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상상은 자유와 진보의 핵심 키워드이다.

체 게바라 2006. 5. 11. 12:00

 

 

우리는 일반적으로 상상이라는 세상에 대하여 지극히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다.

가령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 표현하는 비현실적인 꿈과 몽상가적인 기질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아이들에게 현실의 엄정하고 냉혹한 규칙을 일깨우려는 경향이 있다. 또한 부모들은 아이들이

법, 의학, 정치, 경제적이론 등 보다 현실적인 학문에 관심을 갖기를 바라며, 소설이나 영화 등에

심취해 학업을 소홀히 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실제로 우리는 게임이나 영화 등에 빠진 학생이 학업이나

현실적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소설 속 환상에 빠진 여주인공이 견딜 수 없는

권태로운 일상을 원망하다 결국 현실을 도피하는 자살에 이르게 되는 <마담 보봐르>의 줄거리는

상상의 부정적인 면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상상의 현실도피적인 경향 때문에

이성을 중시하는 철학자들은 상상을 현실의 진실을 외면하게 하는 무지의 근원으로 정의하곤 했다.

파스칼은 상상이 오류와 실수의 근원이며 인간을 혼돈으로 몰고 간다고 비판했다. 과연 상상은

현실도피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에 지나지 않을까? 만약 상상이 거짓, 허황됨, 현실의 부정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위험하고 해악스러운 것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 속 상상의

역할을 자세히 고찰하다 보면 현실과 상상이 반드시 모순되는 것만은 아닌 것을 알게 된다. 

 

물론 상상이 만들어 낸 이미지가 현실 그 자체를 반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상은 현실을 왜곡하기

보다는 현실을 달리 볼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을 한다. 나아가 픽션이 진실보다 더 진실되다는 작가들의

주장처럼 상상은 또 하나의 현실일 수도 있다. 보들레르는 "상상력은 모든 능력의 여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상상없는 예술이나 삶은 건조한 기록이나 무기력한 일상으로 머물 것이다. 끝도 없고, 법도

없는 상상의 특성은 자유와 비교할 수 있으며 따라서 현실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상상력이란 주어진 기존의 아이디어와 사실을 나의 주관에 따라 '새롭게' 조합하여 '다르게' 응용하는

능력을 지칭한다. 그렇다면 상상한다는 것은 주어진 외적 현실을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상상에 빠져있을 때 나는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가령 <구토>의

주인공 로캉탱의 경우를 보면 그는 한 여가수의 목소리에 취해 현실을 망각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묵직하고 쉰 듯한 여가수의 목소리는 갑자기 나타났고 세상은 사라졌다." 이처럼 상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현 세계는 일단, 사라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상상은 비현실적인 것으로

정의된다. 상상으로 만들어 낸 이미지는 현실 속 구체적인 사물과 아무리 유사하다고 할지라도 

근본적인 의미에서 현실과 다른 무엇이다. 가령 연극이나 영화에 심취했을 때 그 안의 주인공들은 

현존하는 사람처럼 느껴지고 그들의 이야기는 실화처럼 절실하게 내게 다가온다. 나는 그들의

인생에 비춰 나의 인생을 생각하기도 하고 주인공처럼 운명적인 사랑을 만날 것을 꿈꾸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영화를 볼 때 느꼈던 감정을 되살리기란 쉽지 않다. 현실을 대면했을 때 나는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아름답고 드라마틱한 장면만을 선택할 수 없다.

 

현실은 일상이다. 현실은 실용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고 나는 상황에 맞추어 끈임없이 나의

태도를 조절하여야 한다. 실제로 시험을 보는 것은 시험 보는 것을 상상하는 것과 엄연히 다른 것이다.

현실 속에선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실력을 지닌 사람도 상상 속에서는 일등을 할 수 있다. 상상이

부분적으로 나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해도 현실 속에서 이 욕구가 충족되기 위해선 진정한 노력과

피와 에너지가 요구되므로 상상과 현실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상상은 때로는 현실도피적 성격을

띠는데 현실을 외면하는 상상과 초라한 현실 간의 모순이 커질 때 인간은 괴로움과 갈등에 빠지게

된다. 즉, 상상은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순간적으로 나를 벗어나게 하고 나를 위로해 주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상상에서 찾을 수는 없다. 루소는 그의 <에밀>에서 "현실적 세계는 한정되어 있다. 상상의

세계는 무관하다. 한정된 현실세계를 연장시킬 수는 없으므로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줄여야 한다.

왜냐하면 상상과 현실 사이의 차이점들로부터 우리의 모든 불행과 아픔이 오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헌 바 있다. 현실과 상상 간의 괴리가 너무 클 경우 인간은 큰 괴로움에 사로잡히게 될 것임을

알았기에 루소는 현실과 상상 간의 균형점을 찾을 것을 권고한 것이다. 사물에 대한 명철한 인식을

중시했던 철학자들은 상상을 이성과 반대되는 것으로 간주했다. 상상력과 감각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않았던 플라톤은 상상력을 앎의 낮은 단계로 구분했으며, 그 자체로 오류라고 설명하였다. 

스토아학파에서는 상상력을 정념과 함께 '영혼의 병', '광기'와 비슷하게 취급했고, 몽상가들을

잘못 판단하고 무능력하고 의지가 결여된 자로 묘사했다.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등에 따르면 상상은

불명확하고 모호한 인식일 따름이며 오류와 기만을 야기하는 주범이다. 파스칼은 상상에 의한 허황된

행복을 비난한다. "무엇보다 우리를 분하게 만드는 것은 상상하는 자에게 상상이 이성보다 훨씬

풍부하고 완전한 만족감을 채워주는 것을 보는 것이다."

