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노마돌로지와 국가철학
동양과 서양이 지니고 있는 지식의 근원을 찾아가다 보면, 우리는 고대 그리스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날 수 있고, 고대 중국에서 노자와 공자, 그리고 맹자를 만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상의 지식은 이들의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이 아니라 서양에서는 일방적으로 소크라테스를 이용한 플라톤의 지식, 그리고 플라톤에 대항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동양에서는 노자를 이용한 공자의 지식, 그리고 공자에 대항한 맹자의 지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플라톤을 통하여 소크라테스를 이해하고, 공자를 통하여 노자를 이해한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신비화 하고, 공자는 노자를 신비화 한다. 소크라테스와 노자를 신비화 하고 있는 철학자는 플라톤과 공자만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도 소크라테스를 신비화 하고, 맹자의 철학도 노자를 신비화시킨다. 동양과 서양에 존재하는 각각의 두 철학은 서양과 동양에서 서로 대립과 공존을 반복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따라서 공식적인 국가철학은 고대 이래로 서양에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구분되고, 동양에서는 공자와 맹자로 구분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서양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동양의 공자와 맹자의 지식체계가 공식적인 지식의 위치를 획득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18-19세기에 서구 유럽이 근대적 국가의 틀을 형성한 이후, 공식적으로 고대 그리스 철학이라고 불리는 것은 플라톤의 이데아/현실이라는 이분법과 현실에 대한 분석을 더욱 구체화시킨 아리스토텔리스의 형상/질료의 이분법에 토대를 둔 사유의 방법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서양에서 근대 초기의 철학을 지배한 데카르트와 칸트는 신플라톤주의의 철학이라고 부를 수 있고,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을 지배한 훗설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철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과 우리나라가 근대화되기 이전에 과거시험이나 통치를 위한 지식은 공자의 인(仁)을 강조하는 도/덕의 이분법과 덕을 더욱 구체화시킨 맹자의 인·의·예·지(仁·義·禮·智)론을 토대로 한 사유의 방법이었다. 서양의 근대와 마찬가지로 서구적인 근대화가 되기 이전의 동양은 공자의 철학과 맹자의 철학만을 오직 공식적인 고대의 철학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서구의 플라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상호 대립하면서 공존을 모색한 것과 마찬가지로 공자철학과 맹자철학 또한 상호 대립과 공존을 반복했다.
플라톤의 국가철학과 공자의 도덕론이 동양과 서양의 지배적인 지식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서구의 근대국가가 창출한 대학이라는 제도와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근대 이전까지 유지되었던 유교적 국가체제가 지니고 있었던 과거시험을 토대로 한 교육제도의 덕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구의 대학이 오늘날의 형태를 지니기 시작한 것은 거의 100여년 밖에 되지 않았으며, 서구적 근대 이전에 송나라와 고려의 불교국가 이후의 500여년 동안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과거시험이라는 권력구도를 토대로 유지되었던 유교적 교육제도는 이미 폐지된 지 오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적 근대 이후의 유교적 지식을 토대로 한 일본의 근대 제국주의 국가가 서구의 근대 국가체제와 나란히 발전해 나아감에 따라 유교적 지식은 서구의 근대적 지식과 동일한 위치를 점유하기 시작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서구적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유교적 국가철학과 교육이념이 되살아나고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근원을 두고 있는 서구의 근대 국가철학과 공자와 맹자에게 근원을 두고 있는 유교적 국가철학의 동질성은 과거제도나 국가고시제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통치와 지배의 수단으로 지식을 습득한다는 것이다. 헤겔의 법철학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서구 근대 국가철학의 공공성과 시민정신, 그리고 문학비평의 공평무사함과 숭고함 등등은 유교철학에서 이야기하는 인의예지(仁義禮智)와 중용의 미덕에 다름아니다. 