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 껍데기는 가라.
우리는 강력한 대통제의 나라에서 며칠 전 참으로 어이없는 광경을 TV에서 목격하였다.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 자리에서 “떡됐다. 새발의 피...이 정도는 괜찮죠?” 라고 하며,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모습과, ‘어’를 ‘아’로 해석하고, 행간을 무시한 선정적 제목으로 각색하는 언론의 내용 왜곡에 대한 특별한 멘트를 보며 노무현 임기 내내 지속되고 있는 지배 언론들의 反노무현 의식에 대하여 우리가 과연 21세기를 살고 있는 것인가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덧붙여 지금 내게 지역주의 타파와 남북화해와 통일을 지향하고, 서민대중과 근로자를 위한 정책정당을 지향하는 백년정당을 목표로 하던 창당의 주역들이 스스로 ‘먹튀’가 되어 “난파선에서는 물이 다 찰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며 탈당을 감행하는 용감한 오늘의 열우당의 국회의원들을 보며 자괴감을 감출 수 없는 이유는, 이 나라 정치인들의 가슴 속엔 복잡하고 자신의 이익의 셈법만을 논하는 저자거리 장사치들의 실리주의(쓰고 보니 年前에 鄭氏의 실용주의가 연상된다)만 가득하고, 정작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인간정신을 진화시키는 명예심은 쓰레기통 속의 쓸모없는 쓰레기들처럼 하찮은 덕목으로 전락시키는듯하여 씁씁하기가 그지없다. 이러한 정신적 공황의 열우당 내의 사정을 보며, 나는 다시 정치인 노무현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노무현은 현재형의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미래와 대화하고 있었다.
노무현은 집권하고, 청와대의 시스템을 ‘이지원’이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청와대의 정책의 기획-입안-실행-분석 및 평가-개선이라는 시스템을 정착시켰듯이 각 행정부의 업무에 대해서도 혁신을 주제로 시스템화를 추진하였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정책별로 실행결과를 계량화하여 투입한 예산에 대한 결과의 가치에 따라 차년도 투입예산이나 그 정책의 영속성을 판단하는 잣대의 기초가 되고 있다. 이러한 행정업무의 시스템화는 이제 전 행정부에 뚜렷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의 집권 후 2~3년 동안 이런 시스템의 정착에 힘을 쏟은 노무현은 그 후 미래 이 나라와 민족의 좌표에 대하여 매진하게 된다. 10년 20년 후 이 나라의 경제, 사회, 정치, 산업, 남북문제, 사회복지의 문제 등의 좌표를 설정한 후,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오늘날의 우리 사회가 준비하고, 개혁하고, 미리 손보아야 할 것에 대하여 호소하며 주문하였다. 이러한 그의 주문은 우리가 익히 보아왔듯이 각 이해 계층들에게 철저하게 반발을 샀고, 무시당했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살펴보면 그의 지지도가 18% 언저리에 있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하기만 할 따름이다.
무엇이 노무현을 당당하게 하는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오늘의 한국 사회가 준비하여야 할 것들에 대한 노무현의 호소와 주문에 대하여 그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집단들도 노무현의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반드시 실천하여야 할 사항임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즉, 노무현의 개혁안의 진정성은 의심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이유는 오직 한가지로 귀결된다. 그들은 그것을 ‘노무현’이 주창하고 제안하였기에 싫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그 손해와 피해가 결국 지배계층 소수가 아닌, 자신들에게로 넘어오게 되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러한 개선안에 대하여 반대하는 지배계층에 대하여 당연히 심판하여야 할 것인즉, 그러나 다수의 국민들은 그 소수 지배계층이 만들어낸 ‘反노무현’ 패러다임에 함몰되어 역으로 노무현에게 삿대질을 하고 있다. 참으로 비문명과 언론폭력의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제안하는 것마다 무관심과 푸대접, 비판의 대상에 오르면 포기할 법도 한 것인즉, 그러나 노무현은 힘이 떨어지는 레임덕의 임기 말에도 오히려 당당한 자신감으로 국민들을 대하고 있다. 반대 집단들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그러니 조중동-한나라당-열우당 비노세력과 이들과 입장을 같이하는 90%의 국민들에게 한마디만 하자. 노무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단 한번이라도 술수를 부린 적이 있던가? 그는 오히려 자신의 기득권을 버림으로써 명분과 명예를 얻었고, 이는 그를 대통령의 자리로 끌어올린 가장 큰 원동력임을 그대들도 알지 않는가? 그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기득권을 해체시킨 이 나라 정권사상 유례가 없는 대통령임을 말이다. 노무현도 인간이기에 대통령과 대화할 상대들이 모두 외면하는 참으로 희한한 세상에 살고 있는 그도 때때로는 통분하기도 하고, 혹독한 고독의 비장감에 사로 잡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힘도 빠지고, 대강대강 좋은 것이 좋다고, 양보하고, 거래하면서 남은 임기를 채울 법도 할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의 사전엔 이러한 너절한 레토릭은 없다. 아니 있을 수가 없다. 만일 그렇다면 그는 ‘노무현’이 아니고 ‘가짜 노무현’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보편타당성을 담보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가 당당해야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우리의 인류가 발전시켜온 사상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보편타당성이다. 기실, 모든 이론은 이 보편성의 확보 없이는 이론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해버린다. 그렇다면 노무현의 일련의 제안은 보편타당성을 담보하고 있는가? 대개의 경우 노무현의 제안을 역으로 검증해보면 과거 언론이나 이해 당사자 집단과 학자들로부터 끊임없이 그 문제가 제기되어 왔던 사안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과거사진상, 국가보안법철폐, 전시작전지휘권의 양수, 한미군사협정의 개선,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최소한의 제도의 확보와 득표율의 합리성을 위한 선거구제의 개편,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일의 일치를 위한 선거제도의 개선을 포함한 개헌, 평화의 정착을 위한 대북문제, 공무원, 사학, 군인연금 및 국민연금제도의 개선, 사회안전망 확충과 국가재정 건정성의 담보를 위한 증세안, 노-사-정 대타협, 국방개혁 등은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식의 과거 정권들이 유야무야 회피하여 온 사안들이었다. 이러한 당면한 시대정신에 대하여 노무현은 당당히 발언하고 제안한다. 10년 20년 후의 우리 후손에게 그 부채를 넘기지 말고,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회피하지 말고 어렵더라도 해결할 것은 해결하고 나머지는 시한을 정한 로드맵으로 합의하자고 말이다. 그러나 결과는 어떤가? 어느 사안 하나라도 온전한 지지가 있었던가? 그러나 노무현은 자신의 권한 내에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좌고우면없이 실천하고 있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아무리 보편타당성이라는 것이 시대정신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집권층의 지지율이나 여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가? 아니면 그 시대정신이 함의하고 있는 내용이 보편성을 담보하고 있다면 보편타당성을 확보하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내 머리로는 후자가 답으로 나온다. 노무현은 시대정신을 이 나라의 앞에서 끌고 가는 시지프스다. 그러므로 노무현이 당당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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