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펌> 최장집 교수님께

체 게바라 2006. 10. 25. 21:12

 

글 제목 * 최장집 교수님께...-명계남 - [ 펌 ]  


선생님의 경향신문 창간 60 주년 기념 인터뷰를 접하고 나서 왠지 모를 서글픔과 끝없는 회의감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 일반이라는 한계적 존재에 대한 막연하고 추상적인 감정일수도 있고 한 개인이 누군가에 대해 갖는 기대와 그 기대에 대한 실망감 사이에 존재하는 실존적인 아픔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경향신문이 보도했던 그대로 ‘한국의 대표적 지성’ 이신 선생님의 의견을 반박하려 나선다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지닌 상투적 계급의식을 떠올려보매 또 한 번의 시끄럽고 온당치 못한 비난 가운데로 저 자신을 끌어들이는 행위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국의 대표적 지성이신 선생님의 의견 중에는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성적 모순과 비이성적 억측이 묻어나고 있다고 생각되기에 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은 근래 부활하고 있는 보수적 사관을 비판하면서 한국 현대사에 대한 ‘성찰적 이해’ 혹은 ‘역사 인식에 대한 다층적 구조로서의 이해’ 를 강조하셨습니다. 누가 들어도 올바른 테제임에 분명함에도 저로서는 선생님 스스로가 그러한 사고의 기준들을 일관되게 지키고 계신지를 의심해야만 했습니다. 굳이 따지고 들자면 어떤 특정한 사안, 즉 참여정부에 대한 전반적 평가에 있어서만큼은 그러한 기준들이 결여된 편협한 사고를 견지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입니다.


아시는 대로 저는 선생님과 많은 부분에 있어서 이 정권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는 사람입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성찰적 이해’ 란 현상의 일 단면만을 주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의 존재기반이 되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여러 정황들에 대해 다양하고 공정한 시각으로 접근해 들어가는 것이라 한다면, 다른 문제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현 정권에 대한 선생님의 평가는 그 근본에 있어서 심각한 편협함을 노출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소위 87년 체제를 평가하면서 당시의 정당이 민주화투쟁의 운동과정에서 기대했던 정당체제는 아니었다고 진단합니다. 그 말은 뭔가 구태의연하고 권위적이며 소위 보통사람의 참여 폭이 확대될 수 없는 닫힌 정당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는 말로 들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 권위를 주장하고 참여의 확대를 기치로 내건 노무현 정부가 지닌 문제는 87년 체제의 구조적 제약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어떻게 무관할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전후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갑작스런 역사의 흐름이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저는 감히 진단하기를 지금의 정부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이 몇 십년간 고착되어 온 포괄적인 귄위주의와의 대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아마도 선생님은 그 부분을 리더쉽의 부재라 이해하고 계신 모양입니다만 과연 그렇다면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정당체제는 무엇이고 정치는 무엇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이 같은 질문을 하는 것은 노무현 정부의 탄생과 출범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시각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현 여당이 앞선 정부의 주변부에 위치했던 그룹이라는 지적은 맞습니다. 그러나 기존여당에 대한 실망감에서 비롯된 미지의 인물에 대한 기대감이 지금의 대통령을 만들었다는 평가는 선생님이 그토록 중시하는 국민들의 선택과 인식을 정말이지 단순하고 몽매한 것으로 폄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렇다면 왜 야당의 후보는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까요? 왜 하필이면 여당의 주변부에서 ‘예측불가능한 대통령’ 이 나온 것입니까?


분명한 제도와 행위에 입각하여 국민의 선택이 행사된 대통령 선거라는 뚜렷한 역사를 그런 웃기지도 않은 우연의 결과로 이해한다면 그 역사적 순간에 참여했던 숱한 ‘보통사람’ 들은 도대체 무엇이 되는 것입니까? 다시는 이러한 우연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보통사람들의 각성되지 않은 단순한 정치의식이 특별한 누군가에 의해 ‘성찰’ 이라도 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선생님은 그런 보통사람들을 어떻게 믿고 ‘보통사람들이 자신의 요구와 이익을 대변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커지는 것이 민주주의’ 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것인지요?


