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가을은 단풍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체 게바라 2006. 10. 13. 13:13

 

 

가을은 단풍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가을이다. 가을이 방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문 밖으로 서둘러 나오라며 재촉한다. 나는 커튼을 제치고, 노란 옷으로 갈아입은 채 태양의 빛을 받으며 당당하게 서 있는 한 그루의 참나무를 바라본다. 한동안 꼼짝없이 창틀에 기대 선 채로 노란 이파리들을 튕기고 날아온 가을 햇살을 쬐고 있다. 간당간당 매달려 있던 은행잎의 노란 잎새들 중 일부는 부슬부슬 내리는 가을비와 파란 바람에 푸르르 떨며 마른 잔디 위로 사뿐히 내려앉는다. 그렇다. 가을이 차분히 땅으로 내리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내 마음으로도 가을이 깊숙이 가라앉고 있다. 


지난 주말 가을을 만나러 단월 충열사에 갔다. 주차장이 차가 들어차 갓길에 주차한 얌체 차들 때문에 차 두 대가 엇갈려 지나가기에도 좁은 도로 사이의 보도길로 수십년도 넘은 은행나무들은 온통 노오란 물이 들어 있었다. 제 몸까지 태워버린 노오란 은행잎의 잎사귀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싸구려 파마머리의 끄트머리처럼 바스락거렸다. 충열사 경내의 단풍나무들도 가을을 벗어내고 있었다. 햇살에 익어 불타듯 붉은 단풍 산을 기대하기에는 성급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른 가뭄을 해갈시켜줄 가을 단비가 내리지 않게 된다면, 고스란히 가지 끝에 매달린 채로 잎맥마저 말라버려 검버섯이 드러나고 결국에는 칙칙한 황갈색의 낙엽 아닌 낙엽이 되어 최후의 순간을 맏이하게 될 것이다. 그런 안타까운 우리들의 마음이 하늘에 가닿았는지, 충열사를 다녀온 뒷 날부터는 부족하긴 하되 목마른 나무들이 목이라도 축일 수 있는 만큼의 단비가 내렸다. 결국 지상으로 내려온 가을을 만나러 충열사로 나섰다. 주차장 한켠에 차를 세우고 2대의 카메라를 둘러매 도로로 나왔을 때, 몇 쌍의 커플들이 은행나무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다. 지난 단비에 떨어진 은행잎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봄의 꽃들을 바람과 봄비가 데려가듯 가을의 단풍들 역시 비와 바람이 데려간다. 그러나 비와 바람이 데려 가는 것이 어디 단풍 뿐이랴.


빨강, 노랑, 오렌지, 보라, 분홍, 초록..... 가을 나무들의 의상은 화려하다. 같은 나무에서 태어났어도 그 단풍들의 색깔은 다양 하다. 서로 한 뿌리를 갖고 있는 나뭇잎들은 각자 버텨온 세월의 방식만큼이나 다양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아마도 마주하거나 이웃하며 한 가지에 머물며 살아왔지만 나뭇잎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모양인 듯하다. 나는 칠(7)손이 단풍을 주웠다. 아기 손처럼 작은데 칠손이다. 앙증맞기는 하지만, 제법 성깔이 있는 듯하다. 갈래 갈래로 쫙 펼친 손가락 끝은 톱니처럼 뾰족하다. ‘단풍이는 칠손이구나!’ 뭐 대단한 발견은 아니지만,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또 다른 단풍을 주웠다. ‘어라, 이번에는 구(9)손이네!’ 신기해하며 궁시렁 궁시렁 혼잣말을 하면서 세 번째, 네 번째 단풍을 주웠다. 어떤 이는 칠손이, 어떤 이는 구손이, 또 어떤 이는 사람 손처럼 오(5)손이도 있다. 사실 남들은 다 아는 사실인지 모르지만, 내게는 새롭기만 하다. 아이처럼 신기해하며 단풍잎을 주워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오후로 기운 햇살은 단풍나무 중간에 걸려 붉은 햇살을 드리운다. 햇살을 엑스레이삼아 단풍의 잎맥을 비춰보았다. 가까이에서 본 단풍잎의 잎맥은 그물처럼 섬세하고 또렷하다. 허허, 인공위성에서 찍었다는 서울의 도로들처럼 주맥과 측맥들이 쭉쭉 뻗어있다. 단풍잎 옆으로는 자신의 이름을 새긴 푯말을 허리춤에 달고 서 있는 노각나무가 서있다.  활처럼 바깥으로 둥근 잎들이 매달려 있는데, 개중에는 아직 여름을 잊지 못하는 푸른 잎들도 한 가지에 매달려 있다. 더러는 노란색으로 물든 잎이 정확히 형용하기 어려운 색체로 주황과 어우러져 있기도 하다. 또 더러는 감처럼 주황색이기도 하고 단풍처럼 빨간 색이기도 하다. 녹색의 클로로필(엽록소)의 수명이 다 해서 활동이 둔해지면 세포 안의 내용물은 질소나 칼륨으로 분해되고 낙엽이 된다고 한다. 전부 그 과정 중인 것이다. 다만 지난여름을 추억하는 정도의 차이로 누구는 아직도 푸르고 누구는 벌써 붉어진 것이고, 또 누구는 벌써 탄닌의 공격으로 갈색 색소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리라.


