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매끄러운 공간, 홈 패인 공간
유목이란 매끄러운 것을 통해 정의되는 반면, 국가장치란 모든 것에 홈을 파는 기능을 통해 정의된다고 들뢰즈/가타리는 말한다. 이런 점에서 매끄러움과 홈 패임은 유목과 정착, 전쟁기계와 국가장치의 구별을 정의하는 '본질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공간사이에는 혼합과 이행, 반전이 발생한다. "두 공간이 사실상 뒤섞여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해야만 한다. 매끄러운 공간은 항상 홈 패인 공간으로 번역되며 그것에 의해 횡단되고 있다. 홈 패인 공간은 매끄러운 공간으로 항상 반전되며 회귀하고 있다." 이 두 공간과 결부하여 '선'의 문제가 다루어지는데 추상적 선과 유기적 선이 그것이다. 들뢰즈/가타리는 감정이입 충동과 관련된 선을 '유기적 선'이라고 부르고, 추상충동과 관련된 선을 '추상적 선'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예술은 추상적 선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이 추상적 선은 기하학적 선과 달리 유목적인 선으로 이해된다. 이는 전통적 '모방'개념에서 벗어난 다른 관점에서 예술을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1. 기술적 모델
직물이 홈 패인 공간을 이룬다면 동물의 털로 만든 펠트는 매끄러운 공간을 이룬다. 홈 패인 공간은 "첫째, 수직적 요소와 수평적 요소에 의해 구성되는데 이 두 요소가 수직으로 교차한다. 둘째, 두 요소는 '고정'과 그 고정된 것을 가로지르는 '이동'의 상이한 기능을 가진다. 셋째, 홈 패인 공간에서는 반드시 적어도 한 면이 한계 지어지면서 닫혀있다. 마지막으로 이 종류의 공간은 반드시 앞면과 뒷면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압축에 의해 만들어진 엉킨 섬유, 펠트는 직물공간과 대비되는 매끄러운 공간을 이룬다. "펠트는 무한하고 열려있으며, 모든 방향으로 무제한적이다. 그것은 앞면도, 뒷면도, 중심도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고정되고 움직이는 요소들을 지정하지 않고, 배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연속적인 변이를 분포시킨다." 동질성은 홈 패인 공간이 극에 다다랐을 때 획득되며 각각의 부분마다 다른 곡률을 갖는 이질적인 연속체로 매끄러움을 정의할 수 있다.
2. 음악적 모델
음악에서 홈 패인 공간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절단된 소리들의 분포를 뜻한다. 동일한 간격으로 주파수들을 절단하여 음악적 소리로 정의하고 ,두 음 사이의 간격에 의해 음정이 정의된다. 이처럼 절단과 간격들이 일정한 단위들로 분할되어 표준화된 방식으로 배열될 때, 그 배열과 분포의 원리를 '모듈'이라고 한다. 이렇게 주파수를 절단하고 음계를 일정한 간격으로 정의하는 곳이 홈 패인 공간이다. 반면 음악에서의 매끄러운 공간은 정해진 간격없이 소리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것을 통해 정의된다. 여기서는 모든 주파수의 소리가 다 음악적 소리로 사용될 수 있다. 현악기의 글리산도나 가야금의 '농현'이 그런 예이다. 그러나 두 가지 공간은 많은 경우 섞인다.
