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들 가슴속에 삶의 중요한 내용들을 기록한 비망록 한 권 없겠는가?
삶은 간난신고의 총합이기에 먹물들의 관형어인 가치중립이란 끼어들 수 없없고,
그 순간순간이 치열하고 강렬하지 않은 생의 시간이란 없었다.
내 유년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너 없는 내 유년은 일기장 몇 장에 불과할 일이므로
그 시절을 풍부하게 만들어준 너의 존재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만일 삶이 신과의 계약이라면 나는 어떤 과거는 지금이라도 당장 해약하고 싶고,
어떤 순간은 더 꽃피우고 싶어진다.
어느 때는 태풍이 해일로 밀어닥쳐 휩쓰는 바닷가 모래사장처럼 황량하거나,
천길 벼랑의 백척간두처럼 위태위태해 서늘한 한기가 압도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것들을 하나하나 비망할 수 없어 미망으로 놓아둘 뿐이다.
이런 내 삶에서 자네 없이 내 유년을 추억할 수 있을까?
그 모든 비망과 미망의 기억들을 세상사 모든 것 내려놓고
너와 이야기 할 날이 올 수 있을까?
문득 자신이 없어진다.
구야, 건강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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