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노마드의 역사

체 게바라 2006. 9. 8. 15:12

 

노마돌로지의 역사

 

들뢰즈가 이야기하는 최초의 노마드 문화, 즉 노마돌로지의 지식이 형성된 곳은 고대 그리스이다. 우리는 고대 그리스와 다른 또 다른 노마드 문화들을 고대의 중국이나 만주 지역, 혹은 인도 북부나 남미, 그리고 이슬람 지역 등등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여타 지역의 노마드 문화는 고대 그리스의 노마돌로지처럼 뚜렷한 역사적 족적이 남아있지 않다. 이와는 달리 고대 그리스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지배와 통치의 문명으로부터 사막과 초원, 그리고 바다를 건너 탈주한 유목민들이 세운 문화라는 뚜렷한 흔적이 남아있다. 이러한 흔적은 그대 그리스의 도시들에서 찾을 수 있다. 고대 문명의 다른 도시들이 지배와 서열체계로 이루어진 성(城)으로 이루어진 것과는 달리 고대 그리스의 도시들은 광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최초의 고대 그리스의 땅은 지배와 통치로 이루어진 문명의 영토로부터 탈영토화한 유목민의 대지이다.

 

고대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땅은 지배와 통치를 기반으로 하는 왕이나 마법사를 머리로 하고 그들의 팔과 다리 역할을 하는 사제나 법률가의 서열관계나 계급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인간 문명의 영토였다. 사제나 법률가들은 왕이나 마법사를 초월적인 존재로 상승시키고 자신들을 그러한 초월적 존재의 대리인으로 만든다. 따라서 사제나 법률가들이 만드는 초월적인 것에 대한 지식은 인류 최초로 만들어진 문명의 영토를 끊임없이 지속시키기 위한 영토화의 수단이다. 이와 반대로 고대 그리스 문화는 어떤 서열이나 계급도 배제한 친구들의 관계를 토대로 한 문화이다. 고대 그리스의 대지로 탈주한 상인, 노동자, 장인, 전사 등등이 지닌 동맹관계나 연인관계를 통한 친구들의 세계는 왕이나 황제가 존재하지 않는 도시의 노마드적 민주주의를 만들었고, 이 도시 속에서 사람들은 드디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사물의 생명성이 지니고 있는 평등을 토대로 한 가물가물한 "내재성(immanence)"을 사유할 수 있었다.

 

내재성을 사유한다는 것은 어떠한 초월적인 것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내재성을 사유한다는 것은 서열화나 계급화된 문명이나 그러한 사유의 영토로부터 탈주하여 새로운 평등과 자유의 삶과 그러한 사유를 위한 절대적 탈영토화와 상대적 탈영토화를 사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 정의, 시민정신, 혹은 신 등등과 같은 개념들은 마치 가물가물한 지평선만 보이는 사막이나 초원과 같은 '내재성의 장' 위에서 희미하게 그 윤곽만을 볼 수 있는 신기루와 같은 것들이다. 이 신기루와 같은 것들은 항상 내재성의 장 위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관계들의 선분에 의하여 개념의 집을 형성한다. 그러나 원시영토기계, 전제군주기계, 그리고 자본주의기계가 작동하는 영토 속에서 사랑, 정의, 시민정신 등등과 같은 개념들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에 의하여 규정되는 계급관계나 서열관계를 유지시키고자 하는 초월적인 국가철학적 개념의 집을 지닌다. 따라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규정되는 원시영토기계, 전제군주기계, 그리고 자본주의기계로부터 벗어나서 근원적인 내재성의 장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탈영토화이다.

 

그러나 내재성의 장 위에 존재한다는 것은 항상 어떤 관계의 선분을 만드는 것이다. 재영토화 없는 탈영토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절대적 탈영토화와 상대적 탈영토화는 어떠한 국가철학적 개념의 집도 존재하지 않고 남녀노소는 물론이고 동물과 식물, 그리고 광물과 바람, 물 등등의 자연현상 까지도 포함하는 모든 사물의 무한한 평등의 상태를 일컫는 내재성의 장 위에서 결합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스토아 학파와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내재성의 장 위에서 결합된 상대적 탈영토화와 절대적 탈영토화, 즉 노마돌로지의 지식을 사유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노마돌로지적 사유의 방법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라는 영토 속에서 소크라테스를 전유하여 "이데아"와 "유일자"라는 개념의 집을 지은 플라톤의 국가철학에 의하여 재영토화된다. 따라서 플라톤의 사유방법은 문명의 세계로부터 탈영토화하여 친구들의 세계를 펼친 고대 그리스의 노마돌로지적 사유가 아니라 새롭게 지배와 통치, 혹은 주인과 노예라는 서열체계나 계급관계를 지니게 된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지배자나 통치자, 혹은 그리스인이라는 시민들 중심으로 사유하였던 국가철학이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노마드 문화는 중세 말기의 유럽을 휩쓸었던 르네쌍스 시대라고 할 것이다. 르네쌍스 시대의 노마드 문화도 고대 그리스의 노마드 문화와 마찬가지로 도시에서 이루어졌다. 고대 그리스에서 도시의 형성이 곧 노마드 문화의 형성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유럽의 중세시대에 지속되었던 성과 교회를 에워 쌓는 도시의 형성은 성이나 교회의 서열구조나 계급관계를 타파하는 친구들의 세계를 형성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의 노마드 문화의 형성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문명으로부터 탈영토화하여 새롭게 고대 그리스라는 대지에 세운 영토인데 반하여 유럽 르네쌍스 시대의 노마드 문화는 중세의 전제군주와 로마 교황청이라는 영토로부터 탈영토화하여 전제군주와 로마 교황청으로 각인되어 있는 영토를 내재성의 장이 지배하는 대지로 만드는 작업이다.

 

고대 그리스의 탈영토화가 지리적 탈주와 연결되어 있었던 것과는 달리 르네쌍스 시대의 탈영토화는 지리적 탈주와 정신적 탈주를 결합시켰다. 즉, 르네쌍스 시대의 노마드적 사유의 탈주는 전제군주의 지배와 통제라는 물리적 억압의 영토로부터 탈주하는 도시의 형성과 더불어 로마 교황청이라는 정신적 억압의 영토로부터 탈주하는 친구들의 세계라는 새로운 시민형성의 필요성이 있었다. 르네쌍스의 노마드 문화가 이태리의 도시들에서 발생하여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이동하여 마침내 영국, 프랑스, 그리고 독일에 가장 늦게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근대라는 새로운 사유의 영토로 영국, 프랑스, 그리고 독일이 재영토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 나라들이 일찌감치 로마 교황청이라는 정신적 억압의 영토와 맺어져 있었던 관계의 끈을 끊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근대문화를 이끌고 있는 영국의 경험주의, 독일의 관념론, 그리고 프랑스의 이상주의는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탈영토화한 기독교와 전제군주의 영토로부터 탈영토화 한 그리스의 철학이 결합하여 만든 재영토화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7-18세기의 영국, 18-19세기의 프랑스, 그리고 19-20세기의 독일이라는 국가의 형성은 플라톤의 국가철학을 새로운 사유방식의 토대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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