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은 그 자유적 삶의 의지로 인하여 국가나 민족, 정치라는 체제에 순응되기 이전에
근본적으로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의지의 존재들이다. 어떠한 외부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이 살고자 하는 방식대로 삶을 영위하고자하는 의지, 여기에서 아나키즘의 사상이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장 프레포지에의 <아나키즘의 역사/이룸 刊/이소희,
이지선 共譯>는 디오게네스와 알렉산더 대왕의 그 유명한 일화로부터 시작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디오게네스를 찾아와 무엇을 해주면 기쁘겠냐고 묻자 그리스의 견유학자 디오게네스는
시큰둥하게 "내 앞의 햇빛을 막지 말아 달라"고 대답한다. 이 디오게네스의 반권력, 비제도,
무소유의 발언이야말로 아나키즘의 본질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사상인 것이다. 이러한
디오게네스로 대표되는 견유학파의 사상은 스토아학파로 이어졌고, 절대 자유의 신봉자들은
정치와 종교가(교황과 황제) 한 통속이 되어 민중의 삶을 억압했던 중세 기독교 중심사회에서는
이단아로 규정되었다. 교권과 세속적 정치인 황제와 신분제에 의한 계급적 질서와 권력에 저항했던
아나키스트들은 카타르파의 '자유로운 영혼' 수도회로 이어지고, 바쿠닌의 혁명적인 사회운동과
니체의 초인사상을 탄생시키는 모태가 되었음을 이 책을 알려준다.

이러한 아나키즘의 자양분은 바로 프랑스혁명의 원천이 되었고, 19세기부터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혁명의 에너지로 작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혁명이 완료되면서 아나키스트들은
자체분열과 선택의 체제로의 편입이라는 기로에 서게 되고, 여기에서 레닌과 엥겔스의 고민,
마르크스의 선택에 의해 정치적 아나키즘은 해체의 길로 접어 든다.
그러나 정치적 아나키즘이 해체되었다고 그 사상마저 완전히 숨죽인 것은 아니었다.
20세기에 접어들자 아나키즘은 현대예술의 상상력에 젖줄을 대면서 아연 화려하게 부활한다.
초현실주의의 문학을 탄생시킨 부르통 엘뤼아르, 플로베르 등이 자유로운 아나키즘의 작가群을
형성하였다. 이들의 문학적 아나키즘의 개념은 프루동의 정치적 아나키즘과 연대하면서 근대
사회의 정치적 예술적 이상향으로 제시되었다. 이처럼 이 책은 서양사적 아나키즘의 원류를
더듬고 그 족보와 파생된 아나키스트적 인간에 대한 탐구를 이어 나간다.
그렇다면 왜 21세기에 접어든 현재 철지난 아나키즘을 이야기하는가?
아나키즘은 세계의 경찰이라는 호루라기를 든 미국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제국주의적 성향의
국가주의에 대한 반전, 반대운동의 에너지로 작용하기도 하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를 삶의 이상으로 제시하는 환경론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물질만능의
자본주의 질서에 대항하는 인간 본연의 인간적 학문이며, 모든 사물의 컨버전스를 꿈꾸는
예술적 상상력의 젖줄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나키즘이야말로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삶의 철학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동양의 아나키즘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이 흠결로 지적되며 따라서 이 책은 마땅히 <서양에서의 아나키즘의 역사>로
그 제목이 바뀌어져야 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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