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죽음에 대하여 2

체 게바라 2006. 5. 23. 17:16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한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철학자는 삶을

생각해야 하는가?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가? 전통적으로 철학은 이 문제에 있어 상반된 입장을

취하는 듯해 보인다. 하이데거가 죽음, 그리고 그와 관련된 실존적 염려와 두려움을 철학의 중심에

놓은 데 반해 몇몇 펄학자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현실의 행복을 저해할 것을 우려하면서 죽음은

자연과 신의 뜻에 일치하는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령 유물론자인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육체와 함께 영혼 역시 소멸하기에, 즉

죽음과 함께 죽음의 두려움을 감지할 수 있는 이성과 정신 역시 사라지므로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이와 관련된 에피쿠로스의 다음 문장은 죽음의 두려움을 주벙하는 작가들에 의해 수없이 인용

되었다. "나는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죽음을 만날 수 없다. 또는 죽음이 이미 거기에 있을 때 나는

이미 거기에 없기 때문에 죽음을 알 수 없다." 에피쿠로스는 영혼이 육체와 함께 사라진다고 해서

그 사실이 삶의 의미를 앗아가는 것은 아님을 강조했다. 오히려 저 세상이 없기 때문에 인간은

현세에서 최대한 행복할 이유가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물론 여기서 그가 의미하는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에피쿠로스를 쾌락주의자로 지칭한다.

이 호칭은 그를 물질적 행복을 추구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나 사실상 에피쿠로스에게 있어 신체란

동물적, 유희적, 물질적 쾌락을 영위하는 신체가 아니라 정신수양을 통해 단련되고 의미로 가득찬 

수양된 신체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행복은 물질적, 육체적 행복이 아닌 지성의 추구를 통한

이해의 쾌락이다. 말하자면 에피쿠로스가 추구한 삶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해방된 절제있고

사색적이며 덕으로 가득찬 현자의 삶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권력이나 명예, 허영의 추구는 죽음에

대한 공포, 즉 자신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자신과 남들에게 속이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라야 우리는 비로소 소박하고 절제된 삶을 영위할 수 있음은

분명하다. 죽음에 대한 유사한 접근을 우리는 스토아 철학에서 만나게 된다. 스토아 철학자에게 있어

죽음이나 자살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세네카는 "죽으면 모든 것은 끝난다. 죽음도 끝난다."고

말하면서 죽음에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것을 권고했다. 그들은 자연에의 일치및 조화를 강조했으며

가을이 되고 열매가 익으면 그 열매가 조용히 땅으로 떨어지듯이 우리도 죽음의 원리를 자연에서

배워 평안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것을 강조하였다. 아우렐리우스도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은 선한

신에 의해 보내진 것이므로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혜란 죽음 앞에서의 초연함과 상응하는 것일까? 스피노자는 <윤리학>에서 "철학자의 지혜는

명상이 아니라 삶에 대한 명상이다"라는 유명한 문구를 남겼다. '참된 철학자는 결코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그의 주장은 <파이돈>에 등장하는 플라톤의 유명한 말 "철학을 한다는 것은 죽음을 배우는

것이다" 라는 말과 근본적으로 반대된다. 철학은 과연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을 물리칠 수 있을까?

스피노자의 논지는 다음과 같다. 죽음에 대한 사고는 슬픔과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슬픔으로서의

죽음은 우리의 힘을 약화시키고 우리의 생적 약동을 억제하는 부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반면 삶에

대한 생각은 기쁨을 동반하고 활력을 가져다 준다. 스피노자에게 있어 참된 철학자는 긍정적인

사람이며 그는  자신의 긍정적 에너지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비롯한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한다. 즉, 존재의 충만성을 사유할 줄 모르는 무지한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자유로운

사람은 신-자연-전체의 관점에서 사고하기 때문에 절대로 죽음을 생각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죽음보다 삶에 더 중요성을 부여하는 경향은 유물론이나 19세기 중반부터 큰

관심을 모았던 과학주의에서도 발견된다. 프랑스 유물론자들은 영혼의 불멸성이란 성직자들의

거짓말에 불과하며 종교적 신앙은 한 사회의 경제, 사회, 정치적 발전을 저해한다고 비판했다.

