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만, 마지막으로 한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 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한번만이다. 꼭 한번만,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약속한다.
전보여, 새끼 손가락을 내밀어라. 나는 거기에 내 새끼 손가락을 걸어서 약속한다.
우리는 약속했다. ............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속에서 나는 어디에선가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을 보았다.
거기에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무진기행 중에서-
젊은 날, 열정적인 문학에의 지향심에 불타던 나는
문학 평론으로 전도양양한 국어국문학과 학과장인 32살의 권영민 교수(그는 3년후 그의 모교
서울대로 이직하였다.)의 문학개론을 수강하며 안면을 틔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내 습작인 단편소설
3편을 그에게 건네며 '제가 문학을 평생의 업으로 하여도 좋은지 평가하여 주십시요'라며 부탁했다.
2달후 그는 자신의 학과장실로 나를 불렀다. 그는 작가의 글에 대한 쓸데없는 개입만 줄인다면 훨씬
좋은 작품이 되겠다며, 원고지 곳곳에 빨간 펜으로 지적한 원고를 돌려주며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선물하였고, 이 작품을 텍스트로 삼으라고 충고하였다.
그렇게 만난 김승옥은, 무진기행은, 문학에의 열망에 들끓던 나를 절망으로 몰아 넣었다.
특히 무진기행은 나를 한순간에 독자의 수준으로 격하시켰다. 적어도 당시의 내 문학적 능력으로는
무진기행에 걸맞는 작품이란 언감생심이었고, 그 절벽 앞에서 나는 문학에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나의 문학에 대한 지향의 이력에 충격과 절벽으로 다가온 것은 최인훈이 첫번째였다면,
결정적으로 나를 절망으로 빠뜨린 작가는 김승옥이었고 그의 대표작인 무진기행이었다.
무진기행은 안개로 시작한다.
어느 시대이고 푸른 젊음 앞에는 늘 무진과 같은 안개에 휩싸일 경우가 많다.
젊음 앞에는 목표에 대한 좌절, 장래 삶에 대한 고뇌, 사랑과 사람에 대한 상처, 죽음보다도 더 깊은
절망같은 부정어들이 자신의 앞을 가늠하지 못하도록 뿌연 안개에 가려져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렇다. 슬픔과 고독, 마침내 죽음으로 몰고가는 범인은 바로 안개이다.
온통 뿌연 대기를 헤쳐가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무진에서 화자는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음악선생 하인숙에게서 연민과 사랑을 느낀다.
그녀의 절박한 모습에서 그는 젊은 날, 한때 무진에서 보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를 통해 무진을 벗어나길 원한다. 그러나 하인숙이 탈출하고자 했던 것이 단순히
무진이라는 지명에 불과할까? 아니다. 무진이란 어느 한 지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젊음의 찬란한 꿈과 희망이 사라진 그 절망과 암담함, 탈출구없는 무진의 안개와 같은 그 질곡의
심리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진의 안개는 모든 시대 젊음들에게 다가오는 보편적 현상이기도 하다.
소설 무진기행은 결국 우리들 젊은 날의 삶, 그 자화상에 대한 나지막한 질문의 서사시이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스토리를 따라가기 보다는, '나'라는 1인칭 사내의 의식의 흐름이 건져 올리는
파편적인 단상과, 그 단상의 프리즘이 대상에게 투영되는 상황을 들여다보는 것이 더 절절하다.
그러면서 독자는 무진기행을 읽으며 안개 속을 헤매는 기분이 드는 것이 아니라,
그 안개 속을 관통하는 차갑고도 서늘한 한줄기 빛을 가슴에 담을 것이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 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 내놓는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싸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았다.
-무진기행 중에서-
후기 : 무진기행 이후 20여년 뒤, 나는 김승옥과 비슷한 작가를 만나게 된다.
그는 무라카미 하루키였다. 이 둘의 공통점을 느낌으로 표현한다면 '서늘함'이다.
소위 '쿨'한 것과 비슷하지만, 이 서늘함은 책을 덮고도 묵직하게 가슴을 내리 누르는
무엇이라는 점에서 '쿨'한 것과는 달랐다. 김승옥은 서늘하면서 투명했다.
무라까미 하루키는 서늘하면서도 다감했다. "이문열이 이 무진기행을 통해 김승옥에 대한
좌절감 끝에 '젊은 날의 초상'을 쓰지 않았을까?" 라고상상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