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아비, 막 태어난 핏덩이에게도 군포를 물리는 사회라면 순전히 아이를 태어나게 한 자신의 거시기 탓이라고, 거세의 자책을 한 지아비의 애절양가를 생각하면서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을 신뢰하며 이러한 사회야 말로 인간의 이성과 지성이 살아 숨 쉬고 인간의 보편적 삶의 계율이 물처럼 흐르는 사회라고 믿는다. 정의는 인간 세상의 보편적 진리이며 언제나 불편부당한 것들에게 철퇴를 가하는 우리 공동체 삶의 물적, 정신적 토대라고, 공동체를 위한 배려와 헌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이타심은 이미 폭넓게 인식된 우리의 사회적 약속이며, 희귀한 천재성은 매춘과 같은 게 아니라고, 미덕은 가면이 아니며, 자유는 단지 허울 좋은 이름이 아니라 우리의 삶속에 뿌리내린 덕목이고, 사랑이란 인간의 심장에 자리 잡고 있다고 배웠고 나는 이를 당연한 듯 믿었다.
허나 내 사전에서 이런 단어들이 싹 지워진다고 해서 이제는 그다지 아쉬울 것 같지 않다. 아니, 이런 말들을 전혀 들어본 바가 없다고 해도 전혀 아쉬울 것이 없을 것이다. 이제 그 단어들은 내 귀에 들리는 환청이나 엉터리 말장난이 되어 버렸다. 사적 사회, 정치적 영역에서 이기심, 위선, 비열함, 악의, 비겁함, 몰이해, 무시, 무관심, 어리석음, 노예근성, 뻔뻔스러움이 성공하는 광경을 목도한다. 정의를 포함한 공동체의 미덕은 참혹하게도 발아래 짓밟혔다. 이명박의 광기어린 5년에 이어 전임의 괴물 시대와 손톱만큼도 달라지지 않은, 아니 더욱 혹독하고 부조리하여 숨 막혀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사회, 그러면서도 입만 열면 국가와 국민을 들먹이면서 국민과는 일점의 인연도 없는 비열한 인간들이 권력과 정치를 주도하는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는 다산 정약용이 절규했던 애절양가를 부르는 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참으로 답답한 나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