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이 시작되는 휴일, 날씨는 따듯했고 바람이 불었습니다. 10시, 마눌과 노인요양병원에 입원하신 안성으로 장모님을 뵈러 갑니다. 여든 둘, 기억이 하나 둘 사라지는 자신의 증세를 완강히 인정하지 않는 자존감이 여전하시어 저를 보자마자 집으로 가자고 보채십니다. 문득 김훈의 문장이 생각났습니다.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린다."
"매화는 질 때, 꽃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 개 한 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한다. 매화는 바람에 불려가서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정말 매화나 벚꽃이 떨어질 때 보면 꽃눈이 내리는 것 같습니다. 저것들이 다 떨어지면 어떻게하나 싶어서 가슴이 아플 정도지요. 그래서 김훈은 꽃잎이 가지에서 떨어져서 땅에 닿는 동안, 바람에 흩날리는 잠시 동안이 매화의 절정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는 내 가슴을 멎게 한 단어. 매화의 죽음을 풍장(風葬)이라고 씁니다.
아,아!
풍장(風葬)!!
바람 속에서 죽어간다는 것이죠.
장모님을 오후 예배에 휠체어로 모셔다 드리고 병원을 떠나며 이 풍장때문에, 바람 속에서 죽어간다는 매화와 벛꽃이 생각나 돌아오는 차안에서 한참을 가슴으로 울었습니다. ㅜ.ㅜ..
(황동규 <풍장 1> 전문>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白金)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다오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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