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따뜻한 가슴과 연대만이 희망이다(2) - 신영복 <강의 펌>

체 게바라 2006. 8. 15. 17:46

 

아까 주체적 역량을 질적인 측면에서 보자는 이야기를 했는데, 연대야말로 그 핵심 고리입니다. 연합에서 연맹으로, 다시 전선으로, 파티(party)로 나아가는 연대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역량을 한번 보세요. 연합형식의 연대도 안 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기본적으로 연대라는, 관계론적 정서가 전혀 없기 때문이에요. 근대자본주의 사회가 지닌 강철의 논리, 그런 존재론적 논리에 다 매몰되고 있는 것이지요.

성공회대 사회교육원에 노동대학이 있습니다. 거기 모이는 노조 간부들께 저는 연대를 해야한다고 자주 말씀드립니다. 왜냐. 연대야말로 가장 약한 사람들, 역량이 취약한 사람들의 전술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야말로 삶의 실상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노자철학(老子哲學)을 춘추전국 시대 민초들의 전략전술이었다고 봐요. 노자사상은 한마디로 ‘물’입니다. 물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바로 연대성입니다. 연대는 아래로 내려가는 겁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은 연대가 아닙니다. 그것은 추종이라고 하지요. 종속이라고 부릅니다. 자기보다 낮은 쪽으로 흐르는 것, 그래서 결국 가장 큰 것, 바다를 이루는 것이 연대입니다.

 

바다는 연대성의 최고 개념입니다. 바다의 어원이 뭔지 아세요.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작은 강물도 거절하지 않고 모두 받아들여서 가장 큰 걸 이루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바다입니다. 모든 역량을 받아들이는 연대성이야말로 약자의 정서이며, 동시에 우리 삶의 관계성을 승인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저는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해야 할지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어떤 목표라 할지라도 우선은 ‘낮은 곳’과 연대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경우 과정이라는 것은 절대로 어떤 수단의 개념이 아닙니다. 과정 그 자체가 목적이며 바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란 말이 있습니다. 논어의 이 구절을 대개 이렇게 풀이해요. ‘군자는 화목하면서도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않으며 반대로 소인은 동이불화 (同而不和), 똑같은 데도 불구하고 화목하지 못한다.’

 

전 이걸 좀 다르게 풀이합니다. 이 화(和)라는 것을 저는 연대성으로 봐요. 연대는 공존입니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 그게 바로 화(和)지요. 동(同)이란 ‘자기와 같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흡수합병이 동(同)의 논리지요. 이는 곧 지배의 논리이고 우리가 그 대가를 뼈아프게 치르고 있는 제국주의의 논리입니다. 연대를 하려면 동(同)의 논리가 아닌 화(和)의 논리에 철저해야 하지요.

 

노동가치설은 노동운동의 이론적 토대입니다. 모든 노동운동가들이 이 점만은 분명하게 주장합니다. 이는 마르크스 경제학의 기본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전 노동대학 강의에서 그랬습니다. 그렇지 않다고요.

자본주의 사회의 가치는 사용가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교환가치입니다. 무엇이건 시장에서 그 가치가 실현되지 않으면 제로(0)지요. 고전파 경제학에서는 노동이 창조한 잉여가치가 상품 안에 그대로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상품이란 것은 마르크스가 ‘목숨을 건 도약’이라고 했듯이 팔리지 않으면, 그러니까 가치가 실현되지 못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반대로 가치가 전혀 없는 것도 팔리기만 하면 자본주의적 가치가 실현됩니다.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사회의 가치이며 그 실현 형식입니다.

 

이건 다시 말해 자본주의 사회의 가치는 노동자들만이 만들어낸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유통과정의 부등가 교환으로 착취당하고 빼앗기는지, 교통지옥과 불친절에 시달리고 있으며, 불량식품을 사먹고 있는지…. 이는 우리가 날마다 겪는 ‘생활’입니다. 이러한 부등가 교환과 부당한 교환과정에 만들어지는 것이, 즉 실현되고 있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의 가치입니다. 공장만이 유일한 착취의 현장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다같이 빼앗기고 있는 겁니다.

