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니쿠스는 혁명적이었는가? 물론이다. 그의 천문이론은 후대의 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쳐 결국에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이론으로 발전하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혁명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종교적 권위에 의해 핍박당한 자유로운 영혼의 과학자로 간주하기에 그는 너무나 ‘교회적(canonical)’이었다. 그가 혁명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 출발점은 현재는 부인되는 옛 이론의 잔재였다. 모든 과학은 기존의 이론에서 차근차근 발전해 나간다. 혁명적이었던 코페르니쿠스의 경우조차 예외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사안에 대해서 기존의 인식을 180도로 대체할 만한 생각에 대하여 '코페르니쿠스的'이라는 형용사를 붙인다.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한 코페르니쿠스처럼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쳔여년의 천동설을 확 뒤엎는 발상의 전환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헌데 코페르니쿠스에 관한 백과사전적 짧은 일대기를 보면 교회 행정관을 지낸 그는 당대의 천문학에 대한 이해와 활용에서 전형적이고 표준적인 천문학자였다. 그랬던 그가 이런 이런 혁명적인 이론을 제시할 수 있었을까?
해답의 실마리는 <과학혁명의 구조>의 저자인 토마스 쿤의 생각에서 찾을 수 있다. 쿤은 과학연구에 핵심적인 능력을 ‘수렴적’ 사고와 ‘발산적’ 사고로 정리했다. 수렴적 사고란 이미 성공적으로 풀린 문제를 본받아 유사한 방식으로 새로운 문제를 푸는 것이다. 발산적 사고란 코페르니쿠스가 지구와 태양의 위치를 바꾼 것처럼 기존의 연구틀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직관적으로는 코페르니쿠스처럼 과학이론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려면 참신하고 과감한 발산적 사고만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코페르니쿠스는 기존 이론을 아무리 잘 변형해도 천문 현상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당대 천문학에 통달했다. 특히 그를 괴롭힌 점은 기존 천문학이 천체의 운동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천체가 위치에 따라 다른 속도로 원운동한다고 가정해야 했다는 것이었다. 이는 에테르로 이루어진 천체의 완전한 본성과 어긋나는 것처럼 보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코페르니쿠스는 태양과 지구의 위치를 바꿔 생각하는 과감한 시도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코페르니쿠스의 발산적 사고의 배경에는 기존 이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좋은 과학 이론이 무엇인지에 대한 독특한 생각이 함께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코페르니쿠스적 사고의 전환이라고 지칭하는 것들을 대하면 대단하다는 생각에 앞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박근혜씨의 '창조경제'가 있다. 그녀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이 용어에 대해 기존의 전후좌우를 바꾸어놓을 만한 완전히 혁명적인 새로운 발상이라고 찬사와 찬양의 목소리를 높힌다. 그녀는 이 이론(실은 말장난이지 무슨 이론이 있겠는가?)의 성공 사례로 스티브 잡스나 싸이를 인용하기도 하고, 정주영 회장이 거북선이 새겨져 있는 100원짜리 동전으로 영국의 투자은행 관계자를 설득시킨 일화를 들기도 한다. 헌데 세상의 비밀은 퍼다 쓰기만 하면 될 정도로 누군가 이미 죄다 밝혀 놓았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그저 검색과 인용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는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많지 않은 시대가 된 지금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사후에 지동설에 관한 이론이 발표되도록 조처해놓았다. 세상의 중심인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가 돈다는 천동설을 부정하면 마녀로 몰려 화형 당하거나 미친놈 취급에 맞설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사후에도 지동설은 천동설을 완전히 밀어내지 못했고, 후에 뉴턴이 등장해서야 비로소 정설로 자리잡게 되었다. 뉴턴이 친절하게 설명해준 만유인력의 법칙, 특히 언제나 일정한 방향으로 쏠리게 만드는 중력의 존재는 사람들에게 훨씬 호소력 있게 들렸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중력은 무엇일까? 이성의 힘을 견인하는 영혼일까? 따뜻한 피가 펄펄 솟아나는 심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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