유교적 국가철학과 서구적 근대의 국가철학은 단지 철학이나 국가장치, 혹은 과학교육에만 스며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과 역사 등등의 모든 근대 분과학문 교육체계 속에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플라톤 철학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향연』은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고, 공자 철학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논어』는 노자의 『도덕경』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이러한 명명백백한 사실을 우리가 자주 망각하는 이유는 근대적인 지식의 담론 속에서 소크라테스와 노자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공적인 담론에서 이들을 사라지게 한 사람들은 국가철학적 지식인들이다. 동양과 서양의 국가철학적 지식인들은 서구적 근대의 국가적 교육제도와 중국과 조선의 근대 이전에 이루어진 유교적 교육체제를 통하여 국가나 제도 중심의 허구적 지식을 객관적 지식으로 강요하였다. 그러한 지식을 강요받은 새로운 국가철학적 지식인들은 플라톤과 공자의 지식을 공적으로 자랑할 뿐만 아니라 마치 스스로 사유를 통하여 터득한 것처럼 소크라테스를 모르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이해하면 그만이고, 노자를 모르고 공자와 맹자를 이해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이 도래한 것은 동양과 서양의 국가철학 속에 내재하고 있는 계몽주의의 정신이다. 동양과 서양의 계몽주의는 항상 무지몽매한 민중을 가정하고 지식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
국가철학이 가정하는 정착민의 입장에서 민중을 바라보면 그들은 항상 무지몽매하다. 그들은 통치와 지배의 방법이나 통치자와 지배자를 따르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노마드의 입장에서 민중을 바라보면, 그들은 본능적으로 노마돌로지의 삶과 노마돌로지를 습득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서구적인 근대의 국가철학에서 규정하는 국민이나 동양의 유교철학에서 규정하는 백성의 관점에서 벗어나 삶과 사랑의 생명성을 좇는 노마드들의 측면에서 지식을 바라보면, 우리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노자와 공자의 지식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살았던 시대에도 그들 이외에 수많은 지식인들이 있었다. 플라톤이 시라쿠사(시칠리아 섬의 도시) 정부의 자문위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아테네에서 "아카데미아"를 창설하였고,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서 20년 동안 공부한 아리스토텔레스가 이후에 황제가 되는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이 되었던 것과는 달리 흔히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학생들로부터 견유학파(Cynic)라는 이름으로 비난받고 있는 디오게네스와 금욕주의자들로 알려진 스토아학파들은 대중적인 환대를 받았음에 틀림없다.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오늘날의 노마돌로지를 이야기하는 들뢰즈의 지식체계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라 스토아학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디오게네스와 스토아학파와 마찬가지로 희미하게 알려져 있는 소크라테스의 삶과 지식은 그가 국가철학의 지식인이 아니라 노마돌로지의 지식인이었음을 보여준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이용하여 『국가론』이라는 국가철학의 지식을 확립한데 반하여, 소크라테스는 "청소년을 타락시키고 옛 풍습을 거역하도록 사주한다는 죄목으로 고소되"어 "악법도 법"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후에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그리고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의 지식의 요체라고 할 수 있는 "산파술"은 대화를 통하여 상대방의 "독자적인 사고가 탄생하도록 돕는 일", 즉 독자적인 지식의 생성과정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리스 폴리스 국가에 의하여 "청소년을 타락시키고 옛 풍습을 거역하도록 사주한다는 죄목으로 고소되"어 국가가 준 독배를 마시고 죽은 소크라테스가 플라톤의 국가철학에 의하여 본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국가철학자로 재탄생된 것이다. 그리고 끝없는 생성과 창조를 의미하는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라는 지식은 플라톤의 이데아/현실이라는 이분법에 의하여 "산파술" 본연의 지식이 지녔던 각각의 "독자적인 사고가 탄생하도록 돕는" 역할을 포기하고, 국가를 운영하고 시민을 지배하기 위하여 자신의 주장을 합리적으로 설득하는 "변증법적 궤변의 통치술"로 변하게 되었다.
