스 미디어와 교육기관들에 의하여 끊임없이 강요되고 있는 국가나 제도 중심의 허구적인 국가철학과 국가철학에 봉사하는 국가철학적 지식인들의 감언이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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