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는 것에 본능적인 공포심을 갖고 있다.
죽는다는 사실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아무리 잘 알고 있다 하더라도 인간은 그 사실에
수긍할 수 없기에 영원에의 갈망과 두려움을 동시에 경험한다. 이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형이상학자들과 기독교인들은 영혼의 불멸을 주장했고 하이데거는
죽음에의 사색을 강조했다. 반면 스피노자는 이러한 불안감 자체를 무상하다고 생각하여 철학은
삶에 대한 명상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철학은 스피노자의 말처럼 삶에 대한 명상만일 수도 없고
하이데거의 말처럼 죽음에 대한 명상만일 수도 없다. 즉, 죽음에 대한 명상과 삶에 대한 명상은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삶을 혐오한다"고 미셸 레리스는 말한다. 실제로 죽음의 순간에
죽음을 가장 평온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가장 충만하고 가장 행복한 삶을 향유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진정한 현자란 자신의 유한성과 죽음을 충분히 인식하는 동시에 그에 굴복하지 않고
끊임없이 죽음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닐까? 실존적 차원에서 삶을 충만한 행복으로 이끄는
가운데 우리는 죽음의 공포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