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챠예프> 혁명가의 교리문답
네챠예프의 <혁명가의 교리문답>이 번역되어 온라인상에 떠돌아다니는데, '진보정치연구회' 카페에 게시된 것을 자료삼아 옮겨온다(역자는 최원하씨로 돼 있다). 전체 26개 조. 영역된 교리문답은 인터넷상에서 쉽게 읽어볼 수 있으며, 러시아어 원문은 1869년 제네바에서 씌어지고 출판됐다(원문 사이트는 http://nbp-info.ru/new/lib/nech_kat/.)
자신에 대한 혁명가의 의무
1. 혁명가는 운명을 정한 자이다. 그는 개인적 이해, 직업, 감정, 애착, 재산, 그리고 이름을 가지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모든 것은 혁명에 대한 한결같은 사고와 열정에 전적으로 열중하는 것이다.
2. 혁명가는 그의 심연으로부터, 말로서 뿐만 아니라 행위로써, 그를 법, 도덕, 관습, 그리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모든 인습으로 사회 질서와 문명 세계에 묶어 놓는 모든 인연을 끊어야 함을 안다. 그는 그것들의 화해할 수 없는 적이며, 그가 그것들 속에 살기를 계속한다면 그것은 오직 그것들은 더욱 신속히 파괴하기 위함이다.
3. 혁명가는 모든 교의를 경멸하고 세속적 과학의 수용을 거부하며, 후세들을 위해 그것들을 버린다. 그는 단 하나의 과학, 즉 파괴의 과학만을 안다. 이 이유로, 그러나 단지 이 이유에서만은 아니라, 그는 역학, 물리학, 화학, 그리고 형편에 따라서는 의학을 연구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매일 주야로 인류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학, 즉 인류의 특성과 환경, 그리고 현 사회 질서의 제 현상을 연구할 것이다. 그 목적은 영구히 동일하다. 그것은 모든 부정한 질서를 파괴하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을 찾는 것이다.
4. 혁명가는 여론을 경멸한다. 그는 사회의 모든 표현으로 현존하는 사회의 도덕을 경멸하고 혐오한다. 그에게 있어, 도덕은 혁명의 위업에 공헌하는 모든 것이다. 부도덕과 범죄는 그것에 대항하는 모든 것이다.
5. 혁명가는 헌신적인 자이며, 국가와 교양 있는 계급들에 대하여 무자비하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그들로부터 여하한 자비도 기대하지 않을 수 있다. 그와 그들 간에는, 공공연하든 숨겨져 있든, 가차 없고 화해할 수 없는 목숨을 건 전쟁이 존재한다. 그는 고문에 익숙해져야 한다.
6. 그는 자신에게는 물론이고 타인들에 대해서도 포악해져야 한다. 친족관계, 애정, 우정, 감사, 심지어 정직까지의 모든 온화하고 연약한 감정은 속으로 억누르고 혁명에 대한 냉정하고 한결같은 열정에 그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그에게 있어 혁명의 성공이라는 단 하나의 기쁨, 포상, 만족만이 위안으로서 존재한다. 주야로 그는 무자비한 파괴라는 한 가지 생각과 목적만을 가져야 한다. 그는 이 목적을 위해 냉혈하고 끈질기려 노력하면서 자신을 파괴하고 혁명의 행로에 대항하는 모든 것들을 그 자신의 손으로 파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7. 진정한 혁명가의 본질은 모든 감상적인 생각, 낭만주의, 심취 그리고 고양을 배척한다. 모든 사적 원한과 복수심 또한 배척해야 한다. 습관이 되기까지 매일 매순간 익힌 혁명적 열정은 냉정한 계산과 함께 사용되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그의 개인적 충동에 따라서는 안 되며, 오직 혁명에 도움이 되는 것들에만 따라야 한다.
동지들에 대한 혁명가의 관계
8. 혁명가는, 그와 같이 혁명에 헌신적인 그들의 활동들에 의해 검증된 이들을 제외하고, 여하한 우정이나 애착도 가질 수 없다. 그러한 동지에 대한 우정, 헌신 그리고 의리의 정도는 오로지 혁명적 파괴의 대의에 대한 그의 유용성의 정도에 의해 확정된다.