3. 해양적 모델
홈 패인 공간에서 선이나 궤적은 점에 종속되는 경향이 있다(경부선). 반대로 매끄러운 공간에서 점은 선의 일부이고, 선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 통과점일 뿐이다. "매끄러운 공간에서 선은 벡터, 방향이지, 차원 혹은 척도적 규정이 아니다." 그래서 매끄러운 공간은 형태화되고 지각된 사물로 채워지기보다는 사건, 특개성의 원리로 채워진다. 또한 매끄러운 공간은 소유의 공간이 아니라 '이 곳'마다 고유한 느낌을 주는 '감응'의 공간이고, 시각적/광학적 공간이 아니라 촉각적 공간이다. 위도, 경도에 의해 구획되기 전의 바다는 전형적인 매끄러운 공간이다. 이러한 바다에 홈을 파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별과 태양의 정확한 관찰에 기초한 일련의 계산으로 획득한 점, 알려져 있거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을 격자화하는 자오선과 평행선, 경선과 위선들이 교차하는 지도"이다. 바다나 대기가 홈 패인 공간으로 변하고 다시 홈 패인 공간의 특성(위치 지어지는)에 의해 매끄러운 공간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 매끄러운 공간은 홈이 패이게 마련이고, 반대로 홈패인 공간 또한 매끄러운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
4. 수학적 모델
두 가지 대비되는 다양체들의 짝(척도적 다양체와 비척도적 다양체, 리좀적 다양체와 수목적 다양체..)이 홈 패인 다양체와 매끄러운 다양체의 짝들에 대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양적, 수적 다양체는 동질적 분할과 관련된 '연장'의 개념(홈패인 공간)과 대비되고, 질적인 다양체는 분할될 때마다 그 속성이 달라지는 '지속' 개념(매끄러운 공간)과 대비된다. 매끄러운 공간에 서식하는 것들은 분할될 때마다 그 본성을 달라진다는 의미에서 '매끄러운 다양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수가 동질적, 척도적 다양체는 아니다. "세어진 수가 홈패인 공간에 속하는 것같이, 서수적이고 방향성이 있으며 유목적이면서 분절된 수, 세는 수는 매끄러운 공간에 속한다." 부분마다 이질성을 특징으로 하는 매끄러운 공간은 언제나 상이한 요인들의 '복합효과'에 의해 국지적인 특개성을 갖는다. 들/가는 두 가지 이상의 결정요인이 있을때에도 매끄러운 공간에서 각각의 상황을 비교, 측정할 수 있다고 했다. "리만 공간에서는 모든 종류의 동질성이 배제된다. 각각은 무한히 근접하는 두 점사이의 거리의 제곱을 정의하는 표현형식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 ds^=(x1-x2)^+(y1-y2)^ ----> ds^=dx^+dy^
x축과 y축이 삐뚤어진 공간에서 x,y축 각 방향으로 편차가 생기는 정도를 곱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x와 y가 만나는 항에 대해서도 고려해 주어야 한다.(Bdxdy)
: ds^=Adx^+Bdxdy+Cdy^.
이를 삼차원상의 거리의 제곱을 표시하는 공식으로 발전시키면
: ds^=g11dx^+g12dxdy+g13dxdz
+g12dydx+g22dy^+g23dydz
+g31dzdx+g32dzdy+g33dz^
- 모든 종류의 공간(다양체)에서 거리의 제곱을 구하는 공식이 되는 것이다. "각각의 부분은 무한히 근접하는 두 점 사이의 거리의 제곱을 정의하는 표현형식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이를 통해 들/가는 매끄러운 공간의 두 가지 특징을 요약한다. "한편으로, 서로의 일부분을 이루는 결정인이 크기와는 상관없이 포함된 거리 내지 배열된 차이로 소급될 때가 그것이다. 다른 한편, 하나를 다른 것의 일부로 만들 수 없는, 결정인들이 척도와는 무관하게 오직 주파수나 누적의 과정에 의해 연결될 때가 그것이다. 이것이 매끄러운 공간의 노모스의 두 측면이다."(?)
-결론 : "1)차원수가 정수고 방향이 일정한 집합은 모두 홈패인 것 혹은 척도적인 것이라고 부를 수 있다. 2)비척도적인 매끄러운 공간은 1이상의 분수 차원을 갖는 선, 또는 2이상의 분수 차원을 갖는 면을 구성함으로써 만들어진다. 3)분수의 차원은 말그대로 방향적인 공간의 지표다 (접선은 없으며, 방향의 연속적 변이만이 있다.) 4)매끄러운 공간은 그 공간속을 통과하는 것, 혹은 공간 속에 기입되어 있는 것 이상의 보충적인 차원을 갖지 않는 것으로 정의되는데, 이런 의미에서 매끄러운 공간에는 예컨대 선이 여전히 선으로 있으면서 면을 채우는 평평한 다양체가 있다. 5)세는 수 내지 비정수의 부정확하지만 엄밀한 형식아래, 공간 자체와 그 공간을 점유하는 것은 동일화되는 경향이 있으며, 동일한 능력을 갖는 경향이 있다. (계산없는 점유). 6)이러한 무정형의 매끄러운 공간은 이웃관계의 누적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이때 각각의 누적은 '생성'에 고유한 식별 불가능성의 지대를 정의한다.(선 이상이지만 평면 이하, 입체 이하지만 평면 이상)"
