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리좀
리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를 지질학적, 위상학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세계라는 지도 위에 지층과 영토성, 도주선, 분할선, 분절선, 기계적 배치물, 강렬도와 구성, 선별, 고른판, 기관없는 몸체를 그려놓아야 한다. 새로운 지평 위에 새로운 개념을 배열해 내고, 창조해내면서 세계를 다르게 볼 수 있는 시각을 형성해 보아야 한다. 먼저 책을 말하자. 갈릴레오처럼 책을 세계에 대응하는 반영물이나, 작은 세계로 바라본다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그런데 책은 우리가 만들 세계라는 지도 위에서 어떠한 존재였던가? 책은 하나의 다양체다. 책은 지도 위에 그려진 하나의 선분 위에 놓자. 책은 하나의 강렬도와 속도를 가진 배치물이며, 어떤 특정한 대상에 귀속된 것이 아니며, 책은 유기적인 총체성을 갖는 대상으로도 존재할 수 있겠지만, 지도 위의 지층의 등고선위에 놓여진 기계적인 배치물일 수도 있다. 세상의 일부인 책의 기관없는 몸체는 고른판 위에 배치되어 연결접속되는 강렬도와 속도를 지니며, 그 과정에 의해 책은 추상기계로 작동할 것이다.
가장 쉬운 책에 대한 설명은 책을 뿌리-책의 유형으로 보는 것이다. 나무는 세계의 이미지이며, 뿌리는 세계나무의 이미지다. 세상에 대한 반영이자 반사물인 책은 유기적 총체로서 존재하며, 변증법적이며, 하나-둘 이런 식으로 가지를 쳐 나간다. 촘스키의 언어나무가 그러하고, 컴퓨터의 연산나무가 그러하다. 그 나무에는 주축뿌리, 변증법적 과정의 환원되는 미끄러지는 중핵이 있으며, 그것은 일대일 대응관계로, 이항논리로 전개된다. 다음으로 어린뿌리체계, 수염뿌리 체계가 있다. 본뿌리는 퇴화하고 곁뿌리의 다양체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알뛰세르의 중층결정, 양가성, 덧코드화로서의 형식들이 드러내는 새로운 다양의 통일성이다. 그것은 포스트모던한 통일성이자, 순환적 원환적 텍스트의 구조가 보증하는 선형적 통일성이다. 이들의 구조는 생성이 없는 낙태시술자의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논의하고자 하는 것은 가지를 절단하여 심어도, 뿌리의 일부를 잘라서 심어도 수평적으로 증식해 나가는 구근과 덩이식물의 삶의 방식, 민중적 삶의 방식인 리좀이다. 리좀에는 주축뿌리나 덧코드화의 통일성을 그려낼 수 없다. 그것은 일자를 뺀 다자인 n-1로서 존재한다. 리좀은 잡초나 냉이식물들의 집단서식지라는 동질적 부호로 지도에 표현될 수는 없다. 리좀은 지도 아래로 굴을 파고들어간 두더쥐들과 이를 뒤쫓는 고양이, 벌과 꽃, 인간이 만들어 놓은 길 위로 절단된 동물의 이동로, 가상현실에서 우연히 만난 익명의 두 남녀 사이에도 존재한다.