9. 혁명가들 간의 결속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혁명적 작업의 모든 힘은 이에 있다. 동일한 혁명적 열정과 이해를 가진 동지들은 되도록 모든 중요 사안들을 함께 협의하고 결정들에 대해 전원 일치하여야 한다. 계획이 최종적으로 결정된 다음에는 혁명가는 오로지 자신만을 신뢰해야 한다. 파괴를 실행에 옮김에 있어, 각인은 단독으로 행동해야 하며, 계획의 추진에 있어 필수적인 때를 제외하고는, 결코 다른 이에게 조언과 원조를 구해서는 안 된다.
10. 모든 혁명가는 완전히 입문하지 않은 혁명가들과 동지들 등을 두세 단계 아래로 두어야 한다. 이들은 그의 처분에 맡겨진 공동 혁명 자산의 일부로 여겨져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자산은 그것으로부터 최대한으로 가능한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 가능한 경제적으로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진정한 혁명가는 스스로를 혁명의 위업에 봉헌한 자산으로 여겨야 할 것이나, 그는 완전히 입문한 동지들의 일치된 승인 없이는 개인적으로 그리고 홀로 자산의 태도를 취하지 않을 것이다.
11. 한 동지가 위험과 문제에 있을 때, 그가 구해져야 할 것인지 그렇지 않든 간에, 결정은 감정이 아닌 오로지 혁명적 대의의 이해관계에 기초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까닭에, 동지의 유용성과 그를 구하기 위해 필요한 혁명적 힘의 소비를 신중히 비교 평가함이 필수적이며, 결정은 이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에 대한 혁명가의 관계
12. 말이 아닌 행동으로써 그의 충의를 증명한 새로운 일원은 모든 회원들의 만장일치된 승인에 의해 조직에 받아들여질 수 있다.
13. 혁명가는 국가, 특권 계급들, 소위 문명의 세계에 들어가며, 그는 오직 그것의 급속하고 총체적인 파괴를 초래할 목적으로서만 이 세계에 산다. 이 세계에 대해 여하한 동정도 가진다면 그는 혁명가가 아니다. 그는 이 세계의 어떠한 지위, 어떠한 신분, 또는 어떠한 인간을 제거함에 있어서도 주저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는 동일한 혐오로 그것의 만인과 만물을 증오해야 한다. 그가 부모, 친구 또는 연인과 여하한 관계도 가진다면 모든 것은 더욱 나빠진다. 그가 이러한 관계들에 의해 동요된다면 그는 더 이상 혁명가가 아니다.
14. 무자비한 혁명을 목표로 하여, 혁명가는 모든 곳, 즉 상류와 중류 계급들, 상점들, 교회들 그리고 귀족사회의 궁전들, 그리고 관료정치와 문학과 군대의 세계들, 그리고 또한 제삼 사단(Third Division)과 짜르의 동궁(Winter Palace)에 침투해야 하기 때문에 그의 본모습과 완전히 다르게 가장하여 사회 내에서 살 것이며 때때로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
15. 이 부정한 사회 질서는 몇 개의 부류로 쪼개질 수 있다. 첫째 부류는 지체 없이 처형을 당해야 하는 이들로 구성된다. 동지들은 처형받아야 하는 이들의 명부를 그들의 죄의 상대적 중대함에 따라 수집해야 할 것이고, 실행은 준비된 순서에 따라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16. 처형 받을 이들의 명부가 완성되고 실행의 순서가 준비되었을 때, 불법행위에 대한 개인적 의견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며, 동지들이나 사람들 사이에 이들이 유발하는 혐오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혐오와 불법행위에 대한 의견은 그들이 대중에게 반란을 자극하는 한에 있어서 더욱 유용하게 될 것이다. 혁명의 목적을 위해 이 실행들의 상대적 유용성에 따라 유도됨이 필수적이다. 특히, 혁명조직에 유해한 이들은 제거되어야 한다. 그들의 극단적이고 돌연한 죽음은 정부에 극도의 공황을 일으킬 것이며, 정부의 가장 영리하고 활동적인 지지자들의 제거에 의해 그것의 기능하려는 의지를 꺾을 것이다.
