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전 지구적 탈근대와 노마드문화
고대 그리스의 노마드 문화가 르네쌍스 시대에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전지구적 노마드 문화의 확산은 19세기 이후 영국, 프랑스, 그리고 독일의 근대 국가철학과 이를 계승하고 있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 자본주의가 지니고 있는 서구·백인·남성 중심주의의 영토로부터 탈영토화하여 내재성의 장이라는 대지를 형성하는 문화의 획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새로운 노마드 문화가 생성할 수 있는 내재성의 장이라는 대지는 고대 그리스나 유럽 르네쌍스 시대라는 노마돌로지의 모델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전지구적 노마드 문화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들처럼 어떠한 영토도 존재하지 않는 대지에 우뚝 솟은 내재성의 장도 아닐 뿐만 아니라, 유럽 르네쌍스 시대처럼 중세의 신학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철학으로부터 탈영토화하여 서구·백인·남성 중심주의의 새로운 국가철학으로 재영토화하는 과정도 아니다.
오늘날의 유럽과 미국 중심의 노마드 문화는 고대 그리스의 노마드 문화가 로마 제국이나 기독교 중심의 중세 봉건주의로 재영토화된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을 토대로 한 미국의 제국주의나 중세의 기독교처럼 종교적 영토로 환원될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위험성과 더불어 하나의 희망은 전지구적 인류의 새로운 희망으로 드러나고 있는 서구의 노마드 문화가 근대의 국가철학이 만든 서구·백인·남성 중심주의로부터 탈영토화하여 전지구적인 노마돌로지의 세계로 재영토화하고자 하는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그리고 생태주의의 문화가 도래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르네쌍스 시대의 새로운 문화를 선도했던 이탈리아 도시들이 필연적으로 로마 교황청의 기독교 중심주의의 영토로부터 탈영토화해야만 했던 것처럼 오늘날 서구 유렵과 미국의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그리고 생태주의가 지니고 있는 노마드의 문화는 근대 국가철학으로 형성된 영국, 프랑스, 독일과 그들의 국가철학을 계승하고 있는 미국의 근대 자본주의의 영토로부터 탈영토화 하여야만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서구의 근대 국가철학으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서구의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그리고 생태주의를 지속시킬 수 있는 새로운 사유의 틀을 동양, 특히 동아시아의 전통적 사유에서 찾으려는 노력이 다양한 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서구의 근대 국가철학으로부터 형성된 근대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서양 지식인들의 동양에 대한 관심은 근대 국가철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서구 근대성이 스스로 덫을 놓은 사유의 한계는 서구의 지적 전통을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으로 구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양의 지적 전통을 유교(Confucianism)와 불교(Budhism)로 나누는 것이다. 동양의 지적 전통을 유교와 불교로 구분하는 것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구분이 서구의 근대 국가철학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서구의 근대 국가철학에 영향을 받은 국가라는 허구적 주체의 관점에서 동아시아의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러한 시선의 문제점은 서로 다른 동서양의 대립되는 두 고대 철학자들, 즉 소크리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노자와 공자를 헬레니즘이나 유교라는 틀로 동일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와 불교라는 종교적 사유가 지니고 있는 두 측면, 즉 노마드적 사유의 종교와 국가적 사유의 종교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서구 근대성의 국가철학적 관점으로부터 벗어나서 소크라테스와 스토아학파들, 그리고 유럽 르네쌍스의 노마돌로지를 계승하고자 했던 스피노자, 흄, 니체, 그리고 베르그송을 노마드적 관점에서 계열화하여 오늘날의 전지구적 노마돌로지를 사유하는 사람이 바로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이다. 그러나 서구의 근대적 사유의 역사에서 소크라테스와 스토아학파들의 부활, 그리고 스피노자, 흄, 니체, 그리고 베르그송의 사유는 끊임없이 근대 국가철학에 의하여 재영토화되거나 서구적 근대의 주변적인 것들로 배제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들뢰즈의 노마드적 사유 또한 서구의 근대 국가철학으로 재영토화되거나 주변적인 것들로 사장될 위험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들뢰즈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국가철학적 시각으로부터 벗어나 소크라테스와 스토아학파를 사유하는 것처럼, 들뢰즈의 노마돌로지의 관점에서 노자의 『도덕경』을 읽는 것은 공자의 유교적 관점으로부터 노자를 해방시키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서구의 동양에 대한 관심을 국가철학의 관점으로부터 노마돌로지의 관점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들뢰즈가 서구적 근대의 주변으로 밀려난 스피노자, 흄, 니체, 그리고 베르그송을 노마돌로지의 관점에서 소크라테스나 스토아 학파들과 재 계열화하는 것처럼 동아시아의 근대를 창출한 루쉰이나 나쓰메 소세키, 백석 등등을 소크라테스나 들뢰즈, 그리고 노장사상의 노마돌로지로 재계열화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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