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거래처의 볼일이 끝나고 먼지를 뒤집어 쓴 차를 청소하러
세차장으로 들어갔다. 아주머니 한 분과 젊은이가 차를 인계 받았다.
예의 세차 절차에 따라 말끔하게 변해가는 내 차를 바라보면서 특히
아주머니의 기계적이고 숙련된 손놀림에 은근히 감탄하면서 햇살 따사로운
깊어가는 가을의 오후를 감상하고 있었다.
실내 청소까지 마친 아주머니가 커피 한잔 하자며 사무실로 안내했다.
책상 위에 읽다가 펼쳐진 책이 내 눈에 띄였다. 장 코르미에가 지은 <체 게바라 평전>.
나는 내 눈을 의심하며 아주머니 얼굴을 다시 한번 더 쳐다 보았다.
"이 책 혹시 아주머니가 읽으시는 책인가요?"
"네. 아들 책장에 꼿혀진 것을 흥미가 있어 가게로 들고 나와 읽고 있어요."
"다 읽으셨나요?"
"네, 그런데 조금 어려워서 다시 한번 더 읽으려구요."
"책을 읽으시고 어떤 소감이 들던가요?"
나는 호기심 반, 의구심 반의 심정으로 아예 아주머니와 대화할 요량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의 사상같은 것은 잘은 모르겠으나, 자신보다는 많은 대중의 삶을 위해, 그들이 가진 자들의
핍박과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죽을 때까지 헌신한 삶에 커다란 감동을 받았어요.
어쩜 그렇게 자기 자신도 가족도, 의사라는 안락한 삶과 사회적 지위까지도 그런 대의를 위해
헌신짝처럼 던질 수 있을까요?"
세차장 아주머니는 그녀의 말처럼 체 게바라의 사상과 이념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모르고
있었으나 체 게바라 사상의 핵심을 정확히 궤뚫고 있었다.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 장교에게 했다던 마지막 말을 되새겨 보자.
"체 게바라, 당신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소?"
"혁명의 불멸성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는 중이오."
자본이 모든 것들을 지배하는 이 시대에 과연 혁명은 가능한 일일까?
현실적으로 혁명이 더 불가능하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더욱 혁명을 갈망하는 욕구가 많다는
이 특이한 반작용도 과연 시대정신의 하나일까? 아니면 단순히 혁명에 대한 아련한 추억 뿐일까?
체 게바라에 대한 미 CIA의 보고서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는 두 사람의 듬직한 동지를 가지고 있다. 한 사람은 혁명의 도끼
역할을 하는 라울(피델 카스트로의 동생) 카스트로이고, 또 한 사람은 피델의 머리 역할을 하는
체 게바라다. 이 중에서도 특히 체 게바라는 하루 속히 제거되어야 한다. 그가 쿠바의 카스트로에게
두뇌로 존재하는 한, 미국은 언젠가 그로(체 게바라) 인해 큰 재앙을 맞을 것이다.'
미국이 '체'로 인해 골치를 썩이고 있는 와중에 볼리비아 주재 CIA로부터 희소식이 날아 들었다.
체의 게릴라중 두 사람의 변절자 덕분에 '체'가 있는 곳을 알아낸 것이다.
미국의 명령은 간단했다.
'즉시, 사살하라.......'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제국주의 체제의 타파를 위해 싸운 체 게바라.
'체'에 대하여 미국이 그토록 죽이지 못해 안달한 이유는 미국의 식민지나 마찬가지였던 쿠바의
혁명을 통해 미국의 체면을 구기게 하였으며, 이를 통해 공산 혁명의 열기가 남미와 전세계적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혁명 과정에서 게바라 스스로 붙인 '체'는
스페인어로 '어이 친구' 정도지만 바로 이 이름이 격정의 5~60년대를 뜨겁게 살다간 한 완성된
인간상을 의미하는 이유는 그가 추구하고 실천한 정신이 시간이 지나도 영원하기 때문이다.
1997년 볼리비아 정부군이 암매장한 체 게바라의 시신이 발굴되어 그가 콩고 혁명을 위해
쿠바를 떠난 지, 32년만에 그의 혁명의 고향인 쿠바의 하바나로 돌아왔고, 피델은 그의 유해를
산 클라라 기념관에 안치하고, 체 게바라 추모주간을 성대하게 개최한다.
이때의 군중대회에 참관했던 '체'의 조국이었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생(참조로
1997년 그의 모교였던 이 대학에 '체 게바라學'이 커리큐럼으로 개설되었다)의 감상기가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우리는 대학 교정에서 체 게바라의 깃발을 흔들었다. 체 게바라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평등과
정의를 의미한다.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체 게바라는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다.
과연 체 게바라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건재할 수 있을까? 내 대답은 당연히 '그렇다'이다.
그는 행동과 사상을 일치시킨, 참으로 찾기 힘든 독특한 사람이었다.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현대 사회에서 이런 류의 인물은 찾기가 힘들다. 격동의 시대를 불꽃처럼 살다 간 그의 삶과
같은 인물을 앞으로 기대한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이상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싸우는 위대한 전사'의 이미지를 구축할 것이다.>
평등한 세상을 꿈꾼 죄, 정의로운 세상을 꿈꾼 죄, 그리고 모든 인간이 억압과 차별로부터
해방되어 진정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 죄'를 저지른 체 게바라는
우리가 평등하고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한, 혁명의 불멸성으로 살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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