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하늘아래 천지개벽은 없다.

체 게바라 2014. 3. 28. 15:33

 

 

하늘아래 천지개벽은 없다. 더우기 인과로 얽혀진 인간사에 공짜는 더더욱이나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라는 간난신고의 세계에 발디딘 안철수와 새정치민주연합에 마음가지 않는 박수를..,

나에게 늘 옆에 두고 즐겨 읽는 책 2권을 고르라면 당연히 ‘그리스인 조르바’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든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는 인간의 정신이 낙타, 사자, 어린아이의 단계로 발전한다고 말한다. 차라투스트라가 설명하는 정신의 세 단계는 결혼과 가족이라는 복잡한 과정을 어떤 방식으로, 어떤 보폭으로 걸어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이 결혼, 창업, 조직 내에서 조직과 조직원의 성장 단계, 더 나아가 인간의 삶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이를 이번에 민주당과 안철수의 새정치 조직이 합당하여 창당한 새정치민주연합에 대입시켜 보았다. 낙타란 짐을 지고 사막을 걸어가야 한다. 짐이란 정신의 복종, 굴종, 자기 고행의 태도를 상징한다. 짐을 지고 있는 낙타는 고행하는 삶, 주어진 전통과 가치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에 대해 순종하는 태도를 말한다. 일테면 짐깨나 지는 정신이다. 낙타는 자신의 주인인 황금용 앞에서 굴종하며 절대로 순종한다. 낙타는 주인인 황금용을 위해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에게 주어진 짐을 지고자 한다. 낙타는 자신의 모든 것을 주인에게 맡긴 채 평생을 헌신하고 노력한다. 짐을 지는 과정은 고통스럽고 괴롭지만 이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자신의 상황에 묵묵히 안주한다.

낙타의 삶은 무겁고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안정되고 편안하다. 모든 것이 주인의 뜻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그리고 스스로 결정할 용기가 없는 사람에게는 좋은 도피처가 된다. 결국 낙타는 정신적 안정의 대가로 변화와 생성을 스스로 포기한 사람들의 이름표가 되는 것이다. 이들은 변화를 감당하지 못하고 기존의 가치를 신봉하며, 이를 내세워 자신의 상태를 변명하고 합리화한다. 딱 박근혜와 그녀를 따르는 똘마니들 그룹의 형상이다. 이들의 황금용은 국민이 아니요, 자기 지역구 유권자도 아니요, 박근혜와 박근혜의 아버지인 죽어 유령이 된 박정희다. 물론 민주당 내의 공익을 위한 투신과 헌신이 아닌 정치 그 자체가 직업인 경쟁을 모르는 호남권 직업 정치인들과 전자에 중독된 국민들과 유권자들 역시 이들 부류에 속한다고 보면 틀림없다. 불행하게도 낙타는 관계에 자신을 종속시키고 스스로를 지우는 단계다. 자신이 마모될 때까지 끝끝내 낙타의 삶을 사는 자들이 대다수다.

굴종적인 낙타의 단계를 스스로 부정하면 사자가 될 수 있다. 사자는 낙타일 때 등에 지고 있던 짐을 벗어던짐으로써 굴종과 순종에서 벗어나 일어서는 존재다. 사자는 ‘예’가 아니라 ‘아니요’를 말하며 자신이 섬겼던 주인 황금용과 대적하고자 한다. 낙타가 ‘나는 해야만 한다’는 정신으로 살았다면 사자는 ‘나는 할 것이다’는 정신으로 향한다. 사자는 말 그대로 기존의 전통과 가치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한다. 사자는 황금용과 대적할 수 있을 만큼 용감하며 또한 자유롭다. 이제 사자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지금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한 안철수는 이 단계에 자신을 포지셔닝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묵묵히 짐을 지던 낙타의 단계에서 벗어나 자유를 향해 자기를 감당하고 지키는 사자의 단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해방감을 느낀다. 순종과 자기합리화에서 벗어나 스스로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사자의 단계는 해방이요 자유로 나가는 입구와 같다. 그러나 사자의 단계 역시 종착점이 될 수는 없다. 사자의 정신으로는 그 다음이 없기 때문이다.

사자가 곧 한계에 부딪히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의 등에 얹혀 있던 짐은 훌훌 벗었지만 어디로 항해 가야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자는 부정만 할 수 있을 뿐 긍정에 이르지 못한다. 진리로 여겨졌던 기존의 가치들을 거부했지만 기존의 가치를 대신할 새로운 가치를 스스로 창조한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며, 전통적 가치는 벗어났지만 새로운 지향을 찾지 못한 채 사막을 벗어나지 못하고 사막 안에 머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안철수의 딜레마가 시작될 것이다. 기존의 가치를 버리고 새로운 가치를 이야기 하지만 자신 스스로도 이 길을 가 본적도 없거니와 설령 찾는다 해도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과의 피할 수 없는 갈등과 조정, 가보지 않았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시행착오와 이에 따른 지지층의 이탈, 수없이 이어질 새로운 선택과 결단에서 파생될 문제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귀추가 주목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철수가 복잡다단한 이해관계와 갈등 요소를 극복하고 그가 지향하는 새정치의 실체를 착근시킬 수 있다면 그는 한국 정치에 많은 이들이 도전하여 실패했던 제3의 길을 성공한 첫 정치인이 될 것이다. 많은 것들이 마음에 차지않기에 선뜻 마음가지 않지만 과거 지향의 굴종 집단인 박근혜와 그녀를 따르는 똘마니 집단들을 극복하고 이 땅에 그가 말하는 새정치의 싹을 티우기를 바라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출발에 미덥잖은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