17. 두 번째 부류는 일련의 가공할 행위들로 사람들을 피할 수없는 폭동으로 몰아가려고 시간을 할애하려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18. 세 번째 부류는 현명함이나 그들의 활력에 의해 구별된 높은 지위가 아니라, 그들 계급의 힘으로 누리고 있는 부와 권세과 권력 그리고 높은 지위에 속한 많은 짐승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이용되어야 한다. 즉 그들은 우리의 일들에 관련되고 휩쓸어 넣어져야 하며, 그들의 더러운 비밀들은 찾아내져야 하고, 그들은 노예로 바뀌어야 한다. 그들의 권력, 권세 그리고 연고 관계, 그들의 부(富)와 그들의 활동력은 우리의 모든 사업에 있어 무진장한 보배와 가치있는 도움을 형성할 것이다.
19. 네 번째 부류는 야심적인 공직자들과 다양한 견해를 가진 자유주의자들로 구성된다. 혁명가는 그들과 협력하고 그들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체하며, 동시에 그들이 완전히 권력을 쥐기까지 그들의 비밀들을 캐내야 한다. 그들은 타개책이 없도록 매우 위태롭게 되어야 하며, 그들은 국가의 혼란을 만들어내는데 이용될 수 있다.
20. 다섯 번째 부류는 그들의 당파들에서 거대한 두각을 나타내는 교조주의자들, 음모가들 그리고 혁명가들로 구성된다. 그들은 타협안들을 발표하도록 휘둘러져야 한다. 결과적으로, 소수파가 진정한 혁명가들이 되게 될 때 그들의 대다수는 제거될 것이다.
21. 여섯 번째 부류는 여성으로, 특히 중요하다. 그들은 세 가지 주요 그룹들로 나뉠 수 있다. 첫째, 우리가 세 번째와 네 번째 부류의 남자들을 이용하듯 이용될 경박하고 분별없고 활기 없는 여성들. 둘째, 다섯 번째 부류의 남자들처럼 이용될 열렬하고 유능하고 헌신적이지만, 아직 냉정하고 엄격한 혁명적 이해에 도달하지 못하였기에 우리에게 속하지 못하는 여성들. 마지막으로, 완전히 헌신적이고 우리의 프로그램을 온전히 그대로 수락한 완전히 우리 편에 있는 여성들 등등. 우리는 이 여성들을 가장 가치있는 자들로서나 우리의 보배들로서 여겨야 한다. 그들의 도움이 없이는 우리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인민에 대한 조직의 태도
22. 조직은 근육노동으로 살아가는 대중, 인민 등의 완전한 해방과 행복 외에 다른 목적이 없다. 그들의 해방과 이 행복의 성취에 대한 확신을 가진 이들만이 모든 것을 파괴하는 민중 반란의 성과와 같은 것을 실현할 수 있다. 조직은, 마침내 인민의 인내가 바닥을 드러내고 그들이 총 반란을 일으킬 때까지, 그것의 모든 자원과 힘을 중대하고 강화되는 인민의 불운과 불행들에 대하여 사용할 것이다.
23. 혁명에 의해, 조직은 전형적인 서구의 모형, 즉 항상 소유권 그리고 소위 문명과 도덕의 전통적 사회 체계에 대한 공격에는 못 미치고 끝나는 반란에 따른 유순한 반란을 의도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러한 혁명은 항상 스스로를, 하나의 정치 형태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 위해 그리고 그에 의해 소위 혁명 국가를 일으키려 기도하는, 하나의 정치 형태 전복으로 제한하고 있다. 인민에게 유익한 혁명의 유일한 형태는 근본적으로 국가 전체를 파괴하는 것이며, 모든 국가적 전통과 제도들 그리고 러시아의 계급들을 박멸하는 것이다.
24. 이 결과를 목적으로 하여, 따라서 조직은 위로부터의 어떠한 새로운 조직체를 이용하는 것도 거부해야 한다. 후세대들이 결정해야 할 문제이지만, 장래의 어떠한 조직체도 그것의 수단을 인민의 운동과 삶을 벗어나 움직일 것이란 것은 의심할 바 없을 것이다. 우리의 임무는 지독하고 총력적이고 전 세계적이고 무자비한 파괴이다.
