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펌>일생의 목표와 운명을 생각하다

체 게바라 2014. 3. 11. 23:51

 

 

일생의 목표와 운명을 생각하다

[윤태영의 기록19-2004년 봄] 3월 12일 탄핵 이후

윤태영 전 참여정부 청와대 부속실장

“어, 저건 꿩이잖아? 꿩이 이곳에 다 오네.”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기라도 한 듯, 그는 자리에서 훌쩍 일어나 마당이 보이는 창문 앞으로 바싹 다가섰다. 탄핵안이 가결되고 나서 2주일이 지난 3월 25일 오후, 관저 응접실에서의 일이었다.
“저것 보게! 진짜 꿩이야. 어떻게 여기까지 꿩이 왔을까?”
물끄러미 꿩을 바라보던 대통령은 불현듯 생각이 난 듯 관저 부속실로 통하는 인터폰을 눌렀다.
“마당에 꿩이 왔어.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먹을거리를 만들어 놓아두면 좋겠는데.”

 

유폐 아닌 유폐, 잃어버린 봄

 

색다른 날짐승의 출현이 줄곧 담담하기만 했던 그의 표정을 일순간에 바꾸어놓았다. 그 표정 속에는 유폐 아닌 유폐, 연금 아닌 연금으로 갇혀버린 그의 안타까운 봄날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꿩이 결국 날아가 버렸는지 그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돌아와서는 다시 참모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래도 끝내 섭섭함을 떨치지 못했는지, 그는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몇 번씩이나 거듭하여 창문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곤 했다. 관저에 갇혀버린 대통령의 잃어버린 봄. 그 봄을 이루고 있는 풍경의 하나였다.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지 몇 시간 후 그는 대통령의 직무를 멈추어야 했다. 다음날, 그는 몇몇 참모들을 관저로 불렀다. 목소리는 나지막했다. 평소에 비해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격전의 선거를 치러놓고도 막상 개표가 시작될 즈음에는 태연한 모습으로 깊은 잠에 빠지곤 했던 특유의 낙천주의도 한풀 꺾인 듯싶었다. 표정은 담담했지만 왠지 모르게 어둡고 초췌한 구석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의 상념은 결코 편안하지 않은 이 정치역정이 시작되던 시절로 되돌아가 있었다.

“부산 초량동이 내 정치의 출발점이죠. 초량시장을 누비며 선거운동을 하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 상념의 끝에서 그는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방송찬조연설을 해주었던 자갈치 아줌마를 떠올려냈다. 그는 그녀에 대한 고마움, 그보다 더한 미안함을 함께 이야기했다.

“자갈치 아줌마, 정말 그렇게 애써서 해주셨는데…, 제가 이렇게 되었군요.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이날 그는 방콕에서 급거 귀국한 문재인 전 민정수석과 오찬을 함께했다. 탄핵심판 대리인단을 구성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지만, 그는 식사를 하는 도중에는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것은 문재인 전 수석도 마찬가지였다. 오찬이 끝난 후 문 수석을 배웅하는 자리에서 한 마디를 하는 것으로 그는 모든 주문을 대신했다.
“그렇게 쉬게 해주려고 해도, 결국은 쉬지 못하게 하는군요.”

 

광화문 네거리에서는 연일 '촛불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는 북악산으로 오르는 중턱에서 촛불들의 행렬을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그는 세상의 큰 흐름으로부터도 격리되어 있었다.
그는 촛불시위가 질서정연한 가운데 축제와도 같은 분위기로 진행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놀라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에 한번 읽었던 '칼의 노래'를 다시 집어 들었다. 수많은 행사와 회의, 보고와 지시로 채워져야 할 시간을 독서와 산책, 주말 등산이 대신했다. 비서실 참모들을 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는 '고건 대행 체제가 순항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줄 것'을 신신당부했다.

 

‘봄은 땅에서 솟아오르더라!’

