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주의자-되기
문제는 들뢰즈주의자가 될 것이냐, 들뢰즈 연구자가 될 것이냐다. 말하자면 들뢰즈주의자란 들뢰즈-되기를 말한다. 그에 의하면 이 기표적 세계, 논리의 세계는 항상 영토화(혹은 재영토화)와 관련되어 있으며, 따라서 그 자신의 독해에 있어서도, 지각될 수 없는, 비-논리의 논리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그의 저서에서 직접 실천하고 있다. 그 자신이 분열분석을 얘기할 때조차도 그 방식은 분열자의 중얼거림으로 얘기된다. 과연 이것을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있을까? 만약 들뢰즈에 매혹된 사람이라면 필연적으로 들뢰즈를 해석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욕망은 이미 탈영토화가 재영토화로 포섭되는, 그런 방향으로의 흐름일 뿐이다. 들뢰즈주의자란 따라서 이 열정적인 파토스의 언어에 매혹되고 그 파토스의 언어를, 가상이 아닌 현실 속에서 사용하며 사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뜻 보기에 그것은 '이데올로기가 정당화되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논리 안에서 가능하다'라는 맥락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가 가진 일반적인 함의 밖에서라면, 정확히 상동적임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다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들뢰즈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말할 수 없게-되기이며, 동시에 그 안에서 모든 것을 말하게-되기이다. 들뢰즈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분열분석의 대상이 되는 분열자가 된다는 것이며, 동시에 그 대상의 분열분석을 실천하는 것이다. 따라서 들뢰즈에게 붙어다니는 수식어인 '긍정의 철학'이란, 분석자와 피분석자의 분할됨이 아니라 그 자체의 분열과 그 분열의 양상을 지각할 수 없게-되기이다. 들뢰즈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그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동시에 이해할 수 없다라는 자포자기로서의 언술이 아니며 이해할 수 없음 그 자체(즉 지각할 수 없게-되기)가 되는 것이며, 따라서 긍정적인 포기이며, 그 자리에서 나는 느낀다je sens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되기이다.
끝없이 생산되는 개념들은 거꾸로 모든 개념이 지워지는 것이기도 하다. 들뢰즈의 수없이 분열되는 개념들은 개념의 이해의 문제라기 보다는 메타개념의 문제이다. 개념 하나하나는 물론 이해될 수 있지만, 개념을 이해한 순간 그는 들뢰즈 연구자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진정한 들뢰즈주의자는 되지 못하는데, 왜냐면 이해하는 순가, 혹은 지각하는 순간 더 이상 어떤un 것이 생성되지 못하며 들뢰즈라는 수목체계로 수렴되는 것을 의미한다. 각각의 이해가능한 개념들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각각의 개념은 리좀적 뿌리로서의 헥시어티이다.
그래서 어쩌자는 말인가, 혹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묻는 것은 들뢰즈주의자에게는 무용한 질문이다. 왜냐면 그런 물음들에 대한 대답은 들뢰즈주의자가 되는 것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런 질문에 고민해야할 사람들은 바로 들뢰즈연구자들이다. 들뢰즈는 해체되고 해부될 것이다. 그러나 들뢰즈는 해체될 것도 해부될 것도 없는데 들뢰즈가 바로 기관 없는 신체이기 때문이다. 물론 연구자들은 분명히 기관들과 대면한다. 그러나 기관들은 유기적이지 않고 제각각이며 저마다 소리를 지르거나 침묵하고 있으며, 그 분열의 양상은 어떤 해부나 해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들뢰즈 연구자들에게 있어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충분히 들뢰즈를 '느끼지만' 이것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실천의 문제. 연구자들에게는 언제나 위험이 있다. 회의적이 되거나 모호하거나. 그리고 거기에 '들뢰즈의 한계'가 있다. 이 기쁨의 철학, 생성의 철학이 그 자체로 한계에 부딪히며, 그 한계는 이미 들뢰즈 안에서 예견되고 들뢰즈 그 자체이다. 객관적이라고 흔히들 생각하는 '거리두기'는 여기에서 그 자체로 거리를 만들고 만들어진 거리는 들뢰즈를 중심(군주의 위치)에, 연구자들은 들뢰즈를 둘러싸게(사제의 위치) 만든다. 요는 들뢰즈의 철학이 문제가 아니라, 들뢰즈의 철학을 통한 실천의 문제이며, 들뢰즈를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들뢰즈는 더이상 고유명사가 아니다. 우리는 들뢰즈-되기를 통해 그 지각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될 것이다. 들뢰즈주의자가 될 것인가, 들뢰즈 연구자가 될 것인가? 들뢰즈라는 신체가 외연을 가질 때, 즉 고유명사가 될 때 빠지는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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