리좀의 제 1의 원리는 연결접속의 원리이며, 제 2의 원리는 다질성의 원리이다. 리좀은 다른 어떤 부분과도 연결접속될 수 있다. 나무의 유형과 같이 하나의 점에서 파생되는 것이 아니라. 미시정치, 사회, 정치, 경제 등의 잡다한 영역과 사슬을 형성하며, 그 코드화에 접속한다. 언표행위라는 집단적 배치물은 기계적 배치물속에서 기능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언어를 의미론, 화용론, 미시정치와 연결접속시켜 추상기계를 작동시켜 나가야 한다. 끊임없는 연결접속과정에서 언어는 보편성도, 등질적 언어공동체도, 발화자와 청취자의 이상적 관계도 없는 방언, 사투리, 속어, 전문어의 경합속에 이루어진 잡다한 언어행위의 연합으로서 존재한다. 언어란 그러므로 탈중심적이고 다질적인 실재다. 리좀의 제 3의 원리는 다양체의 원리이다. 다양체는 하나와 관계하지 않으며, 주/객체가 없으며, 다양체가 가질 수 있는 것은 규정, 크기 차원뿐이다. 리좀은 신경섬유다발이나 수많은 꼭두각시줄로 이루어진 망상조직의 다양체다. 리좀은 점이 아니며, 선들로 구성되어 있다. 리좀의 다양체에 통일성을 부여하려 할 때는 항상 덧코드화로서만 가능하다. 그것은 선으로 구성된 망상 조직의 차원이 아니라, 어떤 기관이나 체제를 보완하기 위한 텅 빈 차원을 구성한다. 다양체가 가지고 있는 고른판은 다양체의 탈영토화하려는 외부로 향하는 운동의 범위까지를 의미하며, 다양체는 이 운동에 따라 유한한 차원이지만, 변형된 차원으로 변화해 나간다. 리좀의 제 4원리는 탈기표작용적인 단절의 원리다. 리좀은 탈영토화려는 도주선과 분할선으로 서로 지층화된다. 두 지층, 서양란은 말벌의 모습과 비슷한 꽃분을 가지고서 말벌을 유혹한다. 그것은 서로 아무런 관계도 없는 두 존재의 비평행적 진화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DNA를 변형시켜 숙주에 침투하는 바이러스와 같다. 책과 세계도 책이 세계에 대한 탈영토화라고 할 때, 세계는 책을 재영토화한다. 그것은 지각의 작용인 기표작용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에 대해 단절하여 변주되는 도주선이다. 리좀의 5원리/6원리는 지도제작과 전사(轉寫)의 원리다. 뿌리-나무의 구조처럼 나무는 본뜨기를 수행하고, 사본을 통한 복제복사를 통해 세상을 재현해 낸다는 생각은 언어라는 덧코드화의 구조에 나무의 지지축을 구축하여 사본하고 위계화하려는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리좀은 사본이 아니라 지도다, 기관없는 몸체, 고른판위에 리좀은 여러 가지 변주로서 등장하게 된다. 사본의 문제는 언어능력의 문제라고 할때, 지도는 언어수행의 문제이다. 지도도 사본이 존재하지 않는가? 아니다. 오히려 사본이라고 사고했던 것을 지도로 바꾸어 놓아야 한다. 사이버스페이스의 복제복사의 행위는 사본의 증식이라기 보다는 바로 자기가신을 복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지도다. 사본을 리좀으로 포괄시킨다면, 리좀-뿌리 위에 나무는 매듭으로서 존재할 것이며, 선 위에서 점으로 포괄될 것이다.
인간의 수상돌기나 시냅스는 불확실성에 있는 리좀의 다양체이다. 인간두뇌는 리좀이다. 짧은 기억이 리좀이라면, 긴 기억은 나무다. 즉, 짧은 기억은 집단적이고, 시간적이고, 신경적인 리좀과 뒤섞인다. 나무는 연결의 쌍극자 가운데서 대립절편의 역할을 통해 리좀에 뿌리내리려 한다. 나무체계는 위계제적인 주체화와 의미생성으로 결정될 중앙제어장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무구조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공통된 친구를 가정한다. 그 보편적 친구는 기관과 권력의 구조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리좀은 중앙제어장치가 없다. 장군 없는 게릴라와 같다. 그것은 독재를 거부한다. 역사적으로 동양의 수로권력은 수로-리좀을 의미하며, 동양의 천의 사상은 민초들의 리좀을 의미한다. 물론 리좀에는 나무의 마디가 있고, 뿌리에는 리좀의 발아도 있다. 우리는 서양의 이원론을 거부하며, 스피노자의 방식인 '일원론=다원론'으로 접근하고 있다. 