감히 단언컨대 선생님의 이러한 입장은 주류 인텔리 계층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노무현 정부가 아무런 실수도 잘못도 없는 지고의 가치를 구현하고 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이러한 평가는 현 정부의 문제를 ‘성찰’ 하는 과정에서 도출된 것이 아니라 주변이 중심이 되고 비주류가 주류가 되어버린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기존 주류 엘리트 집단의 선험적으로 왜곡된 인식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역사에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위 87년 체제 이후의 부조리한 정당구조가 필연적인 개혁의 요구를 안고 있는 것이었다면 그 이후의 정권은 마땅히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어야 할 것입니다. 당정분리니 전문가와 관료가 중심이 된 효율성 위주의 정치니 하는 모든 것들은 소위 제왕적 총재와 독재자로서의 대통령의 그늘을 벗어버리려는 나름의 타당한 노력임에 분명합니다. 적어도 역사의 변증법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 성패의 문제를 떠나서 그것이 통치자로서의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려 하거나 정치를 포기하거나 탈정치화를 조장하고 정당을 해체시키려는 의도였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강조하신 성찰이란 그 정황과 의도와 과정과 결과 모두를 아우르는 사고의 형태라 할 것입니다만 지금 선생님의 평가 어디에 소위 성찰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것인지요?


소위 당정청간의 ‘정무적 협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는지는 모르나 그것은 정당구조 개혁의 과도기적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당의 지배 주주가 될 수 없는 현 대통령의 한계라면 한계지 의도는 아니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책임성의 고리로부터 자유로워지려 했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말입니까? 이 정권이 책임지지 않은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예전 같으면 문제도 되지 않았을 일들에 대해서조차 끊임없이 사과하며 온갖 근거 없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국정을 책임지려 노력한 정권에 대해서 책임성의 고리로부터 자유하려고 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분명 비이성적인 억측이 분명하다 할 것입니다.


특정정권을 평가할 때 레토릭이 아닌 구체적 레코드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서두에 강조하신 ‘성찰’의 강조점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일테니 구체적 기록을 평가한다는 것은 그 같은 기록이 생겨난 구체적인 정황들마저도 비교분석해가며 결론적 평가를 내려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진공상태에서 발생한 기록이란 존재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현 정부의 대미 레토릭이 아슬아슬할 정도였다는 표현으로 그 내용적 괴리를 지적하고자 하였습니다만 대미 종속도에 있어서 앞선 정부보다 더 하면 더했지 다른 것이 없었다는 평가는 또 한 번의 억측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민주당 클린턴 정부를 상대로 북미간의 평화무드가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를 살았던 지난 정부와 거두절미하고 이라크를 침공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국가적 명분으로 삼는 부시를 상대해야 하는 최악의 조건에서 국제관계를 펴나가야 하는 지금의 정부가 어떻게 그 문자적 기록만으로 단순 비교 될 수 있는 것입니까? 사태의 올바른 파악을 위하여 그 정황적 배경 즉 콘텍스트에 대한 이해에 중요한 비중을 두는 것은 20세기 이후 인류의 상식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모종의 감정적 동기에서 그 같은 상식을 굳이 외면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요.


‘미국화’ 혹은 신자유주의는 우리 대한민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 대한민국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역사적 문제이기도 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로부터 파생되는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미 선행되어 있는 거대한 흐름을 일거에 돌려놓을 수 있는 정치지도자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거나 설령 존재한다 하더라도 상당한 현실적 곤란과 황당한 위협(?)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선생님 같은 분이 그걸 모르고 계실 리는 없을 테지요. 그러므로 저는 연이어 묻고 싶습니다. 지난 정부가 적극 신자유주의 노선을 펼칠 때 그 정부에 참여하셨던 선생님은 어떤 학자적 대안으로 정권을 설득하실 수 있었습니까? 노무현 정부가 유럽식 복지 모델에 대한 구상을 조심스레 제안했을 때 상식적 수준의 공론화조차도 불가능할 만큼 무조건적 저주와 비난을 퍼붓던 수구세력들에 대해 이 시대의 지성이신 선생님은 무어라 말씀 한마디 하신 적이 있으신지요?


