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의 참고서를 사러 동네 서점엘 갔다가 책을 읽고 가겠다는 아이의 말에
서점 내부를 어슬렁거리다가 베스트 코너에서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이건 딴소리이지만, 구직자들을 불러서 얘기해 보면 참 가관이예요. 어쩌면 하나같이
자기 능력을 과신하는지..포트 폴리오나 이력서를 보면, 우리는 사실 견적이 딱 나오잖아요?
이 사람은 얼마짜리고 또 이 사람은 얼마 짜리다. 근데 본인들은 몰라요....."
- 32살 먹은 오은수가 면접보는 자리에서 면접관에게 듣는 소리다.
내 이력서를 거기 두고 돌아 나오면서 지독한 가뭄 끝의 밭뙈기처럼 가슴 속이 쫙쫙
갈라졌다.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에게 한없이 가라앉게 하는 소리,
그 남자의 말은 몹시 재수없지만 한 마다 말은 반박하기 힘들었다.
"본인들은 그걸 몰라요."
24시간을 함께 지내지만 정말이지 나는 나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 객관적이고
가차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30대 여성, 오은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가진 것 - 입가의 팔자 주름, 알량한 통장 잔고, 깔고 앉은 원룸 전세금, 반 의절 상태인 부모,
'한심하게 살기대회' 대표 선수같은 친구들, 사랑에 관한 몇 가지 실속없는 추억들.
못가진 것 - 남편, 아이, 직장
겨우 세 가지가 부족할 뿐인데, 왜 이렇게 처참한지 모를 일이었다. (336쪽)
30살/31살/32살, 2005년, 2006년 서울 직장여성의 통속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이는 소설.
유달리 섹스를(그녀는 '하고 싶은 사람과, 하고 싶을 때, 안전하게'라는 섹스의 3대 수칙을
정해두고 있다) 밝히지도 않고, 유달리 착하지도 않고, 유달리 정숙하지도 않은, 그저 오늘을 살고
조금은 나은 내일을 꿈꾼다고 해야 할까? 그 꿈을 위해 억척스럽지도 않다. 그렇다고 그녀들은
요즘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된장녀처럼 남자에게 부당한 요구나 큰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녀들은 드라이한 서울의 삶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고 싶을 뿐이다.
오은수, 유리, 재은, 세 친구를 통해 보여지는 2005, 2006년 서울 여성은 어떤 모습인가?
이 자리 저 자리 몇 번 옮겨 겨우 말단을 벗어난 직장인, 그러나 그 직장이란 게 언제 어느 때
그만두어야 할지 모른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참고 일정한 자리에 올랐지만 여전히 이루고
싶은 꿈에 그 안락한 직장을 때려 치우기도 한다. 결국 그녀들은 자주 실패한다. 물론 그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시작하는 당당함을 지니고 있지만 말이다.
달콤한 꿈같은 인생이 있듯이, 씁쓰레한 도시를 달콤한 도시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위태로운
직장여성이 주인공인 이 소설은 분명 2005년, 2006년 서울의 풍속이 될 것이다.
그녀들은 자신들을 델마와 루이스의 틀에 맞추기도 한다.
<달콤한 나의 도시>가 괜찮은 이유를 굳이 찾는다면 그것은 바로 '생각하는 그녀들'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비록 3류의 인생이지만, 설사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다시 시작하려는 그녀들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無味의 서울에서, 그렇다고 해서 꿈이 만들어지거나,
없었던 꿈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테지만... 그러나 그 無味의 서울에서 때론 달콤함도 발견할 터이다.
그리고 때론 쓴맛도 경험하리라.
"서른 두 살, 가진 것도, 이룬 것고 없다. 나를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다. 우울한 자유일까? 나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서울의 맛이다.(4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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