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당신의 그리움은 어느 순간, 어느 장면에 머물러 있습니까?

체 게바라 2006. 3. 26. 18:27

 

 

 

봄은 형이하학의 시간입니다.

깊은 침잠과 사색의 고통이 내내 지속되던, 보이는 것이라고는

밤하늘의 별자리들만 무성하던 형이상학의 겨울이라는 계절의

그 긴 터널을 막 빠져 나오자, 봄은, 환희의 봄은, 생명의 소리들로

세상이 조금씩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던 것이 바로 어제인 것 같은데

산야는 조금씩 봄 특유의 풍성함으로 우리의 시야를 덮어옵니다.

그러므로 기다림이란 얼마나 지루한 내면의 소진을 필요로 했었던지요..

겨우내 기다리던 '희망'의 부름은 더디기만 했지만, 이 희망의 기다림 끝에 만나는

이 봄은 얼마나 나를 또 황홀하게 만드는지요.. 더불어 봄햇살에 겨울의 가면을

드러내는 벗은 봄의 몸은 차라리 눈이 부십니다.

그렇게 다가올 듯 오지않든 내 마음의 봄,

그러나, 봄에 일찍 피는 꽃은 일찍 떨어지고, 늦게 피는 꽃은 늦게 지는데

소리없이 이 봄이 다 가고 나면 내 모습만 파리하게 말라진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봄은 일찍 떠나는 것들의 뒷모습만 나에게 보여주어 아쉬움의 탄식을 짓게 하면서,

내게 부여한 생명의 시간을 거두어 가는데, 어쩌자고 봄은 그의 시작을 이리도 빨리 하는 것인지요?

지금 나는 지붕위로 '후두둑' 거리며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봄의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빗줄기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습니다. 마치 허무하게 떠나버린 사랑의 悲歌처럼..

오래지 않아 이 봄의 순간들을 너무도 그리워하게 되리라는 것을 예감으로 알기에 말입니다.

그러니 너무 일찍 시작한 올해의 봄에, 이 비로 인해 잠시 추억이라는 형이상학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가슴 속 추억들은 봄의 햇살과 어우러져 반짝입니다.

언제나 추억으로 되살아나는 지난 기억들은 아련한 슬픔으로 순치되어 내게 알알한

아픔을 던져주곤 합니다. 그렇듯 그리움은 추억이라는 기억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기억은 지나간 것에 대한 해석이며, 변용이고, 또한 삶에 대한 재해석일 것입니다.

그렇듯 우울하고 어두웠던 시절도, 질곡의 어느 순간도 추억이라는 토핑을 거치면

어느덧 행복한 느낌으로 다시 떠올려지게 됩니다. 마치, 어두운 색의 유리조각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모자이크 창에 햇살이 비치면, 에로틱한 화려함으로 되살아나게 되는 것처럼...,

오랜 시간뒤엔 어둡고, 우울하고, 가난했던 일상조차도 아름다운 색색의 프리즘 조각으로

되살아나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봄, 지나간 추억과 이루지 못했던 꿈, 그리고 안타까운 갈망들이 따뜻한 햇살에

넘실대며 흐릅니다. 순간 그 모든 것들은 내게서 아련한 기억으로 정화되고 있었습니다.

 

허면, 벗이여. 당신의 그리움은 어느 순간, 어느 장면에 머물러 있습니까?

그러니 당신에게도 충만한 생명의 봄이 오시길..

나에게도 봄은 잠시라도 머물다 가길..

 

 

             자, 이제 희망을 이야기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