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는 서산에 떨어지고, 들판에는 저녁놀의 잔영이 부서지며
겨울은 아직도 거기에 허무하게 누워 있었다. 이내 긴 어둠이 밀려오며, 이따금씩 불어오는
아직은 차가운 바람은 잊혀진 기억의 현(絃)을 살며시 흔들며 달음박질 치고 있었다.
정호승 시인의 '부치지 않은 편지'가 페이소스 짙은 김광석의 목소리를 타고
이미 과거로 돌아가고 있는 창밖의 어둠을 배경으로 차내에 번지고 있었다.
남과 북의 병사들이 서로를 향해 총을 쏘고, 이어지는 수류탄의 폭음과
병사들의 고함소리에 맞서 배경으로 깔리던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김광석의 이 '부치지 않은 편지'는 끝끝내 이기고 있었다.
마치 '굳모닝 베트남'에서 B29의 폭격으로 사방이 불타는 생지옥을 배경으로 깔리던
루이 암스트롱의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What a wonderful world)의
아이러니가 강한 반전 메시지로 다가오던 그 느낌처럼 가슴으로 번져왔다.
풀잎은 스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혼자 걷다가
사람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 강 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 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희망이란 스스로 균열하는 절망의 그 안에서 고통스럽게 자란다.
더 많이 절망하고, 더 많이 고뇌하는 삶에서
절망은 희망을 자양분삼아 자라나는 것이다.
그러나 균열 없는 안락함이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희망보다는 절망이, 열정보다는 차가운 이성이,
생육보다는 침잠과 겨울잠이 지배했던 이 겨울이
그의 삭풍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이즈음
봄은,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봄은,
숨어있던 겨울이라는 운명을 가차 없이 드러내 보이고,
그것에 마음을 부대끼는 나 같은 사람은 여지없이 몸과 마음을
파리하게 마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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