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외로움에 지쳐서

체 게바라 2007. 10. 27. 09:45

 

대관령에 첫 눈과 얼음이 얼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갑자기 추워진 이런 가을 아침은 모든 깊이를 경멸한다. 투명한 표면으로 이미 자기의 깊이를 이룬 까닭이다, 안개에 섞여 맑은 것들이 몰려온 이 아침, 어제처럼 변덕스러운 날씨와 햇살, 구름, 비가 어우러져 나는 오래 묵은 새로움이다. 그리하여 어느덧 가을이다. 여름의 그 무성하던 풀들은 쇠락하여 누렇다. 그렇다고 시듦을 낙담할 일도 아니요, 번성함을 마냥 기뻐할 일도 아니다. 쇠락과 번성은 고정된 바가 없으니 굳이 자기 처지를  낙담 삼을 일이 아니다. 절기가 가을을 넘기자 자연스레 내 입도 침잠하여 무거워진다. 수도원에서 묵언을 수행의 수단으로 삼는 수행자처럼 그렇다고 내 침묵이 고결하다고는 할 수 없다. 내 안에는 늘 으르렁거리는 성난 개와 하품하는 개 두 마리가 있다. 세속에서 멀어지며 분노도 증오도 삭으니 내 안의 성난 개는 할 일이 없다. 나는 분노하지도 않으며, 흐느끼지도 않으며, 이 가볍고 경망한 세상에서 조금 떨어져서 관조할 뿐이다. 그러하니 내 안은 더욱 외로움으로 가득하다. 가을은 그래서 내 안의 외로움을 측정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그 외로움을 굳이 겉으로 드러내지는 말자. 생명이란 늘 오래된 새로움이고, 외로움은 생명의 본질이 아니던가? 외로울 때야말로 너무 바빠 방치해 놓았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고, 잃어버렸던 생의 리듬과 휴식을 찾을 시간 일게다. 때로는 외로움이 사람을 강하고 독립적으로 만든다. 그러니 외로움을 견디자. 그래도 힘들다면 강으로 나가자. 강으로 나가서 황인숙 시인을 만나자.


              <강>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황인숙-


내일도 나는 외로움에 지치면 강으로 나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는 어느덧

겨울로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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