 

3월 21일 일요일.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지 열흘 만에 그는 카메라 앞에 다시 섰다. 직무를 할 수는 없었지만 대통령의 모습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요청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는 기꺼이 촬영에 응했다. 참모들은 다양한 포즈를 주문했다 그는 귀찮아하는 기색 하나 없이 모든 포즈를 완벽히 소화해내었다.

저녁에는 탄핵심판 대리인단과 저녁을 함께했다. 자신이 변호사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의뢰인의 신분으로, 정식으로 또 정중하게 대리인단에 도움을 요청했다. 헌법재판소에 출석할 것인가의 문제는 대리인단 결정에 일임하기로 했다. 그는 그렇게 하나둘씩 자신이 결정해야 할 문제들의 가닥을 잡아나갔다. 다만 재신임 문제와 입당 문제가 나오면 그는 말을 멈추고 곤혹스러워 하곤 했다.

 

'봄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줄 알았더니, 땅에서 솟아오르더라!'
3월의 끄트머리, 어느 오찬석상에서 그는 자신을 찾아온 새봄을 이렇게 표현했다. 언제부터인지 그의 화제에는 봄과 자연, 생명, 인간과 같은 낱말들이 자주 등장했다. 또 하나의 벗인 책도 자주 거론되었다. 그는 드골을 이야기했고, 링컨을 이야기했고, 또 충무공 이순신을 이야기했다. 성공한 모델이든 실패한 모델이든 정치지도자들의 삶은 그에게 여러 가지 시사를 주고 있는 듯싶었다. 그러는 사이에 달이 바뀌고 4월이 되었다.

 

식목일 행사에 참여해달라는 비서실의 요청에 그는 기꺼이 응해주었다. 오랜만에 모습을 나타낸 대통령 내외를 향해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내외가 함께 잣나무 몇 그루를 심은 다음, 그는 그야말로 오랜만에 마이크를 잡았다. 덕담의 인사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냥 여러분 보니까 참 좋습니다.”

표정이 많이 밝아져 있었다. 특유의 멋쩍은 웃음도 되살아나고 있었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사람은 사람들 속에 섞여서 살아야 하는 법이었다. 그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입증되는 날이었다.
“현충사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정말 가보고 싶어요. 그런 훌륭한 분하고 우리 처지를 비길 바는 아니지만 사람이 왜, 그럴수록 우리가 더 감동을 받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가보고 싶은데 못 갑니다. 그러니까 이게 유폐생활이죠. 유폐생활인데, 실감이 납니다.”

시간은 더디게 흐르고 있었다. 청와대의 시계는 어쩌면 3월 12일부터 멈춰서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시 일주일이 지나 직무정지가 되고 나서 한 달째가 되던 날인 4월 11일, 그는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함께 북악산에 올랐다. 이날 그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이 봄의 화두를 던졌다. 이번 총선이 끝나면 통합과 대화의 정치가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도 했다.

 

가다가 엎어지고 또 일어서서…

 

“제 일생의 목표는 국민통합입니다.”
직무정지 기간 중 그는 이 말을 유달리 많이 했다. 그는 어쩌면 정치를 시작했던 1988년 이래 일관되게 추구해왔던 통합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마지막 고비를 넘고 있는 듯싶었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던 날 저녁, 그는 수석보좌관들과 만찬을 하며 자신의 정치역정을 잠시 회고했다.
“제 정치가 과격한가 봅니다. 이렇게 자꾸 코너에 몰리는 걸 보니…….”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그는 많은 회한이 섞인 톤으로 이야기를 이었다.
“정말, 무슨 운명이 이렇게 험하죠? 몇 걸음 가다가는 엎어지고…. 또 일어서서 몇 걸음 가는가 싶으면 다시 엎어지고….”

* 이 글은 2004년 탄핵 당시 필자가 썼던 국정일기, ‘대통령의 잃어버린 봄’을 가필·첨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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