 

연대가 필요한 건 그 때문입니다. 물론 노동운동의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운동의 구심이 되어야지요. 그러나 그것이 다른 모든 사회역량을 동(同)의 논리로 흡수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동자 이상으로 착취당하며, 빼앗기면서 살고 있어요. 이야말로 노동운동이 동의 논리가 아니라 화의 논리에 입각해서 다른 사회운동과 연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론적 근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참으로 부정적입니다. 노동운동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대기업 노조 중심의 노동운동에 대한 반성이 필요해요. 요즘은 임시 고용직이 전체 노동인력의 50% 이상을 차지합니다. 그 외에 얼마나 많은 열악한 변형근로가 있습니까. 협력업체 사람들과는 샤워장도 같이 안 쓰고, 유니폼도 다르게 입으려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들과의 연대 없이는 노동운동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는 고용노동자 내부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바깥의 일용직이나 실업자, 더 바깥에 있는 빈민이나 농민들과의 연대에도 굉장히 냉정합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연대의 구심이 될 수 있다고 자부하는지 저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외부에서는 하지 않습니다. 자기비판의 장에서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진정한 반성의 계기는 자기비판 형식을 띠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민운동의 경우에도 저는 외부에서는 비판하지 않습니다. 현 단계에서 시민운동은 필요하고 또 얼마든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얼마 전 우리 학교 동료 교수 분들의 요청으로 갔던 참여연대 간부수련회에서는 진지하고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날 특강 제목이 ‘시민운동 향기가 없다’였습니다. 물론 주최측에서 붙인 제목입니다만, 저는 (우리 시민운동의) 진짜 문제는 변혁의지가 없는 것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감시기능에 국한된 운동은 결과적으로 변혁을 유보하거나 우회하는 개량적 성격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요지의 말을 했습니다.

 

어쨌든 저는 현 단계에서 연대성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봐요. 루카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히말라야산맥에 사는 토끼가 제일 조심해야 할 것은, 자기가 평지에 사는 코끼리보다 크다고 착각하는 것이라고요.

 

우리의 문제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요. 스스로 작다고 하는, 우리의 역량이 취약하다는 냉정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바로 연대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 의식 속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존재론적 생각들을 반성하지 않고는 기본적인 운동틀을 짜기도 어렵습니다. 관악민주포럼도 마찬가지입니다. 크려고 해선 안 돼요. 인체에서도 세포 하나가 지나치게 비대한 경우 그것을 뭐라고 하지요? 암이라고 합니다.

 

연대성의 이론적 기반은 서구 근대사회의 존재론이 아니라 동양학의 관계론입니다. 물질의 궁극적 존재가 입자(粒子)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쿼크나 소립자(素粒子)는 자기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파동도 아니고 입자도 아닌,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인, 이를테면 점입자(點粒子)로 규정하지요. 점은 길이와 부피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물리학이 입증하려는 가설체계입니다. 물질의 궁극적 존재는 일종의 ‘확률(確率)’로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명 역시 신진대사에서 보듯 외부의 물질과 에너지와 연결되어 있는 열린 시스템으로 파악되어야 합니다. 물질과 생명은 그 근본에서 ‘관계성의 총화’로 존재하는 것이지요.

제가 붓글씨를 좀 씁니다. 붓글씨는 서양에는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동서양 간 패러다임 차이를 느끼게 돼요. 예를 들어 붓으로 첫 획(劃)을 잘못 그었다고 합시다. 각도가 삐뚤어졌거나 생각보다 획이 굵게 그어졌다면, 그때부터 비상체제에 돌입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지우고 다시 쓸 수는 없으니까 어떻게 하는가 하면, 그 다음 획으로 첫 획의 잘못을 커버하는 거예요. 그래도 안 되면 그 다음 글자로 결함을 커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글자의 결함은 그 다음 글자, 또는 그 다음다음 글자, 또는 그 옆의 글자를 통해 보완하게 됩니다. 한 행(行)의 결함은 그 양 옆에 있는 행으로서 보완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글씨 쓸 때는 굉장히 긴장하게 돼요. 한 획을 그으면서도 전체를 다 봐야 하니까요.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흑과 백, 즉 묵과 종이의 조화를 고려해야 합니다.

