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매치 포인트

체 게바라 2006. 12. 17. 16:16

 

 

 


 

식상한 공식으로서의 불륜은 그나마 흥미롭게 남은 유일한 사랑 관계의 전제처럼 보인다. 영화에서 노라는 크리스를 유혹하는 것도 아니고 크리스 스스로가 그녀를 원하게 되는데 이는 다음의 공식과 같다. 사랑이냐 돈이냐. 이러한 선택도 표면적일 뿐이고 돈 혹은 부에 대한 상징으로서의 불륜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선택만이 있는 듯하다.


말하자면 이렇다. 사랑도 가지고 부도 가지고 충실한 부인도 가지고 이것이 성공이 아닌가. 우디 앨런식의 유머로 말하자면, 불륜은 부유한 자의 교양적 취미이다. 고양이나 개를 기르는 것처럼. (라고 말하지 않을까) 영화가 크리스의 매치포인트 시점까지 가는 동안 이끌어가는 힘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공식의 공유에의 확인 외 일상적 드라마뿐이다.


한마디 경구를 극화하는 우디 앨런식의 연극은 그 경구를 위한 설득을 위한 한 예, 히스테리적인 상상 이야기일 뿐이다. (히스테리적인 표현과 편집증적인 주제?) 그렇기에 어떤 현실성보다는 극적인 결말이 그의 영화의 매력이다. 말해보아라 이번엔 어떤 일상생활의 가설을 희극화 시켜 놓겠느냐? (그의 영화엔 비극이 없다. 그는 인생에 대해 냉소적이고 그렇기에 비웃으며 웃으며 세상을 그저 그렇게 긍정한다. 비극의 형식은 희극을 위한 표현일 뿐이다. 누가 그의 영화를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겠는가?)

 



오히려 매치 포인트의 내용과 흡사한 비극으로 ‘Talented Mr.Reply' 를 말하겠다. 리플리는 부유한 딕키를 동경하게 되는데 이는 신분상승과 애정이 함께 작용한다. 매치 포인트에서 이 둘의 표현이 노라와 빅토리아의 남편으로 나타나는 반면 리플리에서는 딕키라는 인물로 겹쳐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초점의 문제가 될 수도 있는데 톰 리플리는 자신과 상반되는 혹은 자신의 결여를 채워줄수 있는 대상 딕키와의 갈등에 있다. 이 갈등은 톰 자신의 부정과 (딕키를 부정하는)자신의 정체성으로 표출된다. 이 갈등이 폭발해 톰 리플리는 자신이 딕키가 되기도 하고 톰이 되기도 하다가 결국엔 딕키로 자신을 바꾸어 버린다. 그러나 그 영화가 말하듯 ’자기 자신을 깊고 어두운 창고에 가두어‘ 놓고 있는 톰 리플리는 자신의 결여를 채워넣음과 동시에 자신을 지워야만 했다. 결여하고 있는 톰은 사라진 것이다. ’리플리‘에서 동성애가 신분상승의 욕구 혹은 동경과 겹쳐지는 것은 이 영화의 차별화된 기능이다.



 

 매치 포인트에서의 크리스는 어떤 대립 없이 운 좋게, 어떻게 보면 욕망의 대상도 아닌 지켜야 할 주어진 선물로서 부의 위치에 서게 되지만 리플리는 채워지지 않는 결여, 결핍, 애정과 욕망의 실현의 완성으로서 딕키의 위치에 서게 된다. 이는 과잉, 잉여의 향락과 싸우는 크리스의 모습을 확실히 해준다. 그렇기에 크리스는 절대 비극적 인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톰이 모든 것을 얻었음에도 불행하게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리플리의 동성애 이야기를 더 해보면, ‘질투는 나의 힘’의 질투와 유사하다. 톰 리플리의 대상 ‘딕키’는 자신의 결여의 실체이다. 형체 없는 욕망을 채워주는 대상a 로서 아름다운 마지에게 마음을 끌리는 듯 했던 리플리는 차라리 ‘마지(기네스 팰트로우)’가 사랑하는 딕키를 사랑하기로 한다. 마지는 리플리의 욕망의 대상이 아닌 경쟁자가 되어 버리고 같은 위치에서 마지를 이기는 것이 곧 마지를 쫓는 것이 아닌 마지가 리플리는 쫓는 게임이 된다.

 

 


 

 언제나 중요한 순간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순간은 도박이다. 그 순간이 기표 결정의 기로이기에 도박적이다. 도박은 승자와 패자가 아닌 승부의 결정을 인정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로 도박사에 대한 자세를 요구 한다. 승부수를 띄우는 것, 그 자체가 도박사가, 승부사가, 플레이어가 가진 능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