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펌>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

체 게바라 2014. 1. 16. 15:05

 

 

 

2012-45. 최장집 엮음, 박상훈 옮김,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폴리테이아, 2011

 

 

정치의 계절이어서 정치서적으로서는 고전에 속하는 막스 베버의 소명(또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민변 공부모임에서 읽고 토론했다. 워낙 많은 정치가들과 정치학자들 그리고 평론가들이 인용하는 책이다.

 

소명으로서의 정치는 막스 베버가 1919128일 저녁 뮌헨 대학에서, 독일 정치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자 하는 강한 열정을 가진 진보적 학생운동 단체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강연을 같은 해 10월에 발간한 책이다. 120여 쪽에 이르는 비교적 짧은 글이다.

 

최장집 교수는 <정치철학 강의>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첫 작업으로 이 책을 출간했다. 최장집 교수가 90여 쪽에 이르는 해제를 쓰고 번역은 박상훈 씨가 했다.

 

먼저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흔히 인용되는 대목을 훑어본다.

지배를 정당화하는 내적 근거를 세 가지로 구분한다. 신성화된 관습의 권위를 통한 전통적 지배, 카리스마(비범한 개인의 천부적 자질)에 의거한 권위를 통한 카리스마적 지배, 합법성에 의거한 합법적 지배

 

정치가에게 필요한 자질 세 가지를 지적한다. 열정(Leidenschaft), 책임감((Verantwortungsgefül), 균형적 판단(Augenmaβ). 단지 열정을 갖는다는 것만으로는 그것이 제 아무리 순수한 것이라 하더라도- 정치가가 되기에 충분하지 않다. 대의에 대해 헌신하는 또 다른 형태로서 대의에 대한 책임성이 행동을 이끄는 결정적인 길잡이가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정치가가 가져야 할 매우 중요한 심리적 자질로서 균형적 판단은 내적 집중력과 평정 속에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자, 달리 말하면 사물과 사람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거리감의 상실은 그것 자체로서 어느 정치가에게나 치명적인 죄과 가운데 하나이다.”

 

국가와 정치의 권력적 속성을 인정한다. “정치는 국가들 사이에서든 국가 내 집단들 사이에서든, 권력에 관여하고자 하는 분투노력 또는 권력 배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분투노력을 뜻한다.” “정치가는 모든 폭력/강권력에 잠복해 있는 악마적 힘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구분한다.

신념윤리를 신봉하는 자들은 순수한 신념에서 나오는 행위가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 하더라도 그 책임을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세상의 책임이자 타인들의 어리석음 또는 인간을 어리석도록 창조한 신들에게 돌린다.”

책임윤리를 따르는 자는 인간이 가진 평균적 결함을 고려한다. 자기 행위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한에서는 그 결과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런 결과가 초래된 것은 나의 행위에 책임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

 

1차 세계대전에 패배한 당시 독일 정치의 작동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세 가지를 든다. 의회의 무기력함, 훈련된 전문 관료층의 득세, 이념 정당들의 존재

 

 

보통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권력의지가 강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맹목적 권력의지는 개인에게나 사회에게나 부정적 결과만을 초래할 뿐이다. 베버는 이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지적한다.

 

권력을 향한 야심은 그가 일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도구이다. 흔히 권력 본능이라고 불리는 것은 사실 정치가에게는 정상적인 자질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런 권력 추구가 전적으로 대의에 대한 헌신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성을 결여한 순전히 개인적인 자기도취를 목표로 하는 순간, 정치가라는 그의 직업이 갖는 신성한 정신에 대한 죄악이 시작된다.”

권력의지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의와 책임감과 균형감각으로 보정되고 뒷받침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권력의지를 지나치게 앞세우는 태도에는 수긍하지 힘들다.

 

베버의 원작을 번역할 때 그 동안에는 대부분 직업으로서의 정치로 번역해 왔는데, 이 책은 소명으로서의 정치로 번역했다. 독일어 ‘Beruf’직업이라는 뜻과 소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영어 번역판도 직업과 소명(Profession and Vocation)’이라고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 책에서도 맥락에 따라서는 직업으로 번역한 곳도 있다. 다만 베버는 단순한 직업정치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소명의식을 가진 직업정치가를 말하기 때문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소명이라고 하는 것이 낫다고 밝힌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 과거와는 다른 직업정치인의 등장과 역할과 자세 등에 대해 논하는 것이어서 일반적인 용례에 따라 직업이란 말을 사용하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지 않을까?

 

다른 직업 종사자가 직업정치인이 되는 것에 대해 이런저런 평가를 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프랑스 대혁명 이래 근대적 변호사와 민주주의는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미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정치인 중에 변호사들이 많다. 변호사와 정치인의 관계는?

저널리스트에 대해서는 당시 독일에서 저널리스트로서 경력을 쌓는 것은 정치 리더십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정상적인 경로는 아니라면서도 직업정치가의 한 유형으로서 저널리스트들이 이미 상당히 오랜 전통을 가졌다고 평가한다.

관료는 분노도 편견도 없이 그 직무를 수행해야 하며, 본래적 사명에 비춰볼 때 정치를 해서는 안 되고 단지 비당파적 자세로 행정만 해야 한다고 한다.

 

베버가 이 연설을 하면서 10년 후를 다음과 같이 예측했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그 때는 이미 반동의 시대에 접어들었을 거라는 두려운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나치즘이 정권을 장악한 것은 1933년이니 베버의 예측은 정확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나를 좌절시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를 안다는 것은 심적으로도 힘든 일이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베버는 정치란 열정과 균형적 판단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구멍 뚫는 작업이다. 만약 이 세상에서 불가능한 것을 이루고자 몇 번이고 되풀이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아마 가능한 것마저도 성취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젊은 청중들을 격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