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축구에 열광하는가? 축구의 매력은 한마디로 원시성이다. 모든 구기 종목은 전, 후반,
회, 세트, 쿼터 등으로 경기 시간을 제한하여 치르는데 축구는 이를 가볍게 무시한다.
야구의 경우 9회말에 이르기까지 무려 17번이나 공수를 교대하고 그 사이에 경기시간 만큼이나
쉰다. 그러나 축구는 쉬지 않는다. 골키퍼가 공을 잡고 시간을 끌 경우 여지없이 옐로 카드를
받는다. 다음으로 격렬한 공격성, 축구는 상대 진영을 철저히 유린함으로써 승패를 결정 짓는다.
배구, 탁구, 테니스 등은 진영, 위치, 서브 방향 등을 일일이 정한 후 그 규칙성 안에서 공격을
한다. 네트를 건드려도 안 되고, 서브 방향이 어긋나도 안 된다. 그러나 축구는 종횡무진 상대
진영을 누비는 것이 관건이다. 마지박으로 점수체계, 축구는 어떤 상황에서 골을 넣어도 1점이다.
만루 홈런도 없고, 3점 슛도 없다. 농구처럼 양 팀 합쳐 200여점에 달하는 점수도 아니다.
단지 1점의 숙명, 이것이 축구의 숙명성을 배가시킨다. 이처럼 축구는 고도의 산업화 시대를
거슬러 저 원시 시대의 초원을 향해 거꾸로 달려가는 역동적인 기관차의 면모를 갖는다.
인류는 문명화, 현대화를 걸은 이후 온갖 제도와 규율을 만들고 또 거기에 사로잡혀 왔다.
그 속박으로부터 잠시 벗어나기 위해 인류는 스포츠를 발전시켰는데, 그 중에서도 룰이
가장 느슨하고 드넓은 그라운드에서 펄펄 뛰는 축구에 우리는 열광하는 것이다.
이렇듯 축구는 매우 단순하면서고 심오한 장르이다. 비록 카메라의 시선을 따를 뿐이지만
어쨌거나 축구의 전반적인 흐름은 한 눈에 일별할 수 있다. 동시에 축구는 다양한 요소가 매우
섬세하게 얽혀 있어 단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복합성을 지니고 있다. 수비수를 셋으로
하느냐, 넷으로 하느냐에 따라 90분 전체의 철학과 개념이 바뀌는 것이 축구이다.
이 단순성과 동시에 복잡성 때문에 축구는 재미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국내에서는 여성이
남성과 함께 거의 동등한 문화적 주체로 축구를 즐기기 시작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축구공이
지역, 기후, 역사는 물론이고 성별의 차이마져 없애버리는 마력을 갖고 있음이 입증된 것이다.
아직도 많은 미디어들은 2002년의 월드컵과 관련한 다양한 문화적 열정을 '애국심'으로
요약하고 있지만, 공 안에 내장된 엄청난 질량의 에너지는 축구가 남녀의 구분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스포츠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월드컵과 축구에 대한 열정에 대하여 3S(스포츠, 섹스, 스크린)로 대별되는 축구와
월드컵이 대중의 건강한 판단의식을 가로 막을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한 점이다.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문제, 지방선거, 양극화 문제, 한-미 FTA 등 사회 현안들이 월드컵의 그림자에
묻혀버린다는 우려이다. 그러나 효순이 미순이의 촛불시위와 새로운 시민적 감성과 변화된
사회 분위기에서 축제가 되었던 2002년의 저 광화문 광장, 그리고 억압적 일상에 억눌린 개인에게
새로운 활력을 제공하는 축구의 미학과 월드컵의 에너지, 이를 저마다 나누고, 공유하며, 공동체의
아름다운 자산으로 승화시키는 것, 이것이 월드컵이라는 문화적 축제가 주는 숙제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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