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그리는 마법사 허준호, 그리고 <행복>
허준호에게 있어 사랑이란 절대적, 보편적 가치다. 그러기에 <봄날은 간다>에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대사는 상우가 은수에게 던진 말이 아니라, 절대적,
보편적 가치인 ‘사랑’ 그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며, 동시에 이러한 사랑의 가치를
잃어버린 관객에게도 던지는 대사다. 마치 “사랑아, 네가 변화할 수 있는 가치였니?
세상 모든 것이 변하여도 너만은 변할 수 없는 것이 아니잖니?“라고 묻는 것처럼
애절하게 들렸고, 또한 그 대사에 나는 숨이 멎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었다.
일회성의 소위 원나잇 스탠드가 도덕적으로도 하나 거리낌 없는 현대에, 지고지순한
사랑이란, 이미 고전문학 작품에서에서나 찾아보아야 할 우리 모두에게 이제는 잠시 동안
잃어버린 혹은 잊어버린 박제된 가치인지도 모른다. 그렇듯이 사랑을 어디 교환되거나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적 기능이나 원초적 본능의 유전학적 기능이라는 형이하학적인
가치로 한정시킨 죄를 우리는 범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행복>의 헤드 카피가
사랑, 그 잔인한 행복인지도 모르겠다 .
허진호는 그의 출세작이자 첫 작품이었던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불치병에 걸린
사진사 정원은 첫사랑에 실패하여 사랑을 믿지 못하며 생각한다.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
놓는다. 서먹하게 몇 마디를 나누고 헤어지면서 남의 여자가 되어버린 첫사랑 지원이는
나에게 자신의 사진을 치워달라고 했다. 그녀가 마음에 두었던 것이 추억인지, 아니면
그리움의 고통인지 알 길이 없다.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차창 밖에는 벌써 가을이 다가왔다.”고 했지만, 그가 죽음을 맞이하고 다림이 사진관을
찾아왔을 때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
라는 나래이션으로 추억이 되지 않은 다림과의 사랑을 그리며 인간을 구원하고 위무하는
사랑의 가치를 보여 주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3번째 작품 <외출>이후 허진호는 <행복>에서는 참아내는 사랑을
또한 구원하는 사랑을 잔잔히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삶의 막장까지 다다른 남자 영수는,
요양원 ‘희망(?)의 집’에서 은희를 통해 치유 받고 구원받는다. 그것은 단지 망가진 몸의
치료뿐만 아니라 온전히 마음의 치유까지를 포함한다. 이 영화에서 허진호는 다양한 대비를
보여준다. 영수 삶의 터전이었던 건조하고 단조로운 도시와 계절과 환경의 변화가 다채로운
요양원이 있는 시골, 은희와의 이별을 준비하고 결국 요양원을 떠나는 영수와, 영수에게
모든 것을 주고 결국 혼자 남는 은희의 사랑과 영수의 배신,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이라는
서로 대칭적인 요소들의 이미지가 영화 속에서 화려하다.
영수의 변심과 뒤이은 이별의 현실 앞에 바람을 헤치며 달리는 은희, 그러나 결코
뜁박질을 할 수 없었던 은희의 폐는 견딜 수가 없다. 차가운 도로위에 나동그라진
은희의 몸 위로 바람은 불어오고, 폐를 감싼 은희는 일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엔딩 자막이 오르면서 영원한 보헤미안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가 흐른다.
그러니 관객들이여, 부디 이 노래가 다 끝날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마시기를..
그러므로 나는 생각한다. <행복이란> 사랑이며, 상우가 말하는 사랑과 같이 절대적이며
보편적이고, 변하지 않으며, 혹은 언제나 부르면 거기에서 대답하는 것이라고,
절절한 추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형이거나 현재형으로의 마침이라고,
비록 떠나가는 사랑이라도 그 사랑은 변하지 않는 거라고,
다만 사람이 변한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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