5. 물리적 모델
"직각으로 교차하는 두 계열의 평행선으로, 그 하나인 수직선들은 고정적인 것 내지 상수의 역할을 하는 반면에 다른 하나인 수평선은 변수의 역할을 한다." 이 두 계열의 평행선은 "교차가 규칙적이 될수록, 홈 패임이 더 단단하게 되고, 공간은 보다 동질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동질성은 처음부터 매끄러운 공간의 특징이 아니라 반대로 홈 패임의 극단적 결과이다." 이를 통해서 들/가는 사회학과 물리학의 근친성을 말하고 있다. "사회가 노동의 경제적인 척도(씨줄?)를 제공했다면, 물리학은 노동의 '역학적 화폐'(날줄?)를 제공하였다. 임금체제는 그 상관자(변수?)로서 힘의 역학을 갖는다. 물리학이 (이때만큼) 사회적이었던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두 경우 모두 표준인간에 의해 일률적인 방식으로 들어올리고 끌어당기는 힘의 일정한 평균치를 정의하는 것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평균치의 문제는 노동력이라는 개념에서 분명해지는데 바로 이런 것들이 노동모델을 형성한다. "모든 활동에 노동-모델을 부과하는 것, 모든 행위를 가능한 노동 내지 잠재적 노동으로 바꾸는 것, 자유활동을 훈육하는 것, 또는 자유활동을 단지 노동과 관련해서만 존재하는 '여가'로 밀어놓는 것." '표준적 인간'내지 '평균적 인간'은 국가의 공공노동에서, 혹은 군대의 조직화에서 탄생한 것이라고 한다. 전쟁기계를 국가적 건설현장과 공장에서의 노동-모델에 복속시키는 것은 18-19세기 국가장치가 전쟁기계를 영유하는 새로운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의 대상으로서 인디언을 사용할 수 없었던 서구인은 그 대상으로 흑인을 삼았다. 이러한 노동의 물리-사회적 모델은 국가장치에 속하며, 국가장치가 두 가지 이유에서 발명한 것이라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첫째, 노동은 오직 잉여의 구성과 더불어서만 출현하므로, 스톡없는 노동은 없다. 따라서 (말 그대로의) 노동은 잉여노동과 더불어서만 출현한다"는 것이다. "둘째, 노동은 시공간의 홈 패임의 일반화된 조작, 자유활동의 종속, 매끄러운 공간의 파기를 수행하며, 국가의 본질적인 사업과 전쟁기계의 정복에서 자신의 기원과 수단을 발견한다. " 자본은 이런 홈 패임의 극단에서 새로이 매끄러운 공간을 구성한다.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이 분리되기를 그칠 때 가시적인 형태로 국지화 될 수 없게 한다. 노동 뿐아니라 자본 역시 그러하다. 가변자본조차 불변자본의 일부로 흡수하고 통합하려는 자본의 노력이 그것이다. "새로운 조건에서 모든 노동은 잉여노동이고 사람들은 어떤 노동과도 무관하게 잉여가치를 제공하기도 한다." 모든 공간, 모든 시간이 잉여가치 착취의 장이 됨에 따라 "자본에 의한 홈 패임의 끝에서 이런 식으로 일종의 매끄러운 공간이 만들어지게"된다. 매끄러운 자본은 새로운 장을 차지하는데 "홈 패인 자본은 영토와 국가, 심지어 다른 유형의 국가조차 넘나드는 복합체를 통해 매끄러운 자본을 형성한다."-다국적 자본
6. 미학적 모델
-원거리상과 근거리 상, 광학적 공간과 촉감적 공간, 구체적선 내지 구상적 선과 추상적 선
1)근거리 상과 촉감적 공간
근거리 상에 가까운 접사(클로즈업)은 대상 표면의 선이나 윤곽을 따라가지 않고 대신 표면이 제공하는 질감을 느끼게 한다. 이를 통해 시선은 어디에서든 어느 방향으로도 향할 수 있다. 이를 절대적 국지라고 하며 상대적 포괄과 대비시킨다. "그림은 떨어져야 보이지만, 가까이서 그려진다. 마찬가지로, 작곡가는 듣지 않는다고들 한다. 즉 청취자는 떨어져서 듣는 반면, 작곡가는 가까이서 듣는다. 더욱이 독자는 긴 기억을 갖는 것으로 추정되는 반면, 작가는 짧은 기억으로 쓴다." 절대적 국지를 통해서 매끄러운 공간이 나타난다면 "홈 패인 공간은 원거리상의 요구에 의해 정의된다. 방향의 일정함, 관성적인 좌표의 교환에 따른 거리의 불변성, 주위 환경에서의 흡수에 의한 상호결합, 중심화 된 투시법의 구성"이 홈 패인 공간의 상대적 포괄과 원거리상의 특징이다.
