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사람들의 감성의 혼은 대지보다는 바다에 늘 빚진다. 그들은 지평선이나 산의 능선보다는 바다에서 먼저 설레고 삶의 애환을 바다에게서 먼저 위로받는다. 너른 바다에 포로로 잡힌 듯 섬들은 운무에 가리거나 파도에 가려 바다를 떠다니다가 석양에 들면 불현듯 그 장엄한 품세를 나그네 앞으로 펼쳐보이는데 이때 삶은 몽환처럼 함께 스러지고 저무는 것이다. 그들은 나그네에게 삶이란 한낱 순간이고 거품이고 그림자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럴지니 순간이고 거품이며 그림자로 본색을 드러내는 인생이 어찌 덧없지 아니하겠는가.
석양이 이리하듯 시간의 거리낌없는 농단 앞에서 나그네 역시 속수무책이 되는 것이다. 저물어가는 하늘 끝은 보이지 않는데 나그네 인생의 황혼은 바로 눈앞의 잔파도로 너울거린다. 겨울의 바다색은 그야말로 쪽빛이다. 그대, 저 쪽빛의 본질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깊고 푸르고 사무치고, 차고 시리다. 처연해서 가슴으로 탄식이 절로 새나오는 영탄조인 것이다. 이처럼 통영의 석양색은 한 생애를 다바친 치열했던 자의 삶처럼 빛나서 스러진다. 나는 도대체 가슴을 다쳐서 통영의 석양을 감히 바라볼 수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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