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풀린 초강대국 미국(부시의 외교정책)
AMERICA UNBOUND(The Bush Revolution In Foreign Policy)
著者: H 달더(브루킹스 연구소의 외교학 선임 연구원이며 시드니 스타인 국제 안보위원장
1995년과 1996년 국가안전보장회의 유럽정세 담당 보좌관 역임)
제임스 M. 린제이(미 외교협회의 부회장이자 소장, 브루킹스 연구소의 외교학 이사이자
선임연구원 역임. 1996년과 1997년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국제 문제및 다국 정세
보좌관 역임)
譯者:이주영(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석사 졸업.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
出版社: 예솜출판
부시의 두가지 외교, 국방에서의 신념
2001.9.11 테러이후 미국의 대외 외교정책 뿐만 아니라 많은 것이 급격하게 변했다. 그것은 소위
부시 독트린으로 말할 수 있는바, "선택하라. 우리 편이 되든가, 아니면 우리의 적이 되든가,
둘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부시의 외교정책 혁명은 크게 보았을 때, 기본적으로 두 가지 신념으로
시작한다. 첫번째, 위험이 도사리는 세계에서 미국의 안보를 확실히 할 수 있는 방법은, 우호국가들,
국제기구의 제한이나 제약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번째 신념은 그 어느 것에도 구속받지
않는 현재 미국은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바꿀 수 있도록 자국의 힘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시의 외교정책은, 미국은 위험요소들이 쌓일 때까지 가만히 앉아서 기다려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부시의 두 가지 기본 신념은 미국의 외교정책 수행에 큰 영향을 미쳤다.
첫번째는 일방적인 행동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일방주의가 미국의 마음을 끄는 이유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다국주의보다 더 수월하고 효과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선제공격은 더
이상 미국 외교 정책의 마지막 카드가 아니었다. 대량살상무기가 확산되고 테러리스트들과 불량
국가들이 딱히 정해지지 않은 방법으로 공격할 준비가 되어있는 세상에서, 부시는 "미국은 더 이상
과거의 상호주의적인 자세만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적들이 먼저 공격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세번째로 미국은 전무후무한 힘을 이용해 불량국가들의 체제를 전복
시켜야 했다. 체제전복이라는 발상은 미국의 외교정책에서 전혀 새로운 발상은 아니었다.
외교 정책에 관하여 부시는 네오콘의 신보수주의자들의 꼭두각시인가
그렇다면 부시와 그의 핵심 참모들을 언론들이 말하는 신보수주의자들로 지칭할 수 있을까?
딕 체니,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과 국방차관 폴 울포위츠로 대표되는 네오콘이 신보수주의자들로
포진되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2003년 7월 상원 외교위원회의 민주당 조지프 바이든은 "지금 당장은 부시 정부 내에서
신보수주의자들이 승리를 거두고 있습니다. 신보수주의자들은 부시 대통령의 마음과 정신을
사로잡은 듯 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외교 정책 입안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틀에 박힌 주장은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신보수주의자(민주적 제국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부시 행정부 내부보다는
밖에서, 특히 코멘터리<Commentery)와 위크리 스탠더드<Weekly Standard>의 기사들과
폭스 뉴스 텔레비젼 방송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그러나 딕 체니. 도널드 럼스펠드, 폴 울포위츠를
포함한 부시의 참모들은 부시까지도 신보수주의자들이 아니었다. 부시와 참모들은 극단적인
국수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강력한 미국의 군사력을 이용하여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존재들로부터 미국을 지키려는 강경 노선의 보수주의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타협이나
협상보다는 힘과 결단력을 더 신봉하였다. 두번째 오류는 백악관 입성 초기에 조지 부시는 외교와
국방의 분야에서노련한 정책 참모들의 꼭두각시로 비춰졌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결코 꼭두각시로
머물러있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노련한 참모들을 앞에서 리드하는 강력함을 보여주었고,
미국의 패권적 제국주의의 전세계적 사용에 있어 이들 참모들보다도 더욱 완강함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적 패권주의