리좀은 하나나 여럿으로 환원할 수 없으며, 하나로 파생된 여럿이나 하나가 더해진 여럿(n+1)도 아니다. 리좀은 시작도 끝도 없으며, 언제나 '그리고'라는 연결접속의 중간만이 있을 뿐이며, 주체도 대상도 없는 고른판 위에 펼쳐진 다양체, 즉 하나를 뺀 다양체(n-1)이다. 리좀은 산의 중턱에 있는 고원이며, 등반의 크라이맥스로 이루어지는 절정이 아니라, 강렬함이 연속되는 곳이다. 우리는 앞으로 이 다양체를 고원이라 부를 것이다. 리좀학은 분열분석이자, 지층분석이며, 화용론이자, 미시정치학이다. 천개의 고원으로 향하는 개미떼들과 성배를 찾아 떠난 소년십자군들은 유목론을 역사대신 쓸 수 있으리라. 그것은 정주민들의 연대기적 시간의 배열과는 다른 리좀의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유목민은 국가장치에 대항하여 전쟁기계를 발견했다. 역사는 유목의 과정을 이해한 적이 없으며, 책이 바깥을 이해한 적이 없다. 국가 그것은 책의 모델이자 사유의 모델이었다. 로고스, 철학자-왕, 이데아의 초월성, 개념의 내부성, 개념들의 공화국, 이성의 법정, 사유의 공무원, 입법자이자 주체인 인간, 세계질서의 내부화된 이미지로서 국가, 인간을 뿌리내리겠다는 국가의 오만 방자함. 그러나 여기서 전쟁기계와 바깥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구축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 또한 배치물이다. 책이나 전쟁기계를 기계적 배치물이 되게끔 하는, 리좀의 줄기가 되게끔 만드는 배치물이다. 리좀은 시작하지도 끝나지도 않는다. 언제나 간주곡이고, ~이다를 거부하는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의 과정이다. 자 이제 우리 출발점도, 끝도 없는 유장한 강물 중간에서 그 속도를 느껴보자.
늑대는 한 마리인가? 여러 마리인가?
프로이드박사는 신경증과 정신분열을 분석하면서도 다양체에 대해서는 인식할 수 없었고, 하나의 통일체 속에서 판단하였다. 유아기의 늑대에 대한 공포증에 대한 분석서인 늑대인간은 늑대가 항상 무리들을 이룬다는 동물학적 상식을 간과하면서 외디푸스 공식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오이디푸스 장치내에 있으면 신경증이고, 그것이 파열되면 정신병이라는 손쉬운 공식이 그것이다. 일반인들인 하나의 기의에 사로잡혀 공전하는 기표의 상징계를 가진 신경증자와 어떠한 기의를 중심성도 존재하지 않는 기표로의 다양체를 소유한 정신병자의 대조 속에서 여기서 늑대인간의 분석은 신경증에 집중되어 있지만, 분열분석으로 역전되어져야 한다. 늑대의 다양체 속에서 우리는 기관없는 몸체, 다양체들로 북적거리는 몸체를 발견하게 된다. 사막의 영은 늑대인간의 기관없는 몸체이리라. 무의식에서는 결핍이나 부정적인 무엇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점에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무한한 움직임으로 가득차 있다. 늑대는 강렬함이요 속도요 온도이며 분해될 수 없으나 변하는 거리다. 라깡처럼 구멍, 거세, 결핍, 치환, 대체물으로 다양체를 의식하지 못하는 의식과잉의 백치에게 블랙홀이야말로 입자로 가득차 있음을 알게 하리라. 다양체도 두가지 종류가 있다. 거대 다양체는 그램분자적 다양체다. 이는 통합, 총체화, 의식/전의식으로 구성된 다양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미시 다양체는 무의식적, 리비도적, 분자적인 강력한 다양체다. 이 두 가지의 다양체의 구분 속에서 우리는 집단이나 군중과 무리를 구별해 볼 수 있겠다. 집단이나 군중은 양, 가분성/평등함, 중앙집중, 집단전체의 사회성, 일방적 위계, 영토성, 영토화의 조직, 기호방출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집단/군중의 노선은 철학적으로 홉스-루소-헤겔-하버마스에 이르는 주류노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에 무리는 소수자, 흩어짐, 가변거리, 질적변환, 잔류자, 횡단자 불평등, 브라운운동의 다양체, 탈영토화의 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리의 노선은 마키아벨리-스피노자-마르크스-니체-들뢰즈/가따리/네그리의 노선이라고 할 수 있으며, 언제나 주변인 소수자의 노선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분열증은 늘 주변에 있으며, 반면 편집증은 중앙을 형성하고 군중 속에 주체를 호명해 낸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늘 무리 속에 군중이며, 군중 속에 무리이다. 