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자네 이름이 뭐였더라?” [윤태영의 기록-1] 이름과 역사
윤태영 전 참여정부 청와대 부속실장
2009년 2월 봉하 사저의 회의실. ‘진보주의’ 관련 책자를 집필하기 위한 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주제에 대해 양정철 비서관이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었다. 대통령은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양 비서관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표정에 평소와 다른 구석이 있었다. 이상야릇했다. 호기심 어린 표정 같기도 했고, 의아한 느낌의 표정 같기도 했다. 양 비서관의 제법 긴 이야기가 끝나자, 대통령이 잠시 머뭇거렸다. 이상야릇함이 미안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잠깐의 어색함이 있었다. 이내 대통령이 쑥스러워 하는 모습으로 양 비서관에게 물었다.
“그런데, 자네 이름이 뭐였더라?”
청와대 5년, 그리고 퇴임 후 1년이 넘도록 접해온 비서관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다. 양 비서관의 이야기 도중에 보인 이상야릇한 표정의 정체는 이름을 기억해내기 위한 혼자만의 안간힘이었던 것이다. 좌중에 웃음이 폭발했다.
정치인 노무현은 사람 이름을 기억하는 데 약했다. 기자들의 이름은 특히 그러했다. 참모들과 달리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보는 일이 많아서 더욱 그랬던 듯싶다. 2001년 당내의 대통령후보 경선 준비를 하던 금강캠프 시절의 일이었다. 당시 노무현 고문을 수행하여 서여의도의 이면도로를 걷던 중이었다. 국회 출입 경력이 제법 되는 모 일간지의 기자가 노 고문과 마주치자 인사를 건네 왔다. 정치권에 상당히 얼굴과 이름이 알려진 기자였다.
“준비 잘 되고 계시지요?”
기자는 안부를 물었고, 노 고문은 악수를 청했다.
“네, 잘 되고 있습니다. 식사하러 가십니까?”
두 사람은 엊그제 만났던 사람처럼 짧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다시 열 걸음 앞으로 갔을 무렵, 노 고문이 나에게 물었다.
“저 사람 기자 맞지? 이름이 뭐였지?”
너무나 태연하게 인사를 나누었던 터라, 그 질문에 나는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정치인으로서는 약점이었다. 소위 ‘마당발’로 불리는 유명정치인들을 보면, 한번 스치듯 만난 사람의 이름도 기억을 해둔다. 다음에 만나면 반갑게 이름을 부르며 악수를 청하는 것이다. 그런 일상이 쌓여 ‘마당발’이 되는 것이었다. 누구든 만나는 사람을 지지자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정치인의 입장이고 보면, 이름을 부르며 친근함을 과시할 수 있는 것도 어쨌든 강점이라 할 수 있다. 정치인 노무현에게 그 강점은 없었다. 오히려 보통 사람들은 쉽게 기억하는 이름조차 잊는 경우가 많았으니, 어떤 면에서는 치명적 약점이었다.
경선캠프 시절, 몇몇 기자들과의 점심 식사가 예정된 날이면 비서들은 별도의 쪽지를 준비했다. 노 고문이 앉는 자리를 중심으로 각 좌석에 기자들의 이름을 적어놓은 쪽지였다. 식사장소에 수행한 비서에게는 이름이 배치된 대로 각 기자들을 앉히는 책임이 부여되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간에 늦는 기자도 한두 명 있었고, ‘여기 앉아라!’ 해도 끝까지 다른 자리를 고집하는 기자도 있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 엉망이 되고 말았다. 다행스럽게도 예정대로 자리가 배치된 날이면, 노무현 고문은 상 밑에 쪽지를 펴놓고는 가끔 커닝을 하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치명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정치인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이 문제와 관련한 우려와 불편함을 덜어주었다. 사람을 만나는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의전비서관실에서 자리배치표를 준비하기 때문이었다. 만남이 식사를 겸하게 되면 수저나 포크 옆에 항상 자리배치표가 놓였다. 사람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배치표를 참고하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재임 중 모든 행사에서 이름과 관련한 불상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2004년 말 폴란드를 방문하여 정상회담을 할 때의 일이었다(하단 사진). 대통령은 하루 전날 폴란드 대통령의 이름을 외우는 데 상당한 공을 들였다. 이름이 꽤 길었다. 부속실 직원을 볼 때마다 그 이름을 한 번 더 외우기도 했다. 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 메이크업을 할 때에도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크게 발음을 해보았다. ‘크․바․시․니․에․프․스․키 대통령.’
정상회담이 시작되었다. 대통령은 상대국 정상의 긴 이름을 막힘없이 이야기했다. 회담에 임하는 자신의 성의를 최대한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크바시니에프스키 대통령이 반가운 웃음으로 화답했다. 다음 순서는 양측 배석 참모들의 소개였다. 반기문 외교부장관 등에 이어 청와대의 정우성 외교보좌관을 소개할 차례였다. 대통령이 머뭇거렸다.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다. 의전비서관실이 만드는 자리배치표에는 청와대 참모들의 경우 이름이 생략되고 직함만이 표시되기 때문이었다. 기억을 더듬는 데 시간이 지체되자, 대통령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대통령이 웃으며 물었다.
“우리 외교보좌관, 이름이 뭐지요?”
정상회담이 끝나고 있었던 다른 행사에서, 대통령은 그 해프닝을 일종의 유머로 좌중에 소개하기도 했다.
“폴란드 사람 이름은 외우기가 힘이 듭니다. 저는 매일 만나는 보좌관 이름을 기억 못해서 곤란할 때도 있습니다. 다행히 아내의 이름은 잊어먹지 않았습니다.”(2004년 12월 4일 재폴란드 한국학과 학생․교수 접견)
대통령은 그렇게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름에 취약했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일이 있었다. 대통령은 역사 속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사람 이름뿐만이 아니었다. 사건이 일어난 시기에 대해서도 오차가 전혀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역사적 사건들이 등장인물과 년도를 포함하여 완벽하게 재구성되어 있었다. 그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올 때면 참모들은 혀를 내두르곤 했다. 그랬던 대통령은 지금 현실의 우리 곁을 떠나고 없다. 그의 이름도 역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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