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원래 살과 뼈로 이루어진 것 아니었던가?” [윤태영의 기록-2] 노무현의 화법 ①비유의 달인
윤태영 전 참여정부 청와대 부속실장
“절구통에 새알 까기”
노무현 대통령의 표현이다. 무슨 말일까? ‘누워서 떡먹기’라는 뜻이다. 절구통에 새의 알을 놓고 절구를 내리치면…, 그만큼 쉽다는 것이다. 물론 자주 쓰는 표현은 아니다. 가끔씩 말하는 중간에 등장한다. 알아듣는 사람이 많지 않아, 사실 대통령 스스로도 자주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의 언어감각에는 남다른 데가 있다. 화려한 수식어는 없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우선 대중적인 언어이다. 서민적 표현들이다. 사투리도 등장한다. 사촌이라 할 만한 토속어도 등장한다. 기가 막힌 비유들도 있다. 말을 만들어내는 재주도 있다. 이야기에는 고저가 있고 장단이 있다. 시쳇말로 듣는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한다. 속담도 있고 경구도 있다. 그것이 원래 있던 말인지, 스스로 만들어낸 말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그 많은 표현과 문구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그것이 어떻게 적절한 타이밍에 튀어나오는지 정말 알 수 없다.
“날아가는 고니 잡고 흥정한다.”
대화가 되지 않는 상대방을 애써 붙잡고 어떻게든 뭘 해보려는 상황을 말한다.
“목욕도 안하고 장가를 가는 격이다.”
기본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욕심을 부리는 모습이다.
“물젖은 솜이불에 칼질하는 격이다.”
역시 되지도 않을 일을 억지로 추진하는 경우를 빗댄 표현이다.
“그 사람은 ’풀칠이 안 된 표‘를 가진 사람이다. 바람 불면 날아가는 표다.”
어떤 정치인을 이야기하면서 지지층의 결집도가 단단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며 동원한 비유다.
서민적인 비유나 예화도 있다.
“젖만 짜도 될 텐데, 소를 잡자는 격이다.”
“힘없는 가장이 집에 가서 마누라한테 얻어터지면 어디 가서 말 못한다.”
국내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인용했던 말이다. 이런 말도 있다.
“누가 지나가는 스님을 보고 ‘스님, 어디 가나?’하고 물었답니다. 그 스님이 속으로 이랬다는군요. ‘나쁜 녀석, 말을 놓을 거면 스님, 하고 높여 부르지나 말지!’”
말로는 반성한다 하면서 진정으로 참회하지 않는 일본을 두고 인용한 예화이다.
언론에 대한 불만도 표현한다.
“편지 100통을 써도 배달부가 전달을 안 한다.”
가끔은 서로 모순되는 속담을 지적하기도 한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하는데 ‘무른 감도 쉬어먹어라’는 말도 있지요.”
상황이 힘들고 여의치 않을 때에는 비유가 예외 없이 등장한다.
“혀는 짧은데 침은 길게 내뱉고 싶다.”
“폼(form)은 짧고 고통은 길다.”
“언제나 내 밥의 콩이 작아 보인다.”
자신의 심리를 말해주는 표현들이다. 어려운 상황을 드러낸 표현도 있다.
“거지가 지나가면 온 동네 개들이 다 짖는 법이다.”
때로는 억울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한다.
“초소에서 자는 놈들은 걸리는데, 아예 빠진 놈들은 걸리지도 않는다.”
스스로를 위로하는 비유들도 있다. 큰 욕심 내지 말자는 이야기들이다.
“도매시장에 아무리 많아도 우리 집 냉장고가 중요하다.”
“나무에 앉은 새를 욕심내다가 친구 놓칠 일 없다.”
비유와 예화는 아무래도 공식적인 자리보다는 사석에서 많이 등장했다. 준비된 연설문을 낭독할 때보다는 원고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할 때 자주 접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익혔던 수많은 어휘들이 풍부하게 활용되었다. 거기에 깊은 사고와 사색이 어우러지면서 탄생한 비유와 대구(對句)들이었다. 가장 많은 풍자와 비유는 역시 다양한 정치·경제의 현실을 우회적으로 설명할 때 등장했다.
“도랑 건너가면 잊어먹는다.”
“타이타닉은 선회가 어렵다.”
“안방이 단결하면 머슴이 괴롭다.”
2009년 봄, 혹독했던 시절에는 특유의 비유도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두어 시간 회의를 해도 한 차례의 비유나 풍자를 접하기 어려웠다. 사저에 갇힌 채 홀로 작성했던 ‘못다 쓴 회고록’의 뼈대를 공개했던 5월 14일의 집필회의. 그 뼈대를 보면서 나는 “‘감성적’ 이야기와 ‘딱딱한’ 이야기가 섞여 있어 혼란스럽다”고 의견을 내놓았다. 대통령이 나지막한 톤의 짤막한 답변으로 일축했다. 그가 처해있는 힘겨운 상황이 어쩔 수 없이 반영된 듯싶은 비유였다.
“사람은 원래 살과 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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