리좀과 나무는 서로 결합되어서 나타난다. 즉, 우리는 제도 속에서 군중이면서도 동시에 비제도적인 무리이다. 나무는 리좀형태의 선을 갖는 반면, 리좀은 나무형태의 점을 갖는다. 군중과 무리는 상호침투하고 있는 다양체인 것이다. 우리가 다양체/군중기계를 전의식에 귀속시켜 판단하는 것으로는 늘 불충분하다. 언제나 저변에는 늑대무리들의 공포스런 울음소리가 은밀하게 전달되고 있다. 우리가 고려할 점은 1) 사회기계나 조직된 군중이 분자적 무의식을 갖게 되는 방식을, 2) 군중속의 특정한 개인 스스로가 무리의 무의식을 갖게 되는 방식을, 3) 한 개인이나 군중의 무의식 속에서 다른 개인의 무의식과 무리들을 겪게 되는 방식을 고찰하여야 한다. 여기서 무리나 군중에 대당되는 개인들의 언표란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의 언표로 나타나는 것은 늘 언표를 생산하는 기계적 배치물들의 현존을 반증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관없는 신체라는 광활한 사막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있다. 늑대무리들의 탈영토화하려는 도주선을 뒤쫓는 아랍집단들의 오아시스라는 점과 점을 잇는 영토화하려는 길이 사막을 가로지르고 있다. 군중의 영토성이냐? 무리의 탈영토성이냐? 우리는 사막 위에서 늑대의 무리들과 마주치게된 프로이드라는 장군이 선택한 한 마리의 늑대를 겨냥한 손끝 너머로 수없이 밀려드는 늑대들의 무리와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도덕의 지질학 (지구는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지구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상 중에는 성층작용(지층화)이 있다. 한 지층이 다른 지층을 떠받치고 있다면 그것을 밑지층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밑지층 위로 기관없는 신체인 고른 판이 있다. 그것을 웃지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밑지층과 웃지층 사이에 기계적 배치물이 있다. 이것을 사이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신의 손길은 가재 혹은 이중집게, 이중구속이다. 지층은 적어도 둘로 되어 있으며, 이중적이다. 지층은 두 가지 분절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분절은 불안정한 입자흐름으로부터 준 안정적인 분자단위들과 유사분자단위들을 뽑아내며, 연결-이어짐들이라는 통계학적 질서를 부여한다. 이러한 첫 번째 분절의 작용을 퇴적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분절은 밀집되고 안정된 기능적 구조(형식)을 세우고 그램분자적 합성물들(실체)로 구성된다. 두 번째 분절을 습곡작용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실체는 형식을 부여받은 질료이다. 형식이 코드화와 탈코드화와 관련된다면, 실체는 영토화와 탈영토화와 관련된다. 첫 번째 분절인 한 유형은 유연하고, 분자화되어 있음에 반해, 두 번째 분절인 다른 유형은 그램분자적이고 조직화되어 경직되어 있다. 중심잡기, 통일화, 총체화, 통합(=적분), 위계세우기, 목적설정과 같은 덧코드화는 두 번째 분절의 층위에서 발생한다. 엘름슬레우의 구분법에 따르면 첫 번째 분절은 내용과 관련되고, 두 번째 분절은 표현과 관련된다. 내용분절과 표현분절의 이중성 속에서 그러한 매개상태, 층위와 평행상태, 교환들이 존재하며, 그것이 지층화를 통과한다.