 

제 경우는 붓이 지나가는 까만 부분은 별로 보지 않고 남아 있는 종이의 여백을 주로 바라보고 쓰는 편입니다. 절에 있는 대웅전 현판을 볼 때도 글씨의 획보다는 남아 있는 획과 획사이의 여백을 봅니다. 네거티브 스페이스(negative space)를 보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것은 흑백의 조화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관계성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모든 획과 획이 서로 기대는 것, 모든 글자와 글자가 서로 돕는 상태. 방서(傍書)나 낙관(落款)까지도 전체의 균형에 참여하는 그런 한 폭의 글씨를 격조가 높은 서도작품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쓴 글씨는 서도의 경지로 보지 않습니다. 예술과 철학으로서의 서도는 굉장한 관계성의 총체인 것이에요. 한 글자만 빠지면 전체의 균형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관계와 조화, 그것이 서도의 철학이고 서도의 미학입니다. 그런 까닭에 저는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쓴 글씨를 보면 착잡한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옆 글자한테 기댈 것도 없이 저 혼자 독립적 존재로 집합하고 있는 글씨를 볼 때면 ‘시민적 질서’가 잘 잡혀 있는 글씨구나, 그런 생각을 하지요. 서구의 시민사회라는 것도 그런 게 아니겠는지요.

 

제가 대전교도소로 이송되어 갔을 때 이야기입니다. 그 몇 개월 전에 이응노 선생이 출소하셨다고 하더군요. 같이 있었다던 젊은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그 친구 말이 ‘참 이상한 노인네’였다는 거예요.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죄명이나 형기를 물어보는 법이 없었다는 거죠. 한 방에 있는 자기한테도 그랬답니다.

 

대신 한번은 자기 이름을 묻더라는 군요. 자네 이름이 뭔가, 그래서, 김응일입니다, 응할 응 (應)자에다가 한 일(一)자입니다, 그랬더니 붓으로 ‘김?응?일’ 석 자를 쓰더랍니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하는 말이 “뉘 집 큰아들이 여기 들어 왔구먼…”. 뉘 집 큰아들이란 말에 그 젊은 친구는 눈물이 핑 돌았다고 했어요.

교도소는 무엇보다 먼저 죄명과 형기로 존재를 규정하는 곳입니다. 인간관계가 완벽하게 사장된 극히 개인적이고 국소적 존재로 놓이는 공간이지요. 뉘 집 큰아들이라는 말에 고향에 계신 부모님 생각도 나고, 누이동생 생각도 나고, 그렇게 자기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면서 눈물이 쏟아지더라는 거예요. 바로 그런 것, 어떤 개인을 뉘 집 큰아들로 볼 줄 아는 그런 관계론적 관점이 우리 사회의 기본적 정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어머님이 위독하셔서 잠시 귀휴(歸休)를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다시 감옥으로 들어가면서 잠시 접견대기실이란 곳을 들러 보았습니다. 가족들이 접견을 오면 어떤 곳에 앉아서 호명을 기다리는지 보고 싶어서요. 마침 접견대기실에는 젊은 여자가 아기를 옆에 두고 얼굴을 묻은 채 엎어져 있었어요. 아마 접견하고 나오는 길이었나 봐요. 울음소리 하나 없었지만 처절하게 흐느끼고 있었어요. 교도소에 돌아온 이후에도 그 정경을 떨쳐버릴 수가 없더군요. 재소자들을 볼 때마다 그 엎어져 있던 여자 생각이 났어요. 저 사람의 가족도 그러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어요. 요즘도 피의자가 점퍼로 얼굴을 가리고 경찰조서를 받는 뉴스화면을 보면 자꾸 그 가족을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는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 개인’이란 관념으로만 가능한 것일 뿐입니다.

 

본론에서 빗나간 이야기였습니다만 연대문제란 사실 관계성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연대문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신뢰성의 문제, 신뢰집단의 문제입니다. 한 사회의 연대성의 층위는 결국 신뢰집단을 건설하는 문제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문제가 심각한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연대하려고 해도 신뢰할 수 있는 집단이 없다는 거지요. 집단 이기 뿐이라는 겁니다. 이는 역량의 사회적 연대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각자가 개별적으로 자기의 신뢰성을 세워나가야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타인에 대한 불신을 자신의 신뢰성을 선언하거나 방어하는 논리로 삼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소모적인 것은 없습니다.

