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박근혜와 그를 따르는 똘마니들은 어떻게 자아동일성을 유지하는가?

체 게바라 2014. 3. 26. 01:20

 

 

박근혜와 그를 따르는 똘마니들은 어떻게 자아동일성을 유지하는가?

인간의 역사를 주체의 역사라고 할 때, 서양 철학은 주체를 하나의 절대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이로부터 주체의 확실성을, 더 나아가 주체가 인식하고 살아가는 세계의 확실성을 세우고자 했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이 주체의 핵심은 이성이었다. 그리하여 근대 유럽은 이성인 자신들을 정상으로 전제한 후, 비이성이자 악인 비서구 세계를 식민지로 다스릴 책무를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그런데 문제는 주체란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자신과 다른 것들을 배제해야 한다. 즉 내가 나일 수 있으려면 내가 다른 존재와 다르다는 전제가 꼭 필요하다. 이렇게 주체란 다른 것들이 나와 다르다는 전제 위에서만 안전하게 자신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가 자아동일성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자신과는 다른 타자를 구별해내고 이 구별을 유지하는 전략에 의해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내가 나이기 위해서는 나는 타자와 달라야 한다. 그래서 주체는 자아의 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나와 다른 타자를 만들어내는 전략을 취하게 된다. 
 
이 이론을 박근혜와 그를 따르는 똘마니들(알기 쉽게 약칭해서 '그들'이라고 하겠다)에게 대입시켜 보았다. 그들에게 자신들과 다른 생각과 가치를 추구하는 타자들을 식별하여 그들은 단순히 자신들과 다른 존재가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열등한(씨바, 우린 그들에게 종북이나 체제 위협세력이라는 열등집단으로) 존재라고 치부했다. 문제는 그들에게 타자들은 열등한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자신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존재로까지 인식을 확장하고 공유하기에 이르게된 점이었다. 물론 이 위협은 실질적인 것이 아니라 그들의 동일성을 유지하고 그들 안에 머물기 위해 일부러 만들어낸 조작된 위협이라는 사실이었다. 이 상징의 조작은 권력의 상층부는 물론이고 당과 언론, 검찰과 국정원, 군, 민간의 보수 친위집단과 인터넷 누리꾼 집단들까지 동원된 광범위하고 조직된 집단들이었다. 
 
그들이 조작적으로 배제해야 하는 집단인 타자를 구성, 지목할 때 식별의 기분이 되는 것이 바로 과거에는 김대중, 2002년 이후로는 노무현이었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가치를 지지하는 자들은 예외 없이 배제 당해야 옳을 타자들이었다. 그들은 이를 정당한 과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묻는다. 그들이 배제와 혐오의 대상이었던 김대중, 노무현이 고인이 된 지금, 여전히 타자라는 이름으로 구분되고 배제되는 집단이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과연 누가 누구의 타자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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