<엘름슬레우의 구분법>
원시수프의 상태속에서 외부의 재료들은 이러한 지층을 거쳐서 경계, 막의 통일성의 내부로 통합된다. 이러한 지층의 통일성을 구성하는 추상기계를 고른판의 평면태에 반대되는 통합태라고 할 수 있다. 고른판의 평면태는 밑지층으로서의 외부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통합태는 이중적 지층으로 분할된다. 그 중 하나는 외부환경과 내부요소사이를, 실체적 요소들과 그 합성물의 사이를, 합성물과 실체 사이를, 실체화된 여러 실체들 사이를 매개하는 것, 그 매개물과 중첩들, 이 돌출들, 이 층위를 겉지층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은 조성의 통일성 속에서 지층은, 지층의 연속성을 부수고 고리를 잘라 단계화하는 자신의 실체적 겉지층으로 존재한다. 내부환경과 외부환경의 막으로서 존재하는 겉지층과 달리 그것의 연합적 환경, 합병된 환경으로서도 존재한다. 이러한 연합환경을 곁지층으로 부르도록 하자. 겉지층과 곁지층은 통합태 위의 이중적 지층이다. 겉지층은 내용과 관계된다면, 곁지층은 표현과 관계된다. 형식이 코드와 결부되어 있고 곁지층들 안의 탈코드화와 코드화의 과정과 결부된다면, 형식을 부여받은 질료인 실체는 영토성과 결부되어 있고, 겉지층 위에서의 탈영토화운동 및 재영토화운동과 결부되어 있다. 코드와 영토성, 탈코드화와 탈영토성은 대응관계가 이나다. 코드가 탈영토성일 수 있고, 재영토화가 탈코드화일 수도 있다. 탈영토화와 재영토화는 코드변경들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코드 변경이 살아남을 것인지를 엄밀하게 결정한다. 코드화와 영토화의 지표는 추상기계의 이중적 운동과 결부되어 있다. 하나의 도주선은 재영토화를 전제로 한 탈영토화의 상대적 도주선이 있다면, 다른 하나의 도주선은 물고기가 지상으로 올라온 재영토화를 거부하는 도주선이 있다. 통합태 위에서 겉지층과 곁지층은 끊임없이 유동하면서 변화한다. 추상기계는 통합태와 평면태라는 두 가지의 상이한 존재양태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통합태에서 추상기계는 성층작용에 갇혀 있고 또 특정하게 결정된 지층 속에 감싸여 있으면서, 이 지층의 프로그램이나 조성의 통일성을 정의하고 이 지층 위에서 벌어지는 상대적 탈영토화를 조절한다. 반면 평면태는 고른판 위에서 제 힘으로 전개되며, 고른판의 도표를 작성한다. 하나의 동일한 기계가 천체물리학과 미시물리학,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 양쪽 모두를 작동시키며, 절대적 탈영토화의 흐름들을 안내한다. 우리가 주목하는 바는 통합태 속에서 겉지층과 곁지층을 구성하고 분절된 절편으로 나아가는 상대적 탈영토화가 아니라, 고른판 위에서 절편으로 분해될 수 없는 도주선, 절대적 탈영토화인 것이다.
우리는 무기체-유기체-기계라는 구분에서 기계적인 틀을 통하여 거대지층군들을 평가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거대지층군은 무기체적 지층권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의 내용은 분자적인데 반해, 표현은 그램분자적이다. 분자적인 것과 그램분자적인 것 사이에 여러 매개가 존재할 수 있으며, 외부적 힘들이나 조직화의 중심이 그램분자적인 형식속에 개입할 수 있다. 그램분자의 표현의 형식은 거푸집유형으로서 외부적 힘들의 최대치를 동원 할 수도, 변조 유형으로서 최소치를 동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자적 내용과 그램분자적 표현이라는 구분은 형식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형식적 구분이 유기체적 거대지층군에서는 달라질 수 있다. 유기체 지층에서 표현은 모든 차원을 따라 표현된 분자적 내용에 의존한다. 표현은 그 자체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것이 된다. 유기체 지층에서 표현은 선, 면과 같은 것이 아니라, 핵산시퀸스의 선형성과 같은 것이 된다. 유기체의 표현과 내용은 분자적인 것과 그램분자적인 것을 동시에 갖게 된다는 점에서 무기체의 지층과 다르다. 세 번째의 거대 지층군은 내용의 형식이 동종적인 것이 아니라 이종적인 것이 되고 표현이 언어학적인 것이 되는 지층이다. 기술, 언어, 도구, 상징, 자유로운 손과 유연한 후두, 몸짓과 말이라는 새로운 분배적 특성의 지층을 의미한다. 