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선입견 혹은 고정관념

체 게바라 2006. 4. 21. 17:59

 

 

우리는 일반적으로 우리의 믿음은 객관적으로 검증되어야 하며, 검증되지 많은 주관적 판단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주관적 판단의 대표적인 예가 '선입견 혹은 고정관념'이다. 오래 전부터 철학자들은 선입견을 근거없는 믿음으로 정의하고 이성적 판단을 거치지 않은 고정적인 편견에 빠지지 말 것을 권고했다. 그들에 따르면 선입견을 갖는 것은 사물의 외양에 현혹되어 기존의 생각에 수동적으로 동조하는 것과 같다. 현상학의 아버지 훗설은 "전통과 권위, 기성의 이론과 사고 등에 대한 일체의 선입견을 버리고 사상(事象) 그 자체로 돌아와 문제시되는 사항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이 모든 지적 활동의 출발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과연 인간이 선입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선입견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헤겔은 <법철학>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단적으로 말해 모든 개인은 그 시대의 아들이다. 어떤 철학이 자신의 현재 세계를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치 한 개인이 자신의 시대를 뛰어 넘을 수 있으며, 고대 그리스의 잘난척 하는 육상선수가 '로도스'에 갔더니 올림픽 선수 빰치는 실력이 나오더라고 자랑하며 제가 살고 있는 땅을 욕하는 것처럼 로도스를 뛰어 넘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어렸을 때는 물론이고 성인이 되어서도 우리는 검증이나 비판과정을 거치지 않고 사람들이 전해주는 수많은 믿음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별한 비판정신없이 수동적믿음이나 습관에 따라 움직이고 생활한다. 만약 일상적인 삶 속에서 선입견을 제거하고 스스로 모든 것을 새로 정의, 비판, 결정해야 한다면 인간은 과로한 지적 노동으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선입견은 우리의 삶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렇다면 선입견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모든 선입견을 거부해야 하는가? 혹 좋은 선입견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고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선입견이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앞서 판단하다'라는 뜻이다. 즉, 선입견이란 어떤 경험적 확신이나 이론적인 추론과정없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견해에 불과하다. 선입견은 역사적, 사회적, 종교적인 맥락에서 형성되며, 개인에게 무의식적으로 침투하는 특징을 지닌다. 만약 교양있는 상류층 계급에서 태어난다면 나는 하류층민의 음악, 오락, 생활습관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마르크스는 "삶(사회. 경제관계, 사회계층)이 의식을 규정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데올로기와 마찬가지로 선입견은 한 사회의 객관적 진리로 고정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일단 정착되고 나면 그것이 오류라는 것을 알아 차리기가 매우 어렵다. 고대나 중세 때 인종편견이나 성차별이 선입견이 아닌 진리로 받아들여 졌다는 사실만 보아도 선입견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우리가 도덕적 양심이라 부르는 것도 결국 우리의 교육이 인위적으로 만든 결과물일 수 있다. 그러나 동시대를 살면서 시대정신을 비판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임에 분명하다. 선입견의 흡수력은 굉장히 강렬하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은 선입견에 대해 무비판적이고 감정적인 애착을 나타내게 마련이다. 만약 선입견을 선입견이라고 말하는 者가 있다면 오히려 그가 사회적 비난을 받고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될 위험이 있다. 가령 경상도의 전라도에 대한 지역차별과 한나라당이면 영남에서 강아지를 공천해도 당선된다는 등 우리는 많은 사례들을 알고 있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 등장하는 죄수들, 태양과 마주하길 거부하고 동굴 속에서 그림자에 매달려 사는 사람들의 어리석은 모습은 인간이 얼마나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는 존재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플라톤은 철학자의 소명은 동굴 밖으로 나가 태양을 보고 진리를 인식한 후 다시 동굴로 돌아가 편견에 사로잡힌 죄수들에게 진리를 알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행동을 감행했기에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죄명으로 사형을 당하지 않았던가? 이렇듯 선입견이란 일종의 운명처럼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선입견을 비판한다 해도 우리는 우리가 속한 사회적 환경이나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의해 어느 정도 결정된 존재들이다. 또한 교육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부인한다 해도 우리가 받은 가정교육이나 학교교육은 우리 내부에서 선입견을 형성하고 있다. 즉, 선입견은 사회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형성된다. 선입견 속에는 초개인적인 전통의 힘이 발견되는데 한 개인이 이 전통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그가 소유한 언어, 문화, 인간관계 등을 모두 포기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선입견에 의해 사물과 사람을 평가한다. 출신지역, 외모, 학벌에 대한 호기심 등은 곧 선입견으로 전환된다. 뚱뚱한 사람은 게으르게 느껴지고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은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느껴지며 잘생긴 사람은 웬지 내면마저 어름다울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좀더 객관적인 학문으로 간주되는 과학은 선입견에서 자유로울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전에 실험결과를 예측하는 것, 혹은 어떻게 될 것이라고 믿는 바를 증명하기 위해 실험이나 관찰을 하는 것은 과학의 객관성에 위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가정없이 무조건적인 관찰과 실험을 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학자도 한 시대의 아들이므로 종교적, 형이상학적 믿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 가설이라는 역사적, 사회적 선입견없이 순수한 실험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도 여러 이론을 통해 확인되었다. 뉴턴의 운동법칙,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실성의 원리가 각 과학자들이 속한 사회의 시대정신과 일치하는 것만 보아도 과학이론과 한 시대의 지배이데올로기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과학적 지식이 그 시대의 산물이라는 주장은 미국의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에 잘 나타나 있다. 쿤에 따르면 한 시대의 패러다임에 의해 결정되는 과학적 지식은 자연에 있는 객관적인 사실이라기 보다는 특정 시대의 전문집단이 공유하고 있는 지식체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요컨데 객관성을 상정한다고 여겨졌던 과학이론마저도 선입견과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특정한 패러다임의 규제를 받는다는 것은  선입견 혹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다시 한번 증명해 준다고 하겠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일상사에서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 자리잡고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 자신에게 가끔은 반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다양성을 수용하는 열린 정신이며 21세기 세계화, 다문화사회의 도래에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라 아니할 수 었기 때문이다.

 

 

*참고 도서

한국의 교양을 읽는다/김용식, 이재인, 표정훈 共著/휴머니스트 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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