 

자공이 스승인 공자에게 물었어요. 선생님, 정치가 뭡니까. 공자가 답하기를 족식(足食), 족병(足兵), 민신(民信)이라고 대답합니다, 먹을 게 충분하고, 병사가 충분하고, 백성들의 신뢰가 있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이어 계속되는 자공의 질문에 공자는 경제, 안보, 신뢰 이 세 가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라는 말을 합니다. 물론 춘추전국시대에는 국경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어느 군주가 신뢰만 얻으면 가장 중요한 자원인 사람은 금방 모여들었죠. 그 당시에도 사람이 가장 큰 전략적 요소였던 거예요.

 

지금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 중에 거의 미신이 되어버린 음양오행이란 것이 있어요. 오행이란 여러분이 잘 알 듯이 수, 화, 금, 목, 토잖아요. 서경(書經) 홍범조(洪範條)에 따르면 수, 화, 금, 목, 토가 사실은 국가의 자원입니다. 국가가 관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원이 다섯 가지 있는데, 그게 물, 불, 쇠, 나무, 땅이란 겁니다. 그런데 이 다섯 가지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사람입니다. 민신(民信), 즉 신뢰라는 거예요. 사람 속에 경제도 있고 병력도 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탁월한 전략이나 군량미도 결국 마을사람들과의 대화와 관계에서 나왔던 것이었어요.

 

사회운동단체들이 신뢰받는 집단으로 바로 서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조금 전에 이야기한 바와 같이 우리 사회의 연대수준은 매우 낮습니다. 또 명망이 있거나 규모가 큰 조직과의 연대란 실상 화(和)의 논리가 아닌 동(同)의 논리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러한 실정에서는 이를테면 ‘빨치산’의 전략전술이 요구된다고 봅니다. 빨치산이라는 어휘가 상당히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너무 험악한 단어라고만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빨치산 출신들과 참 오래 같이 있었어요. 제가 감옥에 있었던 기간이 60년대 말부터 88년까지니까…. 구 빨치부터 신 빨치, 해방정국에서 활동했던 분들과 함께 있었던 셈입니다. 빨치산은 전략전술을 독자적으로 구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앙과 단절된 상태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기본 조건이지요. 마치 운동구심이 부재하고 연대할 수 있는 신뢰집단이 없는 상황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빨치산은 현재 자기가 갖고 있는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창조성을 발휘합니다.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주민과의 접촉국면을 최대한으로 넓혀야 합니다. 주민이 전투와 보급의 가장 중요한 토대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차라리 부차적인 이유입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내부의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뿐만 아니라 주민들과의 정치적 민주주의입니다. 이러한 일상생활에서의 민주주의야말로 민중적 토대의 문제인 동시에 나아가 신뢰의 문제입니다.

 

빨치산에 대한 루카치의 언급은 물론 문학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구절은 매우 함축적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당 문학가는 지도자의 단순한 병사가 아니라 빨치산이다. 진정한 당 문학가라면 당의 역사적 소명, 주요한 전략적 노선과 깊은 통일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 통일성 내에서, 그러나 자기 고유의 수단을 가지고 스스로 책임지는 가운데 행동해야 한다.’

 

저는 현재 우리 사회의 역량 배치나 조직 정형으로 볼 때 모든 운동단체는 이러한 기본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일상생활에서의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는 절차적인 형식논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민중현실의 문제, 즉 정치목표의 문제입니다. 정치적 당면과제를 설정하는 문제이고 동시에 그 목표의 민주적 공유입니다.

 

이처럼 모든 일은 민중의 지근거리(至近距離)에 근거지를 만드는 것, 그것을 통하여 신뢰를 구축해 가는 일에서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봐요. 근거지를 기반으로 외부를 향해 연대가능성을 열어놓는 일, 그것이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서둘러 중앙을 향하였던 과거의 기회주의적 작풍은 일종의 권력의지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긴 호흡을 가져야 합니다. 생활의 운동화가 아닌 ‘운동의 생활화’라는 유장한 작풍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풍 얘기를 조금 더 하겠습니다. 이건 일하는 스타일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출소를 앞두고 광복전후시대를 겪은 연세가 많은 분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분들의 대답은 참으로 의외였습니다. 자신들도 선배들에게 배운 것이라며 “이론은 좌경적으로, 실천은 우경적으로” 해야 한다는 조언을 하시는 거였어요. 이 충고의 배경에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라는 인식이 전제해 있습니다. 자신의 생존이 결정적으로 위협받지 않으면 절대로 판 자체를 바꾸려고 하지 않아요. 대개 중간층들, 인텔리들의 성급하고 소아병적이며 관념적인 급진성, 그런 것들이 일을 망쳐 놓는다는 거죠.

