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르네 마그리트는 누구인가
벨기에 출신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e Magnite, 1898~1967)는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20대 초반 벨기에 왕립미술학교에 입학하여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마그리트는 초기에 입체파와
미래파의 영향을 받았다. 1926년부터 1930년까지 파리에 체류하면서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했으며
살바도르 달리와 후안 미로, 시인 폴 엘뤼아르 등과 교류했다. 하지만 초현실주의자들이 흔히 빠져
들었던 자동기술법이나 꿈의 세계에 대한 편집광적 탐구에서 벗어나 현실의 신비 등에 관심을 보이면서
독특한 이미지를 창조해 나갔다. 1967년 타계하기까지 독자적 초현실주의 세계를 보여주며 20세기
미술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2. 약력
-1898. 11월 벨기에 레신에서 출생
-1916. 브뤠셀의 왕립미술학교 입학
-1922. 조르제트 베르거와 결혼
-1927. 파리 근교의 페뢰-쉬르-마른에서 첫 개인전
-1929 달리, 폴 엘뤼아르와 친분관계 맺음
-1932. 폴 누제와 2편의 단편영화 제작
-1943. 인상주의 시기라 불리우는 작품을 제작함
-1948. 공격적인 작품을 다수 제작(바슈시대)
-1954. 뉴욕서 <말과 이미지>展
-1957. 벨기에 아카데미 임원에 선출
-1961. 1958년에 정부로부터 의뢰받은 브뤠셀의 세 의회를 위한 벽화를 완성함
-1965. 뉴욕 근대미술관(NoMA)에서 회고전
-1967. 8월 15일 췌장암으로 사망

