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다시 고도를 기다리며

체 게바라 2006. 5. 15. 17:29

 

 

고도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는 언제 오는가?

 

그러나 고도는 결코 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고도란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았던 존재이므로...

 

네 명의 부랑자들이 고도를 기다리며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있다. 그들은 한번도 만난 적도 없고,

올지, 오지 않을지도 알 수 없는 고도를 하릴없이 기다리고 있다. 고도가 오면 구원받는다는

사실만을 간직한 채.. 그렇다고 그들이 무대에서 나누는 대화가 서로에게 소통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모두 삶에 지쳐 있으며, 그 삶의 탈출구마저 없다.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끈은

'고도'를 기다리는 일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고도를 확신하지 못한다. 아니 그 존재의 유무도

알지 못한 채 막이 내려져도 고도를 기다리며 연극은 끝난다. 인간의 삶이 얼마나 부조리하며,

그러한 삶에 목매다는 인간의 노력이 얼마나 모순인지를 이 연극은 드라이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2차대전 후의 사회상을 고발하고자 했던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끝내

구원받았는가? 착각하지 말자. 전후 시대를 거쳐 21세기로 넘어온 지금 세상은 무자비한 자본

축적의 경쟁, 세계화, 자본 자유화 이래 양극화의 심각성은 그 도를 넘어서고 있다. 20:80의

파레토의 법칙이 깨지고 우리 사회는 10:90이 공고화되고 있는 매우 위태로운 징후를 보이고 있다.

국민 10%가 극빈층이며 상, 하위간 소득 격차가 20배에 이르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평당 4천만원을 넘어선 타워 팰리스, 아이파크와 국가의 개입 없이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마져도

영위할 수 없는 극빈층과 준 빈곤층의 삶의 질을 생각해 보자. 또한 장기실업, 만성적 빈곤, 고용

가능성 배제로 이어지는 사회적 배제가 계속되는 한, 우리가 피와 땀으로 이룩한 정치적, 경제적

근대화의 성취는 아연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이제 국민들의 관심은 과잉 성취된 정치적 민주화가 아니라 경제적 민주화 혹은 경제적 정의의

실현에 쏠려 있다. 양극화라는 단어가 튀어 나오면 이내 자신들에 대한 압박으로 받아들여

과민반응과 격렬한 저항으로 돌아서는 기득권에 매몰된 상층부와 구체제적 향수에 뿌리깊은

일부 언론이 존재하는 한, 이 양극화의 사회적 공론화는 실패한 담론으로 사라져버릴 것이다.

고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고도는 결코 오지 않는다.

아무런 노력없이 단지 고도만을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 일인지를 직시할 때이다.

내 주위에 추위와 배고픔과 질병과 외로움에 허덕이는 이웃들을 보살피는 아름다운 실천에

참여하는 것이 사회 구성원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그런 사회를 이루는 것-

그것이 고도를 기다리는 행위를 넘어서는 일이 될 것이라고, 그것이 우리들의 내 손안에 달려있는

일일 것이다. 따라서 지금 이 시기는 단지 고도를 기다리는 수동적 행태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연대로 고도를 만들어가는 적극성이 요구되는 시기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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