 

교도소에서도 이와 관련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교도소 건물구조가 가운데 복도가 나있고 남쪽과 북쪽 양쪽으로 방이 늘어서 있습니다. 거기 있어 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겨울철에 남쪽 방과 북쪽 방은 온도 차이가 내복 두 벌입니다. 그런데도 북쪽 방에서 남쪽 방으로 전방을 원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생소한 방에서 다시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든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게 바로 기본적인 보수성입니다. 실천은 우경적으로 해야 한다는 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두서 없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한 가지 더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대개의 인텔리 출신들은, 특히 서울대 출신들은 모든 문제를 논리적으로 접근하려 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논쟁도 무조건 논리 정합적인 방식으로 전개하려고 하지요. 자연히 논의는 논쟁적이 되기 쉽고 소모적인 사투(思鬪)로 이어지는 경향을 띠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논쟁 그 자체가 실천이 되고 마는, 다시 말해서 실천적 성과는 없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오리알에다 제 똥 묻혀서 굴러가듯 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껴안고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쿨 헤드(cool head), 즉 냉철한 이성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따뜻한 가슴(warm heart)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원로 철학자와 노 의사, 두 사람의 대담이 실려 있는 책이 있습니다. 읽은 지 오래됐는데, 책 제목이 ‘인간에 대하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거기 아주 인상적인 대화가 나와요.

 

명치유신 때까지 일본에서도 ‘가슴에 두 손을 얹고 반성하라’고 했던 걸 보면, 그때까지도 인간의 사고가 가슴에서 이뤄지는 줄 알았던가 보다는 얘기였죠. 과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사실 ‘머리에 두 손을 얹고’ 반성해야 옳은 것이겠지요. 그런데 두 사람의 결론은 ‘가슴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는 인간의 의식은 뇌피질에서 이루어지지만 의식의 토대, 즉 생각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가슴’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사고(思考)는 가슴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또 가슴이 원하는 그러한 방향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저는 논리나 냉철한 이성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따뜻한 가슴이 결정적인 것이라고 보지요. 인간적 덕성을 가지고 사람을 포용해 나가는 것은 ‘따뜻한 가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일한다는 것은 인간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대부분이지요.

 

제가 출소한 직후에 느낀 것입니다만 소위 운동권 문화를 간접적으로 접하게 되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것은 ‘저건 옛날에 내가 하던 걸 여태 하고 있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반성이었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상당히 까다로운 선배였다고 듣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부드럽게 이야기해도 될 것을 칼로 끊듯이 논리를 세워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논의까지 쉽게 사투로 넘어가는 식이었지요.

 

광복 전후에도 그런 문화가 팽배했다더군요. 콤그룹 등 당시 운동가들은 일제강점기의 엄혹한 상황에서 오랫동안 소모임으로 분산 고립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논의구조가 직선적이고, 또 구성원간의 관계도 정보에서 조금만 소외되면 굉장한 소외감을 느끼는 그런 구조였다고 합니다. 참으로 잘못된 전통입니다. 문제는 지식인운동의 일반적 경향이 이러하다는 데에 있습니다. 아주 좋지 않은 작풍이지요. 이제는 반성하고 그런 것들을 좀 버릴 때도 되지 않았나 싶어요.

 

4.19로 시작해 엉뚱한 얘기를 많이 늘어놓았군요. 우리가 4.19나 70, 80년대 민주화운동을 평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해요. 프랑스 기자의 질문과 주은래의 답변은 매우 널리 알려져 있지요. 당신은 프랑스 혁명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주은래가 그랬대요. 아직 200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평가를 하느냐고. ‘누가 프랑스혁명을 실패라고 하는가’라고 격노했던 앙드레 말로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4.19와 70, 80년대의 민주화운동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참으로 편협한 시각에 갇히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지금 이 지점에서 어떤 고민을 나누고 또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전향적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평가는 다소의 전술적 의미가 없지 않겠지만 중요한 것은 근본적 성찰입니다. 우리의 의식과 우리 사회의 구조에 대한 냉정하고 철저한 인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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