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식사 후, 30여년 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소식이 끊겼던 라스베가스에서 살고 있다는 시골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름 때쯤 다시 한국에 들어오는데 꼭 만나자며 말미에 녀석이 던진 "행복하지?"라는 지나가는 듯한 질문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우리 나이 때가 되면 행복이라는 단어는 잊혀진 언어이자 체념이라는, 도저히 꺼낼 수 없는 천기누설의 의미로 다가오는 말이지 않은가.
친구가 던진 행복을 떠올리자 조계종의 큰 스님중의 한 분이었던 공림사 조실로 입적하신 탄성스님이 떠올랐다. 총무원장을 사형제였던 월주스님에게 넘기고 속리산 자락의 공림사로 내려오셔서 중창불사에 쓰일 기와 납품때문에 자주 공림사를 출입하던 1997년 초여름 오월의 어느 날이었다. 금오스님을 은사로 모셨던 스님은 참선으로 일가를 이룬 분으로 달변이 아니지만 어투가 부드럽고 온화해서 상대가 누구든 쉬이 마음을 열게하는 분이었다. 경내로 들어가자 언제나 그랬듯 스님은 빗자루를 들고 ...마당 청소를 하고 계셨다. 합장을 드리고 다가가자 내 얼굴을 보시더니 걱정이 있는 모양이라고 짐작하셨다. "스님, 어떻게 해야 마음이 편해지고 행복해 질 수 있지요?"라고 질문을 드리자 스님이 하신 답변이 화살처럼 가슴에 박혔다.
스님은 빗자루를 치우시고 의자 두 개를 가져다 오월의 따가운 햇살이 머물고 있는 소나무 아래 그늘에 놓으시며 말씀하셨다. "여기에 앉으세요. 마음의 평화와 행복이요? 그거 아주 쉬운 겁니다. 더운 날, 그늘 있고 좋은 풍경 바라보이는 곳에 의자 내놓고 앉아서 바람을 벗삼아 오래동안 산과 들과 구름을 바라보는 거지요." 스님의 말씀은 오랫동안 향기롭게 내 영혼에 머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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