 

실제로 구체적인 물질세계를 외면한, 즉 정치적, 경제적인 현실적 관계로부터 도피하여 환상의 세계에 

안주하기 위한 상상력은 무의미하다. 과학적 현실을 참작한 비행기의 구상은 창조적 상상력 덕분에

실현이 가능했지만 복권당첨의 꿈이나 축지법을 쓴다는 등의 몽매한 환상은 무용한 것으로 끝난다.

장애아가 스포츠 스타가 되기를 꿈꾼다든가 노력없이 시험에 합격하기를 바라는 것도 수동적, 현실

도피적 몽상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망상과 상상은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만이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 상상은 본질적으로 분석적인 면과 창조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기존의 것에 대한 명철한 통찰이 없다면 새로운 조합과 창조도 현실에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 

 

본능에 따라 현실적 노력을 거부한 채 환상 속으로 도피하고 현실을 미화하는 것은 상상에 있어 그리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상은 실천을 통해 현실과 연결되며 예술가의 상상이

구체적인 현실과  얼마만큼 강도 깊게 관계하느냐에 따라 예술작품의 깊이와 풍부성이 결정될 수 있다. 

레닌(V. I. lenin)에 따르면 "모든 예술가에게 내용을 제공해 주는 근원은 구체적인 삶이다."

즉, 상상은 끊임없이 현실로부터 재료를 공급받고 있으며 현실적 재료를 근거로 해서 환상적 세계를

구축한다.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형성된 상상은 없고 있을 수도 없다. 한번도 새나 물고기를 보지

못한 사람은 인어공주와 날개 달린 말을 상상해 낼 수 없고 유령과 같은 공포물의 주인공들도 시체나

병자 등을 통한 감각적 경험과 사고로부터 도출된 것이다. 상상이란 현실에서 빌린 이미지들의 새롭고

비현실적인 배합을 시도하는 것이다. 상상과 현실 간에 이처럼 깊은 유사성이 존재하기에 사람들은

예술작품에 동화되고 그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는다. 입센의 <인형의 집>이 실질적인 여성해방을

촉진하였고, 괴테의 <잚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많은 자살자를 낳았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상상은 현실 밖으로의 탈출이지만 우리에게 욕망의 충족을 가져다 준다는 점에서 치유, 회복의 기능

역시 수행한다. 사회적, 도덕적 규범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일상에서 끊임없는 욕망을 자제하고

억압한다. 이러한 이성적 검열을 잠시 그만두고 꿈과 환상을 통해 욕망을 상징적으로 충족시키는

행위는 결코 비난받을 만한 행동이 아니다. 우리가 평소에 가질 수 없는 부와 미를 상상하는 동안

우리는 현실적 제약으로부터 일시적 휴식을 취하고 쾌락적 욕망을 보충할 수 있다. 이러한 행동이

망상에 불과하다는 지적은 중요하지 않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만은 아니며 따라서 일시적으로

이성적인 나를 잊는 것도 필요하다. 영화나 소설을 보고 감동하여 현실을 잠시 잊는 것도 정신건강에

유익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적 장면 앞에서 관객이 느끼는 감정을 '카타르시스'라고

지칭했는데 이 경우 내가 현실 속에서 결코 행할 수 없는 폭력과 욕망을 간접적으로 실험하고, 그에

따른 비극을 목격함으로써 관객은 위험하고 해로운 내적 충동에서 벗어나게 된다. 환상을 통한 간접

경험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육체적, 동물적 충동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상상이 반드시

현실의 부정인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것은 현실적 결핍을 보상해 줄 수 있다. 망각과 환상읋 통해

인간은 정신적 균형을 찾을 수 잇고 욕구불만을 해소하여 건강한 모습으로 현실로의 복귀를 준비할 

수 있다. 니체는 모든 환상이 부정적이거나 쓸모없는 것이 아니며 환상이 인생의 가혹함을 견디게

해준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사회적 법규와 도덕에 의해 억압된 자유와 본능을 예술로

승화시키지 못할 경우 인간은 창조적 희열을 놓칠 수 있다. 

 

더우기 현실로부터 도출된 상상은 다시 현실에 투사되어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우선 상상의 예언적 성격을 생각해 보자. 현실로부터 유출된 요소들이 상상을 통해 다시 현실화되는

예를 우리는 수없이 목격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상상했던 헬리콥터, 낙하산 등은 당시에는

상상이었으나 지금은 현실이 되었다. 달나라 여행도 공상이었지만 이제는 현실이 되었다. 상상의

효율성은 예술, 과학, 기술 등의 여러 영역에서 확인된다. 예술적 상상은 기존에 존재한 재료들,

색깔, 형태, 아이디어를 재창조함으로써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낸다. 과학에 있어서도 가정이라는

상상이 실험의 과정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미 많은 학자들에 의해 밝혀진 바 있다. 어쩌면

위대한 발명품들이 만들어진 것은 과학자들의 창조적 상상력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과학자가

관찰을 통해 알게 된 것과 이미 알고 있던 지식을 통해 가설을 세울 때, 그는 자신의 상상력을

이용한다. 그리고 이 가정이 실험에 의해 증명될 때 그것은 자연에 작용하는 메커니즘에 더욱 적합한

이해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이러한 예가 보여주듯이 현실과 상상은 모순적 관게가 아닌 상호적 관계를

맺고 잇다고 말할 수 잇다. 상상은 현실과의 거리두기라기 보다는 현실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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