3. 르네 마그리트의 미술사적 의미
르네 마그리트는 20세기 미술사에 있어 매우 독특한 영역을 개척한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다소
기괴하고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것이 '의도적으로 그려진 사실'이라는 점에서 진실의
힘을 갖고 관객에게 다가온다. 그의 작품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현상이나 사실들을 그려내
'존재하는 것'으로 환치시킨다. 그러나 관객들은 그것이 미술이라는 시각적 장치에 의해 곡해된
현실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면서 잠시 씁씁해진다. 그는 매우 사실적인 기법을 동원하여
가상의 회화적 공간을 구성한다. 외부의 모습이나 가시적인 것에서 출발해 기이하면서도 시성이
담긴 사고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 마그리트 고유의 회화적 개념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일단
시각적 측면에서 매우 쉽게 다가온다. 관객들은 그가 그려낸 비상식적인 세계를 환영이라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 즉 그의 회화는 속이려는 것이 아니라 속고 있음을 알려주는 장치가 된다.
말하자면 관람객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속고 있음을 알게 하는 시, 지각의 마술, 상식의 마술을
제공하는 것이다. 마그리트는 이렇게 집요하게 지각의 문제를 다루어 왔다. 우리는 사물을 바라볼 때
그것을 그냥 바라볼 뿐, 시,지각에 반영된 사물이 '보는 행위'에 속하는 것인지 '보이는 사물'에 속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지 않는다.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의 구별은 나중에 이 지각체험을
돌이켜 볼 때 비로소 구분이 가능해진다. 이는 후에 등장하는 철학자 퐁티(Merleau-Ponty, 1908~
1961)가 가장 집요하게 매달렸던 주관과 객관의 대립 극복이란 문제의 예고편이자 동시에 완결편
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후 포스트모던 시대에 등장하는 주체와 타자의 문제, 정체성 등의 개념과도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이미 시대를 넘어서 있다. 그의 그림은 매우 쉽고 익숙한 것들의 조합이지만
매우 철학적이기도 하다. 그는 언어의 지시성과 실재하는 존재와의 간극,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의문과
환상 사이에서 인간의 지각능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멋없는 것인가를 강조한다. 그래서 '부재하는
실재'를 통해 언어의 이중적 의미, 즉 실재하는 것과 그것을 대신하는 기호와의 관계를 규명하려
함으로써 오늘날의 언어학과 프랑스 현대철학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작가이다. 뒤상과 함께 현대
미술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지만 출구는 좁혀 논 '악동' 마그리트는 오늘날 광고나 시각이미지에도
많은 모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상식의 속박으로부터 영원한 해방을 꿈꾸었던 그림그리는 철학자,
미술의 빗장을 걸어 잠그면서 열쇠를 슬그머니 놓고 간 심각하면서도 천연덕스러운 장난꾼
마그리트와 다시 만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설렌다 -정준모(미술 평론가)-
4. 마그리트와 대중문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은 현대 대중문화의 '자양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음악을 비롯한 영화, 건축,
광고 등 대중문화 전반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마그리트는
영구의 록 그룹 '비틀즈'에게 창조적인 연감과 도전정신을 불어넣어 준 것으로 유명하다. 마그리트의
작품 속에 등장한는 '사과'는 비틀즈의 창조적 음악 스타일을 상징하는 로고로 선정됐고, 당시
음반회사 이름까지도 '애플 레코드'라 붙였다. 미국의 록 그룹 '롤링 스톤즈'의 앨범 자킷 디자인에도
마그리트의 작품 '강간'의 이미지가 차용됐으며, 가수 폴 사이먼은 마그리트에 대한 내용을 가사에
담기도 했다. 전세계에서 1억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모았고, 7억3800만불의 흥행수입을 올린 영화
'매트릭스3'은 마그리트의 작품 '겨울비'에서 예술적인 영감을 받았다. '스미스 요원'은 자기복제를
통해 여러 명을 동시에 등장시키는 모습으로 연출되었다. 또 미술품을 주제로 다룬 영화 '토마스
크란운 어페어'의 클라이막스 장면 역시 마그리트의 대표작 '인간의 아들'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이 미술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마그리트의 작품은 또 어떤 사물의 이름을 상품, 서비스, 브랜딩에
그대로 활용해 서로 다른 감각을 결부시키는 '공감각적 아트 마켓팅'의 원조로 주목받고 있다.
SK를 비롯하여 LG, 수협 등은 다양한 광고에서 마그리트의 작품을 모티브로 활용하고 있다.
SK텔레콤의 온라인 음악서비스인 '멜론은 멜론이 아니다'라는 카피나 LG전자의 휴대폰 광고
카피인 '초코렛은 초코렛이 아니다'도 마찬가지다. 광고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상이 눈앞에 없어도
이미지를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광고야말로 마그리트 작품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마그리트의 삶과
미학을 다룬 진중권씨의 '미학오딧세이'와 김영하씨의 '빛의 제국' 등은 교양서적으로 독자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고있다. 마그리트가 생전에 "나는 나의 작품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게
만들고 싶다"고 말했듯 모든 작품에 작가의 사고가 녹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에는 주요 대학의
논술고사에까지 마그리트가 등장했다. 2003년 연세대 논술시험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이미지의
배반'에 담긴 작가의 문제의식을 도출하라는 문항이 출제되었고, 2004년 대입수학능력시험 언어
영역에서는 '피레니의 성'이 언급되기도 했다. 기업들이 신입사원채용 면접시험에서도 마그리트의
미학에 대한 질문이 심심찮게 나오기도 한다. -한경 김경갑 기자
5. 마그리트展
12월 20일부터 내년 4월 1일까지 덕수궁옆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르네 마그리트展이 열린다.
오리지널 유화 70여점을 비롯하여 과슈, 드로잉, 판화 50여점, 사진, 희귀 영상작업 및 친필서한
150여점 등 무려 270여점이나 된다. 미술사적 가치가 풍부한 작품들을 비롯하여 전시작품의
가격의 총액이 무려 한화로 6,0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이번 전시는 벨기에 왕립미술관 내에
개관하는 마그리트 미술관의 완공 이전에 마련하는 르네 마그리트의 마지막 대규모 해외전시로
마그리트 미술관 개관 이후로는 이런 수준의 작품을 직접 접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월요일 휴관, 성인 1만원, 어린이 6천원, 20인 이상 단체는 1천원 할인(02)332-8182
6. 전시 작품들

<신뢰>

<골콘드,겨울비>

<보이지 않는 선수>

<전체의 형상> <검은 마술>

<보물섬> <아름다운 포로>

<여름> <피의 소리>

<회귀>

<빛의 제국>

<이미지들의 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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