25. 따라서, 우리는 인민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무엇보다 러시아의 국가가 설립된 이래로 국가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된 모든 것들, 즉 귀족, 관료, 승려, 상인 그리고 기식하는 부농(富農)들에 대항하여 말만이 아닌 행동으로써 항의를 멈추지 않은 대중의 분자들과 함께 공동의 대의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러시아의 비할 바 없는 진짜 혁명가들인 대담한 산적패들과 결속해야 한다.
26. 인민을 극복할 수 없는 그리고 모든 것을 파괴하는 단 하나의 힘으로 결합시키는 것, 이것이 우리의 목적이자 우리의 공모이며 우리의 임무이다.
책 소개를 마저 옮겨오면, "당시 러시아의 혁명가들을 지배했던 니힐리즘(허무주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네차예프가 음모가였고 사기꾼이었고 공갈범이었고 복수의 화신으로 성장하게 된 과정을 그려낸다.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거부하고 조직을 떠날 결심을 한 조직원을 살해한 네차예프가 말년에 겪은 극심한 심리적 고통과 감옥에 갇혀서도 러시아 혁명 운동 내부에서 전설이 된 그의 모습을 통해, 혁명의 정치학에 내재한 교훈을 찾아본다."
대의를 위한 자기 조직원 살해가 바로 '네차예프 사건'이며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악령>의 주된 창작동기이자 테마이다(박찬욱 감독은 <복수는 나의 것>(2002)의 마지막 장면에서 배두나의 동료인 무정부주의자 5인조에게 송강호가 칼에 찔려 복수/살해당하는 장면의 모티브를 이 <악령>에서 끌어왔다고 했다). 네차예프와 이 사건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서 러시아사 전공자인 한정숙 교수는 책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그런데 네차예프를 진정 혁명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혁명에 대한 그의 헌신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부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의 기만술, 잔인함, 행위의 비윤리성을 생각하면, 혁명가라 칭해져 온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묶는 용어로 이 이름을 사용하기가 망설여질 수도 있다. 그는 인텔리겐치아라 칭해져 온 모든 사람들 가운데 가장 과격하고 극단적이며 불가해한 인물이었다. 네차예프는 나름대로 혁명에 대한 투철한 헌신성과 확신을 특징으로 하는 인물이었으며, 그는 변함 없는 자기 확신 속에서 죽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의 확신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기 어려운, 닫힌 신념이었다."
"네차예프시나는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데도 실제로 일어난 그런 종류의 일이었다. 네차예프 행동의 극단성을 당시 러시아 사회의 지식인들에게 감지된 그들 사회의 출구 없는 상태, 극단적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극단적 사회가 극단적 인간을 낳았던 것이다. 그것은 법과 정치를 통한 사회 개혁, 개인적 삶의 의미망 확대가 가능하지 않다고 여겨지던 사회였다."(라캉-지젝의 용어로 말하자면, 네차예프의 행동은 '행위'가 아니라 극한적 상황에서의 '행위로의 이행'이었던 것이다.)
끝으로, 역사평론가 이덕일씨의 관련칼럼을 옮겨놓는다. 네차예프 사건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와 평가를 담고 있다. 서울신문(05. 05. 02)의 칼럼이었고, 타이틀은 '정신이 불구인 사회'였다.
-<이방인>이란 소설로 유명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알베르 카뮈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예언자는 칼 마르크스가 아니라 <악령(惡靈)>을 지은 도스토예프스키라고 갈파한 적이 있다(*카뮈는 <악령>을 각색하여 무대에 올린 바 있다). 칼 마르크스가 혁명 이후 유토피아의 수립을 예언했다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악령>으로 혁명 후 그 반대의 사회를 예언했던 것이다.
<악령>은 1868년 제정 러시아에서 발생한 네차예프 사건을 모티브로 쓴 소설인데, 이 사건은 당시는 물론 2003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J. M. 쿠시가 도스토예프스키를 소설 속에 끌어들여 <페테르부르크의 대가>라는 소설을 썼을 정도로 유명한 사건이다. 제정 러시아를 전복하기 위한 비밀 혁명결사에서 탈퇴하려는 인물을 네차예프와 그 동료들이 살해한 것이 사건의 개요이다.