내용 없는 연정제안에 대한 비판도 그렇습니다. 정부정책에 대한 설명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수구언론을 비롯한 모든 보수 세력이 대동단결하여 정권을 공격하고 그에 힘입은 한나라당이 내용 없는 정치공세로 의회주의와 민주적 정당체제를 유린할 때 선생님은 어디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미지의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당연히 치러야 할 대가라 생각하며 초연히 바라보셨는지요? 노대통령 스스로도 연정은 잘못 되었다 인정했다지만 그 같은 결정에까지 내몰려야 했던 극악한 정치 환경에 대해서는 정치학자로서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하시는지요? 정녕 말씀하신대로 수구세력의 비이성적인 총 단결과 공세가 눈에 들어오지 않으셨다는 말씀이십니까? 연정이 정치적 책임을 벗으려 한 것입니까? 감히 부탁드리건대 이제라도 차분한 시선으로 이 모든 사태들을 돌아보실 것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애초에 탐탁치 못한 정권이었다 하더라도 학자로서의 평가는 냉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질적 동기와 파생적 효과를 혼동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정당체제를 약화시키거나 탈정치화를 가속하기 위하여 당정분리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과거 지나치게 정치적이었던 정부의 폐해를 나름 줄여보려는 고육지책으로 나온 것이 당정분리요, 책임 있는 의회의 역할을 촉구하기 위해 ‘정치와의 거리두기’ 라는 일방적인 표현으로 매도당했던 예의 태도를 취했던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YS 와 DJ는 기본적으로 ‘정치를 했다’는 선생님의 표현은 자칫 선생님의 진보적인 위상을 의심하게 만드는 대단히 오만하고 구태의연한 표현일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선생님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그 어떤 새로운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전작권 환수를 예로 드셨더군요. 전작권 문제가 새로운 일이었던가요? 이쯤 되면 무척이나 당황스럽습니다. 시대의 지성이신 선생님께서 어느 순간엔가 역대 국방장관들의 모임에라도 참여하셨다는 말입니까? 다시 묻습니다만 전작권 문제가 새로운 일이며 인기를 상실한 현 정권은 손대서는 안 되는 그런 일입니까? 앞에서는 야당과 경쟁하지 않고 지난 정부를 약화시키는데 주력한다고 비판하고 연정제안을 통해 지지 세력을 등지고 정치적 책임을 벗으려 한다고 비난하시더니 어떻게 같은 인터뷰 안에서 이제는 아예 야당 또는 그 배후에 있는 수구세력들과 경쟁할 생각조차도 하지 말라는 식의 주문을 할 수 있다는 말인지 저로서는 아연할 따름입니다. 현 정부가 정치적으로 탄핵 당했기 때문에? 사망선고를 받았으니 시체답게 가만히 있던지 하는 것이 그나마 돕는 길이라는 그런 말씀이신가요? 국민에게 순응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말씀하시는 국민의 범주가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습니다만 미국의 의도대로 북한을 처리해야 한다는 국민여론이 상당한 지금에 노무현 대통령은 전쟁이 나건 말건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말고 엎드려 있어야 하는 것이겠군요. 국민 간의 분열을 초래해서는 안 될 테니 말입니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갈등의 해소와 조정을 뜻하는 개념일 텐데 비갈등적인 사안에만 손을 대라는 그 말은 정치학자로써 기준도 모호한 말이거니와 대단히 모욕적인 언사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최장집 교수님!

현 정권이 과연 국민에 의해 정치적으로 탄핵을 당했는지는 조금은 더 두고 볼 문제겠지만 보수 야당의 일관된 정치공세와 내용적으로 무엇 하나 다를 것 없는 당신의 그 언급은 2년 전 이루어진 국회에서의 폭거에 아주 뒤늦게나마 몸을 사리며 참여한다는 의사 표시로 저는 이해합니다. 그나마 당시의 탄핵세력들은 국민적 응징이라도 받았지만 이제는 그럴 염려도 없으니 학자다운 현명한 처신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민주개혁세력의 보수재집권에 대한 우려를 ‘공포의 동원’ 이라 말씀하신다면 진보세력에게 인기 없는 현 정권과 결별할 것을 촉구하는 선생님의 태도 역시 ‘비겁한 정치적 선동’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선생님은 노무현 정부가 민주적 대의에서 벗어나고 있기에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중적 인기로부터 벗어나고 있기에 공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서글프고 참담한 일입니다. 애초에 노무현 개인을 개혁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보았다고 하셨던데 저는 이제서야 선생님에 대해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한나라당도 집권해야 하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보수정당이 새롭게 민주정당으로 발전해서 결국 거듭 날 수 있다고 본다는 그 순진무구한 말씀 앞에서는 몸을 가눌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선생님은 제게 다시 한 번 주류의 힘이 무엇이고 그 의식의 기저에 흐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시대의 몽매함을 배경으로 국가적 지성으로 칭송받으셨으니 선생님의 표현대로라면 ‘포르투나(행운, 환경)’는 굉장히 좋으셨는데 과연 어떠한 ‘비르투(개인의 능력, 결단력)’ 를 보여주실지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잘 지켜보겠습니다.

건승하시기 바랍니다.


국민참여1219 상임고문 명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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