실증주의자들 역시 우주의 궁극적 목적이나 인간의 사후 등 경험과 논리를 벗어나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은 헛된 것으로 간주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현세적, 실용적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일 뿐 영혼의 불멸을 위해 현실을 저당잡히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다. 과학주의

자들은 과학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영혼의 불멸성이나 사후세계에 대한 맏음은 사라질 것이며 이를

근간으로 하는 종교 역시 조금씩 쇠퇴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죽음의 두려움을 외면하고자 하는 이 여러 노력들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여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주장은 삶의 현실과 모순을 이루고 있지는 않는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죽음과 관련된 생각은 구체적인 우리 삶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인간은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며 이 사실은 문화를 구축하는 원동력임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시인 릴케는

"우리는 각자 안에 커다란 죽음을 지니고 있다.......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기에 충분할 만큼

늙었다"고 말했다. 즉, 아무리 죽음에 대한 생각을 피하려 해도 우리는 존재론적 원리에 따라 이

사실을 무조건 피할 수 만은 없다. 따라서 죽음은 나와 관계가 없다는 에피쿠로스의 말은 현실적 삶을

살아가는 일반인에게 큰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 오히려 죽음을 직시하라는 하이데거의 분석이 에피

쿠로스나 스피노자의 지혜보다 더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는

<죽음>이라는 유명한 저서에서 죽음에 대한 현자들의 외면과 조소에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이 모든 것은 아름답고 좋다. 그러나 비탄에 잠겨서 위로받을 수 없는 아폴로도로스 크리톤과

파이돈의 의견은 전혀 다를 것이다, ....왜나하면 현자의 죽음은 현자도 현자 자신의 '개인적인

진리'와 이데아적인 진리를 완전하게 조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피쿠로스나 스피노자의 논리는 죽음이라는 실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지향해야 할 이상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아니었을까? 즉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일반적인 인간의 성향이라면 그러한

자연적 본성에서 탈피하도록 노력하는 것에 인간의 위대성이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인 것이다.

어떤 의미에선 스피노자의 <윤리학>의 마지막 문장 "모든 아름다운 것은 귀하고 힘들다"는 죽음에

대한 현자들의 도전을 요약해 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신앙이나 지혜를 통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예술작품을 통해 죽음을 초월할 수 있다. 오랫동안 인간은

기억에 이름을 남기는 것은 불멸에 이르는 한 방법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긴 위인 중에는 영웅이나 성인과 같은 긍정적인

위인도 있지만 히틀러와 같은 부정적인 인물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죽음을 정복했다 하기엔

웬지 석연찮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반대로 인류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작품 중에는 작가 미상인 

작품들도 있다. 그렇다면 윤리적 차원에서의 죽음의 정복은 이름보다는 작품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전통 형이상학자들과 기독교인들이 영혼의 불멸을 통해 완전한 죽음을 부정하려 했다면, 실존주의

자들은 죽음의 확실성을 은폐하고 망각하려 들지 말고 그 가능성을 냉정하게 응시함으로써만이

인간은 비로소 본래적인 모습을 찾을 수 잇다고 강조했다. 죽음을 통해 실존 자체의 유한성과

무상함을 깨닫고 그로부터 삶의 진정한 가치를 재창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삶의 유한성을

고려하지 않는 삶에 있어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맇케는 "스스로의 죽음"이란 삶과 함께

성숙하는 과일의 핵과 같다고 말했다. 죽음을 인식하기에 인간은 동물과 달리 도달해야 할 목표를

세우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생에 보다 깊고 다양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생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삶은 성숙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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