-이 소설을 쓰기 전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른바 혁명의 동조자였다.1846년 발표한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에서 도시의 뒷골목에 사는 소외된 사람들의 사회적 비극과 심리적 갈등을 그려낸 도스토예프스키는 3년 후인 1849년 페트라세프스키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감형되어 시베리아 유형생활까지 했던 전력까지 있었다.
-그러나 <악령>이 발표되자 그를 동지라고 생각했던 많은 인물들이 비난하고 나섰다. 그중 한 명인 막심 고리키는 “오늘날 러시아인에게 보여 줄 필요가 있는 것은 스타브로긴(<악령>에 등장하는 허무주의자)과 같은 인물이 아니고…에너지원(源)인 민주주의와 민중과 사회성과 과학에의 복귀다.”라고 비판했다.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후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이 금서가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러나 역사가 E. H. 카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이런 반응을 예상했음을 말해 준다(*카의 도스토예프스키 평전은 번역된 바 있다. 현재는 절판됐지만). 그는 “문학 작품을 항상 그 정치적 경향으로서 판단하는 나라에서 젊은 세대가 <악령>의 작가에게 분노를 느낀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도스토예프스키를 동지라고 생각했던 만큼 그 분노는 더욱 치열했다(*이러한 분노는 아직도 남아있는데, 그것은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박노자의 평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청년들의 노여움을 샀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별반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는 그러한 결과를 미리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악령> 출간 이후의 ‘결과를 미리 짐작하고 있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혁명 이후의 결과도 미리 짐작했던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예언대로 혁명 이후 현실 사회주의는 스탈린주의라는 인류 역사상 희대의 좌파 전체주의로 현실화하면서 역시 인류 역사상 희대의 우파 전체주의인 나치와 함께 인류에게 무수한 고통을 주었다. 현재도 이런 역사적 과오를 애써 외면하는 일부 경직된 좌파들은 도스토예프스키를 슬라브주의 민족주의적 성향의 반동 보수파로 낙인찍고 있지만 그는 보수와 진보를 넘어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악령>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개인적인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러시아의 대문호로 대접받고 있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인물을 우리 사회에서 찾기는 어렵다. 우리사회도 E. H. 카의 말대로 ‘문학 작품을 항상 그 정치적 경향으로서 판단하는 나라’이기는 마찬가지지만 우리사회의 많은 작가나 지식인들은 인간과 사회의 진실보다는 자신이 속한 진영의 반쪽짜리 진실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정치권과 경제계·노동계 그리고 언론계·학계를 막론하고 우리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 이중 잣대와 반쪽짜리 정의가 횡행하고 있다.
-‘철새’가 날아들면 선거 때가 가까운 것이라는 한국정치 불변의 법칙 또한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이번 재 보궐선거는 또 보여 주었다. 이를 뛰어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 같은 찬 샘물이 정수리를 치지 않는 한, 이런 성찰에 우리사회가 화들짝 놀라 반성하지 않는 한 우리사회는 점점 겉은 멀쩡하지만 정신은 심각한 불구 상태가 될 것이다. 치료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대체로 역사에 낙관적인 나로선 이러한 역사적 교훈과 치유가 우리의 것이 될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그건 러시아의 경우나 한국의 경우나 마찬가지이다.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 유감스럽지만 그것이 낙천성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체호프식의 기대처럼 아마도 10만년쯤 뒤에는 좀 나아질지 모른다. 나는 역사의 진보를 믿지만, 그 진보는 갈라파고스의 거북이를 닮았다고 또한 믿는다. 좋은 세상이 반드시 올 것이다. 하지만 더디게 올 것이다(그렇다고 동지를 죽이거나 거북의 목을 잡아 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출판사 교양인에서 문제적 인간 시리즈 3권째로 윤길순 씨 번역으로
네차예프, <혁명가의 교리문답>이 나왔다. 문제적 인간 시리즈는
2005년부터 시작되어 1권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
2권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에 이은 책으로서
이 인문학 시리즈가 계속될 수 있도록 '글벗'들의 관심과 자선(?)을
기대합니다. 책값이 비싼 것이 흠이나 인문학에 관심있는 글벗들의
기대를 흠뻑 만족시키리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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