참나무과 식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군락으로 가보았다. 이름도 즐겁다. 졸참나무, 물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너도밤나무. 그러고 보니 거의 한 번 이상씩은 들어본 친근한 이름들이다. 다만 내가 무심했기 때문에 그네들의 생김새를 제대로 알지 못했을 뿐이다. 미안한 생각이 든다. 나 역시 그네들의 나이만큼 살아온 인생이건만 참으로 인색했다. 참나무는 노랗게 물이 올랐다. 잎 날은 부드럽고 선명했고, 주맥을 중심으로 퍼진 측맥들은 정확히 대칭을 이루며 바깥으로 뻗어있다. 접으며 정확히 맞닿을 정도로 정돈된 잎맥이다. 참나무 옆에는 졸참나무가 서있다. 잎맥의 생김새에 있어서는 크게 참나무와 다르지 않건만, 잎 날이 뾰족하다. 단풍처럼 붉게 물이 올라 있다. 졸참나무와 비슷한 이름의 물참나무는 어떨까?  핑킹가위로 마무리를 한 듯 잎 날들은 삼각형 모양새이다. 입맥들은 좀 더 듬성한 간격으로 나란하지만 군데군데 벌레 먹은 자국이 선명하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벌레 먹은 흔적 주변부로는 퍼렇다. 어쩐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한결같이 벌레 먹은 주변으로는 색소가 침착되지 않나 보다. 참나무과 나무들에는 도토리 열매가 달린다. 일부는 떨어져 버렸지만, 도토리 모자를 쓰고 있는 도토리들이 대롱대롱 달려있는 게 보인다. 털복숭이 같은 겉옷을 입은 도토리 열매가 떡갈나무 아래에 떨어져 있기도 하다. 다람쥐들과 들쥐들이 먹이가 되어 다람쥐굴과 들쥐 굴로 곧 옮겨 가게 될 도토리들이 정겹다. 예전에는 도토리를 주워 고무대야 한 가득 도토리묵을 쑤어먹곤 했었다. 떫은맛으로 먹는 것이라던 할머니의 말씀은 귓등으로 흘렸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떫은맛이 도토리묵의 정체성을 돋보이게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세월은 추억 뿐 아니라, 할머니마저 데려가 버렸는걸. 


그 예전 할머니를 따라 도토리를 주으러 뒷산을 오르면 할머니는 옻나무를 조심하라며 주의를 주셨다. 옻나무를 만지면 피부가 간질간질하면서 부풀어 오른다며 잔뜩 겁을 주셨다. 그래서 나는 옻나무만큼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다. 날씬하고 끝으로 갈수록 뾰족한 산검양옻나무는 보드란 털이 잎을 덮고 있다. 개옻나무는 잎은 검양옻나무의 잎보다 동그랗고 끝이 뾰족뾰족하지만, 가시 같은 털이 촘촘히 나 있어 붉게 물든 잎은 만지고 싶은 욕망을 애당초 제거해준다. 옻독으로 치자며 옻나무 류 중에서 가장 세다는 덩굴옻나무는 잎 모양은 장을 담아두는 항아리모양 둥그런데, 단풍이 오른 모양이 보기에 좋지 않다. 여드름 피부를 보는 듯 울긋불긋하기도 하고, 기미 낀 얼굴처럼 칙칙한 녹색 점들이 분포되어 있기도 하다. 숲 속을 거닐다보니 배가 고프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는데,  이제 서서히 밥집을 향해 걸음을 옮겨야 할 때가 된 듯싶다. 


그런데 저기, 건물 벽에 자신의 빨판을 붙이고 덩굴손을 칭칭 감고 건물에 찰싹 붙어 있는 담쟁이덩굴들, 남에게 기생하는 미운 녀석들이 눈에 들어온다. 언젠가 들은 이야기가 맞는지 틀린지는 아직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포도과에 속하는 덩굴 식물인 담쟁이들은 건물 벽을 부식시키는 나쁜 역할을 한다 했다. 새머루니 개머루니 하는 머루과 식물들도 나무에 덩굴손을 쫙 뻗어 빨판에서 나온 점액으로 자신의 몸을 붙인 채 나무 꼭대기로 뻗어 오른다고 했다. 나무의 입장이나 벽돌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얄미운 존재들이다.  건물 벽을 온통 붉게 물들인 고약한 담쟁이덩굴은 멀리서 보면 그럴싸해도 가까이 다가가 나뭇잎 하나를 들여다보면 그렇게 밉살스러운 존재도 드문 듯싶다. 멍이 든 것처럼 중간 중간 검붉은 자국이 있고, 여기저기 벌레가 파먹은 흔적이 있다. 별로 기분 좋은 녀석들이 아닌데도, 쉽사리 제거되지 않는 강력한 빨판과 강력한 기생력 때문에 오래된 건물들은 퇴역장교의 훈장처럼 담쟁이 넝굴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학교 때 많이 보던 녀석들을 주린 배를 채우러 찾아온 옛 학교 건물에서 또 마주하다니....

 

가을에 나무들은 나뭇잎을 통해 자신들의 개성을 드러낸다. 그 표현의 양식은 너무나도 다양해서 사람의 성격만큼 다양하다. 파란 하늘은 나뭇잎들의 개성을 한껏 뽐낼 수 있게 해주는 무대의 은막과 같다. 아, 이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몸을 날려 땅위에 떨어져 장엄한 생명의 마지막을 곧 선보일 나뭇잎들이 가장 화사한 자태를 뽐내는 시절이다.  나그네의 마지막 뒷모습을 장식하는 화려한 모습의 단풍들은 곧 다가올 찬바람의 시절을 예고하기에 오히려 서글프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름다움을 불사르는 그네들의 자기희생을 고마운 마음으로 지켜봐주는 예의가 필요하다. 멀리 나갈 수 없는 입장이라면, 잠시 짬을 내어 우리 옆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고마운 나무와 나뭇잎들의 아스라한 아름다움을 감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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