이러한 차이는 노자와 공자의 관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노자와 공자의 관계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라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처럼 명확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지식을 플라톤의 저서들을 통하여 추측할 수 밖에 없는 것과는 달리 공자의 지식을 집대성한 『논어』와 마찬가지로 노자의 지식을 집대성한 『도덕경』이라는 책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노자와 공자의 관계나 그들의 연배에 대하여 갑론을박하고 있다. 이러한 갑론을박 중에서 가장 명확한 것으로 추측되는 것은 노자의 『도덕경』에서 이야기하는 이론(道)과 실천(德)은 국가나 통치의 수단이 배제된 순수한 삶의 상태를 논하는 이론과 실천인 반면에 공자의 『논어』에 등장하는 이론과 실천은 제왕이나 통치의 수단으로 설명될 뿐만 아니라 통치와 지배의 구체적 덕목으로 인(仁)이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중국 근대 초기의 호적(胡適)이 지적한 것처럼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 억지로 별명을 지어 길(道)이라 하고/ 억지로 이름을 지어 극한(大)이라 한다(『도덕경』 25장)"라고 말한 것은 노자의 지식에 대한 이론과 실천이 국가나 통치의 수단이 배제된 순수한 지식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더불어 공자는 제왕의 부름을 받아 노나라의 제상이 된 반면에 노자는 제왕의 부름을 받고 나아간 것이 아니라 국가와 속세를 떠나 은거를 하였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지식이 다르듯이 노자와 공자의 지식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그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가 없다.
플라톤과 공자의 지식이 지배와 통치를 기반으로 하는 동양과 서양의 국가철학이라고 한다면, 노자와 소크라테스의 지식을 우리는 국가를 배제하고 지배와 통치로부터 탈주하여 삶과 사랑의 생명성을 찾고자 하는 동양과 서양의 노마돌로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국가철학이 국가의 지배와 통치를 위하여 국가와 개인의 이분법을 근거로 한 지식이라면, 노마돌로지는 그러한 국가라는 매개물이 없이 사물과 사물,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노마드적 생명성의 입장에서 사유하는 지식이다. 따라서 국가철학과 노마돌로지의 지식이 전제하는 인간은 근원적으로 다르다. 국가철학이 바라보는 인간은 근원적으로 국가나 사회적 집단의 지배를 받는 "왕-신하", 혹은 "국가-국민"이라는 관계를 지닌 정착민이라는 주체로 보는 반면에, 노마돌로지가 바라보는 인간은 자유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서 끊임없이 이동하는 인간과 인간의 결연관계나 동맹관계를 토대로 하는 유목민이다. 따라서 국가철학은 국가나 사회적 집단의 변천사, 즉 문명의 관점에서 인류의 역사를 조망하는 반면에 노마돌로지는 유목민의 끊임없는 탈주와 그 탈주가 만든 유목민의 문화의 관점으로 인류의 역사를 바라본다.
문명의 관점은 그 사회를 유지시키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통치와 지배의 제도가 중심인데 반하여 문화의 관점은 그 사회를 유지시키고 있는 개개인의 관계와 삶의 방식이 중심이 된다. 우리는 근대 서구의 국가철학에 의하여 형성된 문명사관에 의하여 문명의 진화와 발전에 대한 확신을 토대로 하여 역사를 바라보도록 훈련받았지만,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고 하는 중국, 인도, 이슬람, 그리고 에집트 문명의 발상지는 지금 어떠한가? 최초의 문명이라는 지배와 통치의 방식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날의 가장 발전한 문명이라고 하는 서구의 문명과 비교하여 그들의 문명이 지니고 지적인 열등함에도 불구하고 서구의 문명이 두려워하는 것은 인도나 이슬람 문화가 지니고 있는 전통적인 노마드적 삶과 사랑의 관계가 아닌가? 그리고 오늘날 인류의 가장 진화한 문명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은 어떤 문명에서 진화하고 발전한 문명인가? 미국의 문명은 그 어떤 문명으로부터 진화한 것이 아니라 구 대륙의 문명으로부터 탈주한 유목민들이 아메리카라는 대지에 새롭게 우뚝세운 근대의 문화가 아닌가? 인류의 역사를 근거로 정착민의 땅이었던 중국, 인도, 이슬람, 그리고 에집트의 오늘과 아시아와 유럽으로부터 탈주한 유목민의 땅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을 비교하는 것은 우리가 왜 문명의 역사가 아니라 유목민의 문화인 노마돌로지의 관점에서 역사를 다시 바라보아야만 하는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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