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베르 주르뎅-음악은 왜 우리를 사로잡는가
외국의 책이나 영화를 들여올 때 번역자와 출판사(배급사)는 종종 제목을 놓고 고민하게 된다. 우리말로 그대로 옮길 경우 그 뜻이 모호해 지거나 우스꽝스러워 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사랑과 영혼’으로 잘 알려져 있는 영화의 원제목은 'Ghost'이다. 그대로 번역 했다면 ‘유령’ 혹은 ‘귀신’이 되었을 것이지만 애절함이 묻어나는 우리말 제목은 영화의 흥행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사랑과 영혼’의 경우는 제목번역에 있어 여전히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반면 '업 클로즈 앤 퍼스널(Up close & Personal)'은 수작으로 인정받으면서도 대중적이지 못한 제목을 고집하다 망한 영화인데 전문용어를 간판으로 내세워 대중들로 하여금 영화에 대한 예측을 불가능 하게 했다는 것이 이유이다.(그대로 번역 했다면 더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업 클로즈 앤 퍼스널은 방송용어로 ‘밀착취재’를 뜻한다)
이제부터 소개할 ‘음악은 왜 우리를 사로잡는가’는 멋진 제목으로 나를 사로잡았다.(미국에선 ‘Music, the Brain, and Ecstasy’라는 다소 따분한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와 음악인류학자인 그의 아내 채현경 교수가 결혼 20주년을 기념으로 함께 번역해 내놓은 이 책은 제목을 따라 음악이 우리를 사로잡는 이유를 심리학적/생물학적 방법론을 통해 차근차근 밝혀나간다. ‘음악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마치 ‘종교에 대한 과학적 분석’처럼 거북스럽게 들릴 수도 있고, 여전히 인지 불가능한 영역에 대한 허튼 시도 정도로 폄하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읽고 나면 음악이 달리 들릴 것”이라는 번역자의 당찬 선언이 무색하지 않게 이 책은 음악의 본질에 근접했고, 풀리지 않을 것 같던 음악의 신비는 그 비밀을 드러냈다.
책은 ‘소리’라는 물리적 운동이 어떻게 우리 귀에 전달되고 증폭되며 인식되는지에 대한 신경학적 설명으로 시작하여 음, 멜로디, 하모니, 리듬, 작곡, 연주, 감상, 이해, 황홀경 등 음악의 핵심 사항을 다룬다. 음악은 물론이고 심리학 생물학 등 과학에 능통한 저자는 광범위한 지식을 이용해 날카로우면서도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예컨대 국악 개론시간에 한번쯤은 들었을 법한 이야기, 즉 서양음악은 걸음걸이를 기준으로, 동양음악은 맥박을 기준으로 속도를 정했다는 상식(?)이 틀렸음을 증명하고 한스 폰 뵐로가 대담하게 말했던 ‘태초에 리듬이 있었다’는 명제가 근거 없음을 발달과정을 통해 밝혀낸다. 노엄 촘스키의 생성문법과 하이인리 솅커의 음악분석 간의 유사성을 집어내는 부분에선 저자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재치를 느낄 수 있다.
예술과 과학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작가의 노련한 펜이 펼치는 곡예이다. 멜로디와 하모니의 구성 과정을 설명하면서 멜로디가 실은 화성진행의 결과임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우리가 화성법을 배우면서 느끼는 조화와 추진력에 대해 과학적 통찰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위대한 음악가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불같은 성격-예를 들어 맘에 안 드는 연주자를 향해 케틀드럼을 집어 던져버린 헨델의 용맹함-과 조울증-작곡가뿐만 아니라 다수의 다른 예술가들도 겪어야만 했던 질병-이 뮤즈에게 영혼을 내 맡긴 후 치르는 값비싼 대가임을 설명하면서도 작곡과정의 지적 치밀함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는다. 배음, 불협화음, 음계, 모드, 리듬, 박자의 기원 역시 철저한 고증과 분석을 통해 과학적으로 접근하지만 게슈탈트 법칙(멜로디의 법칙으로 완성의 법칙, 연장의 법칙 등이 있다)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멜로디의 능력은 후세 연구자와 예술가들의 몫으로 남겨두기도 한다.
책의 백미는 역시 음악이 모이는 장소, 즉 뇌에 대한 분석에 있다. 음악에 따라 우리의 뇌가 어떤 식으로 반응 하는지를 보이면서 조성음악의 자연스러운 친밀함을 증명하기도 하고 다른 세계의 음악에 대한 열린 마음을 요구하기도 한다. 왜 우리는 불협화에 주목할 수밖에 없으며 칠판에 긁히는 분필의 소리가 끔찍한 고통을 야기하는가에 대한 설명은 뇌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키는데, 뇌를 다침으로 빛나던 음악적 재능을 잃어버린 비운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경우를 보면 신비한 것은 음악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음악을 주제로 했지만 방법론에 대한 설명 때문에 fMRI를 비롯한 심리학적 연구과정, 두뇌의 역할과 구조, 그리고 소리와 청각 능력에 대한 진화론적 해석 등이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때문에 이 책은 다른 음악 미학 서적에서 느낄 수 있는 답답함이 없다. 분석의 도구와 관점이 다양하고 그에 따라 결론의 양상도 새롭다. 음악을 음악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데 익숙한 음악가들은 로베르 주르뎅의 시도가 불편하게 느껴질 것이 분명하지만 음악이 가져다주는 황홀감(Ecstasy)을 과학적으로 규명한다 해서 그 쾌감이 사라지거나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음악이 스스로 그 신비의 장막을 거둔다 해도 그 위대함에 상처가 나지 않는 것과 같다. 문제는 우리의 편협함이다.
교육과정에서 일어나는 편중 때문에 우리의 풍부한 음악적 심상을 잃게 되는 경우가 있음을 경고하기도 한 저자는 마지막으로 ‘음악은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진다. 가수 신해철은 조성음악에서는 이미 나올만한 멜로디는 다 나왔기 때문에 더 발전할 구석이 없다고 말했던 적이 있지만 저자도 그 부분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컴퓨터로 인해 계속해서 새로운 소리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뭔가 색다른 음악이 탄생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며 기대를 감추지 않는다. 또한 음악이 음(혹은 멜로디)으로만 이루어진 단세포 생물이 아님을 상기시키며 다양한 구조의 발견과 인공지능의 발달이 지금보다 더욱 강력한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참으로 궁금한 문제이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새로운 음악-기대되는 음악-이란 기껏해야 동방신기의 새 앨범이 아닌가 하는 암울한 생각이 든다. 물론 아직도 청중들이 음렬음악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모두 웃기는 질문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음악은 여전히 많은 질문들은 우리에게 던진다. 현대 과학의 놀라운 발전도 우리의 뇌를 알아보는 데는 아직도 걸음마 수준일 뿐이다. 이 책은 상당 부분 궁금증을 해소해 주기도 했지만 숙제를 완전히 마무리 짓지는 못했다. 출발은 언제나 빈약한 듯 보이게 마련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심리학자와 생물학자 그리고 이론가들은 앞으로 탐험해야할 세계가 매우 넓다는 사실에 ‘좌절’보다는 ‘안도’해야 할 것이다. 그 흥미로운 길을 가는데 이 책이 노정표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 역시 그들의 뒤를 밟으며 행복한 책읽기를 계속하고 싶다. ‘예술적 과학자’나 ‘과학적 예술가’가 되는 것이 목표라면 더더욱 그래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