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은 인간에게 자연적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의 시간은 역사적 시간이라고 기술했다.
인간의 시간과 자연의 시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인간의 시간이 자연계를 관장하는 우주적, 자연적
시간과 구별되는 것은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인간 정신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시간이란
결코 숫자로 된 추상적인 시간이 아니다.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이며, 이 의미부여 과정을
통해 인간의 시간은 역사로 전환된다. 시간이 과거-현재-미래로 구성되었듯이, 나는 추억-행동-
희망에 의해 형성된다. 인간의 의지가 투사된 역사적 시간 속에서 인간의 정신은 발전하게 된다.
파괴적이며, 동시에 건설적인 시간 속에서 변증법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정신이며 바로 이 정신에
의해 시간의 부정성은 긍정성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동물은 시간이란 개념을 인지하지 못한다. 반면에 인간이 정신세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시간에 대한
자각이 반드시 필요하다. 유한성을 인식하기에 인간은 더욱 무한성과 불멸을 향해 정신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내게 유호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파악함으로써 인간은 무엇
인가를 시도하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시간은 내게 나의 나약함과 잠재력을 동시에
일깨우는 정신적 원동력이다. 단지 주어진 시간이 아니라 오래 숙고되고 계획된 시간은 비어 있는
여타의 추상적 시간과 구별되며 그 자체로 정신, 삶, 승리를 의미한다. 죽음이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듯 시간을 통해 인간은 발전한다. 이처럼 시간은 개개인의 삶에 있어 본질적이며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의 삶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시간성은 인간을 소멸로
내몬다기 보다는 인간에게 생의 다양한 의미를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인간의 구원은 시간을 벗어나선 이루어질 수 없다. 시간은 단지 파괴적인 것이 아니라 나의 정신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자유의 공간이다. 인간의 진정한 위대성은 죽음과 시간이라는 유한성의
지평에서만 구현된다는 것이다. 만약 동물처럼 시간성에 무심하다면, 혹은 신처럼 시간성을 초월할
수 있다면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닐 것이다. 파괴적인 시간이 가져다 주는 신체의 쇠퇴와 해체를
직접 목격함으로써 그리고 시간의 모순성에 과감히 도전함으로써 인간은 인간 고유의 정신적 문화와
역사를 구축해 나가게 된다. 생의 의미는 시간을 앞서거나 시간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시간으로부터
도출된다. 시간과 함께 육체는 소멸하더라도 정신의 시간에 의해 파괴될 수 없다. 흘러가는 시간의
엄격성과 잔인함을 충분히 인식하는 의식은 시간에 속한 동시에 시간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의식일
것이다.
사르트르는 특히 미래에 관심을 보였다. 그에 따르면 미래란 나의 자유와 나의 힘이 발휘될 곳이며
나의 행위에 의해 채워질 실존적 범주이다. 사르트르는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당신의 의식을 잘
파악하고 그것을 잘 살피십시요. 당신은 그것이 움푹 패어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서 당신은 미래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파괴와 죽음으로 우리를 몰아가는 시간
옆에는 진보를 희망하게 하는 긍정적인 시간이 있다. 누구도 시간을 붙잡을 수 없으며 반대로 돌릴
수도 없으며 시간의 흐름을 가속화시킬 수도 느리게 할 수도 없다. 인간은 주어진 '시간' 속에서
살아가기에 시간은 인간의 실존을 결정짓는다. 그러나 "나날들은 시계에게는 동일한 것이지만,
인간에게 있어서는 같은 것일 수 없다"고 프루스트가 말했듯이 자신이 어떻게 시간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시간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다양한 결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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