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낯간지러운 아름다움에 대해서, 혹은 언어를 부리고 다듬는 세공사적 솜씨에만 기댄다면 얼마나 누추해질까? 그것은 차라리 언어유희이자 셀프 마스터베이션은 아닌가?
한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 카프카의 이 한마디 말에 주눅이 들어 나는 한때 결기로 달려들었던 글쟁이의 길을 포기했었다. 호수를 돌다 한때 이 고장에 살던 류근의 '풍경'을 만났다. 몇 소절을 읽다 울컥, 60을 코 앞에 둔 내 삶이 반추되어 잔디에 주저 앉는다. '얼마나 먼길을 떠돌아서/ 나는 비로소 이 길에 자전거를 멈추었나/ 너무 늦게서야 나는 나의 괴로운/ 자전거 바퀴를 멈춘게 아닌가/ 어린 아들의 손바닥 위에 나는/ 말없이 보리 이삭 한 개를 쥐여주네.
시가 진실에 근거하지 않으면 아름다울 수 없다는 사실은 진리다. 이 전제야말로 시가 지닌 미학의 출발점이라 나는 믿는다. 돌이킬 수 없는 시절로 들어서고도 나는 아직도 자전거를 멈추지 못하고 결국 시인의 자조와 만나게 된 것이다. 너무 늦었지만 아들의 손바닥 위에 보리 이삭 한 개를 쥐여주는 아비의 마음이 가여워서 호수를 도는 내내 속이 아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