이 지층에서는 앞발은 탈영토화되어 손이 되고, 입도 탈영토화되어 유연한 후두와 분절을 말하기 시작한다. 음성기호는 시간적 선형성을 가지고 존재한다는 점에서 유기체지층의 유전코드가 갖고 있는 공간적 선형성과 다르다. 유전코드는 발신자도 수신자도 없고 단지 잉여와 잉여가치만이 있을 뿐인 반면, 언어표현은 시간적 선형성의 순차성과 관련되며, 이것은 언어가 초선형성과 덧코드화를 특성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추상기계는 지층상태인 통합태와 탈지층화된 고른판 위에서 스스로 전개하는 평면태 사이에 있는 매개상태를 의미한다. 추상기계는 하나의 결정적인 지층에 속해 있으면서도 모든 지층을 넘어서는 환상을 생산하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이다. 인간을 구성하는 지층을 재구성한다면 위와 같은 도표가 가능하다. 도구-손/안면-언어라는 이중적인 구성 속에서 인간의 이중적 지층 속에서 작동하는 추상기계는 사이보그적 인간형의 지층적 구성으로 전개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지표(영토적 기호), 상징(탈영토화된 기호), 도상(재영토화의 기호)를 구분할 수 있다. 기호를 전 지층군으로 확장한다면 기호의 제국주의로 나아갈 것이다. 기호는 세 번째 지층군에 한정되어져야 한다. 기표-기의라는 언어학적 관계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파악되고 있다. 기호 속에는 탈기표작용적 기호체제도 있으므로 기표가 기호일 수 없으며, 기호란 권력조직의 배치물의 표현이다. 궁극적으로 기의란 기호를 넘어 확대적용되는 기표의 존재 그 자체이다. 기표란 잉여이며, 잉여를 산출하는 것이다. 표현의 형식이 기표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내용의 형식은 기의가 아니다. 기표의 애호가들은 말로부터 기표에 예속되는 기의를 추출해내는데, 푸코를 예로 들자면 범죄란 감옥이라는 내용형식을 상호전제하는 표현형식이다. 범죄는 감옥을 기의로 갖는 기표일 수 없다. 하나는 표현이라는 담론다양체이고, 다른 하나는 내용이라는 비담론 다양체이다. 즉, 내용/표현은 기의/기표로 환원될 수 없고 평행한 형식화작용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정신-물질, 내용-형식, 토대-상부구조라는 스탈린주의로부터 벗어나면서, 동시에 알뛰세르의 최종심급의 경제결정과 같은 것으로부터도 벗어났다. 지층의 질서에서 덜 조직되거나, 더 조직된 지층은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밑지층 노릇을 하는 지층일 경우에도 그러하다.
용어를 정의해 보자. 고른판은 층위의 차이, 크기의 차원, 거리를 모른다. 고른판은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의 차이도 모른다. 고른판은 형식도 실체도 없고, 내용도 표현도 없고, 상대적 탈영토화도 없다. 하지만 지층들의 형식과 실체아래에서 고른판은 추상기계를 통해 강렬함의 연속체들을 구성한다. 강렬함의 연속체, 미립자들 또는 기호-입자들로 조합된 방출, 탈영토화된 흐름들의 집합접속이 고른판의 고유한 세 요소이며, 추상기계에 의해 작동되고 탈지층화를 구성한다. 추상기계는 때로는 고른판 위에서 펼쳐 지면서 고른판의 연속체들, 방출들, 집합접속들을 구성하고 때로는 하나의 지층 위에 감싸여 있으면서 그 지층의 조성의 통일성과 그 지층의 인력 또는 포착력을 정의한다. 기계적 배치물은 추상기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완전히 다르다, 기계적 배치물은 하나의 지층 위에서 내용과 표현을 상호조율시키고, 내용의 절편과 표현의 절편들이 일대일 관계를 맺게 하며, 지층이 겉지층과 곁지층으로 나누어지도록 이끌어준다. 모든 점에서 기계적 배치물들은 고른판위에서 펼쳐져 있거나 지층안에 감싸여 있는 추상기계를 작동시킨다. 하나의 지층은 다른 지층의 밑지층 역할을 한다. 지층은 자신의 환원할 수 없는 형식과 연합된 환경에 따라 곁지층으로 나뉘었고, 형식을 부여받은 실체의 층들과 매개환경들에 따라 겉지층으로 나뉘었다. 기계적 배치물은 지층의 내용과 표현을 조절한다는 면에서 사이층이며, 고른판으로 향하는 추상기계를 작동시킨다는 측면에서 웃지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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