부시의 외교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논리는 바로 패권주의적 사상에 있다. 기본적으로 미국적
패권주의는 미국의 막강한 힘을 소리높여 주장하며, 미국이 막강한 자국의 힘을 사용하려는 의지가
그 어떤 목표보다 중요하며, 세계 속에서 미국의 이익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열쇠가 된다고 보는
사상이다. 그렇다면 패권주의자들은 무엇을 믿는가? 첫번째 논리는 미국이 현재 위험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아직 공포와 미사일, 그리고 미친 사람이 있습니다." 부시는
이렇게 주장했다. 두번째 논리는 소련의 해체이후 90년대는 국가간에 경제, 정치, 사회의 상호 연결이
증대되는 세계화 혹은 신자유주의의 태동기였다. 이는 세계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개별국가의
권위가 약화되고 대신 다국적 기업과 사기업, 다국적 단체와 같은 비 국가 주체들의 힘이 강해질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그러나 부시와 그의 참모들은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소위
'환상적인 세계 공동체'라는 체제 자체를 신뢰하지 않았다. 세번째 논리는 힘, 특히 군사력을
세계화된 세계에서조차 중요한 존재로 보았다. 콘돌리자 라이스는 이렇게 말한다. "힘은 중요하다.
..그리고 만일 힘이 중요하다면 막강한 힘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부시도 덧붙인다. " 이제
미국이 해야 할 일은 미국의 헤게모니 시대를 영구 평화가 보장되는 시대로 바꿔가는 일이다."라고..
그러므로 이들 미국 패권주의자들에게 있어 힘이란 단순한 능력과 의지가 아니라 그 이상이었다.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하여 그들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 미국의 힘을 단독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힘을 행사하는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네번째 논리는 다국적 협약과 법은 미국의 이익에 중요하지도 않으며, 제대로 시행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반대의 논리로 그들은 UN을 포함한 국제기구들의 노력이 즉각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분명히 하고 있다. 다섯번째 논리는 미국은 유일한
초강대국이며, 다른 국가들은 미국을 유일한 초강대국 그 자체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1992년 펜타곤 보고서의 내용은 이랬다. "결국 세계의 질서는 미국의 보호에
따라 유지된다. 미국이 국가이익을 추구하면, 그만큼 자유, 시장, 평화를 증진시킬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될 것이다. 미국이 국가 이익을 추구하면서 세계는 더욱 번영하고 민주적으로 되었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노력을 경주하여야 한다..."
부시 외교정책의 딜레마
부시의 2기 집권이 2년여가 지났다. 그의 외교정책은 곳곳에서 갈등을 야기시키고 있다. 점령 이라크
에서의 교훈은 그저 '날 따르라'하는 식으로 이끌어 간다면 이에 동의하고 동참하는 나라가 거의
없다는 것, 시간이 걸리고 그 효과가 미약하더라도 미국 단독의 힘의 행사를 통한 해결이 아니라,
국제 기구의 개입에 의한 해결 노력을 간과하는 것, 그리고 이것이 부시의 고삐풀린 외교 정책이
직면한 딜레마이다. 2003년 후반이 되어서야 부시는 비로소 작은 변화의 유연성을 표시한다.
"우리가 원하는 해결 방식은 국제사회와의 협력입니다." 그렇더라도 부시의 이러한 미국 패권주의적
발상이 바뀐 것은 아니다. 2003년 미국 독립기념일에 자신의 외교정책을 다시 한번 더 환기시킨다.
"미국이 세계정세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독재자들의 야욕을 막을 수 없게 되며,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테러리스트들의 손에 좌지우지 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이 세계정세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독재자들은 두려움을 알게 될 것이고, 테러리스트들은 허둥지둥 달아날 것입니다.미국은
가만히 앉아서 공격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악한 자들이 아무리 몸을 숙이는
척 하고 사탕발림을 해도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테러리스트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모든 세력들에 맞서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테러리스트 조직이건,
불량국가건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위협하도록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미국인들의
생명과 자유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지면 언제라도 행동에 나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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