2)포괄성과 국지성
매끄러운 것은 근거리적이고 촉감적이다. 따라서 이는 많은 것을 담는 포괄성은 갖지 않으며 반대로 각각의 부분들이 갖는 특개성에 주목하는 만큼 '국지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홈 패인 것은 원거리상이고 다양한 것들을 풍경의 일부분으로 포함하고 수평선이나 윤곽선 안에 담는다는 점에서 '포괄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국지성은 형태나 윤곽선을 넘어 모든 방향으로 동시에 나아갈 수 있기 때문에 국지적 부분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절대적 국지성'이라고 할 수 있다. 매끄러운 부분에 달라붙어 그 전체를 점유하는 유목민을 '절대적 유목민'이라고 표현한다. 반대로 홈 패인 공간의 포괄성은 '상대적 포괄성'이다. 특정한 것을 특정한 방식으로만 담아내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이고 시선은 소실점(중심점)을 제외한다면 제한된 것, 제한된 형태만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이다. 이것은 '국지적인 절대성'이다.
3)구상적 선과 추상적 선
주류 예술 이론가들의 모방충동과 감정이입충동은 인간과 외부적 현상간의 친화성이나 유사성에 대한 확인이 예술발생의 기원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충동은 대상과 자신을 동일화함으로써 발생하는 "쾌감"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항상 "유기적인 것을 향하고 있다." 반면 추상적 충동은 외부적 현상으로 야기되는 인간의 커다란 내적 불안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불안한 외부적 현상이나 사물에서 불명료한 세계상을 제거하고 거기에 필연성과 합법칙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충동이다. 이런 추상충동은 무기적인 것을 지향하고, 자아를 버리고 몰입하게 하며, 모방보다는 변형시키는 작용을 한다. 들뢰즈/가타리는 예술이란 일차적으로 모방이 아니라 추상이며, 따라서 추상적 선에서 출발한다는 명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예술이 추상적 선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사실이다.","추상적 선이 출발점이다." 들뢰즈/가타리는 이러한 추상이 변형이고 탈형식화라고 본다. 그것은 어디서나 존재하는 탈주선이고 '클리나멘'이며, 그 자체로 즐거운 '놀이'이다. 이러한 추상적 선은 구상적인 선에 의해 사로잡히지 않았던 원시인이나 선사시대의 예술에서, 혹은 유목민의 예술에서 잘 나타난다고 한다. 그것은 대칭성이나 규정이 없는, 직선이나 정규적 곡선도 없는 원시인이나 유목민의 추상적 선이다. 이러한 추상적 선과 구상적 선은 섞이고 겹쳐지거나 하는 관계를 가진다. 추상적 선이 추상화의 역할을 대신하는 글의 출현과 더불어, 그리고 그러한 글을 만들고 관리하는 제국적 국가장치의 출현과 더불어 구상화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구상적 선은 이미 어떤 형태만을 그리는 한에서만 구상적이기 때문에 구상적인 선이 특정한 조건에 따라 추상적인 선이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것은 추상적선이 일차성과 일반성을 가진다는 의미이다. 추상적 선은 구상적 선이라는 '대립물'이 출현하기 이전에, 대립과 무관하게 이미 존재했기 때문이다.
홈 패인 선의 체계를 형성하는 요소로 중요한 것이 대칭성이다. 대칭성은 정해진 위치를 벗어나는 모든 선을 불합리하고 부적절한 것으로 간주하여 "반복을 제한하고, 그것의 무한한 전진을 가로막으며, 반사상(?) 내지 별모양으로 중심점과 방사적 선들의 유기적 지배를 유지한다." 이러한 대칭성은 '반복'과 대비된다 반복은 계속 추구될 수 있는 가능성이며 이것은 건축양식에서 고딕양식의 고딕적 선과 등치된다.
들뢰즈/가타리는 현대적 의미에서 추상적 선을 "어떠한 윤곽도 그리지 않고 어떠한 형식을 제한하지도 않는, 가변적인 방향의 선"이라고 정의한다. 이것은 매끄러운 공간에서 가능한데 매 끄러운 공간에서 이행과 조합으로 "새로운 스타일을 창안하고 상대(장애물)를 변용시킬 수"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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