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제주도의 깊은 밤

체 게바라 2013. 3. 26. 00:09

 

 

 

 

 

열정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내게 있어 열정이란 태양빛 자글자글한 여름철의 한낮이 지나고 그 볕들이 치열하게 머물다 지나간 흔적이 여전한 석양의 노을같은 것이라 정의된다. 노을이 지면 어둠일터이지만 나는 이를 열정의 소멸이라 말하고 싶지 않다. 마치 봄의 향연을 앞에 두고 시나브로 멀어져가는 뒷모습의 겨울이기에 보여지지 않는다고 형이상학의 겨울을 차거운 이성이라고 예단하여 열정에서 밀어내지는 않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 제주의 하늘은 온통 흐렸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내가 천착하는 주제를 바라보고자 충주에 거주하는 시골 친구들과 떠났던 제주도 여행은 말하자면 내 사유와 주제를 나에게서 분리시켜 철저히 가치중립적인 관점으로 대상을 바라보고자 기획했다는 말이겠다.


 

 

 

그러니 이것은 내가 바라던 휴가는 아니었다 제주도는 몇 년사이에 자본과 마켓팅의 논리가 주도하는 소위 돈되고 사람 모으는 것에 열광하고 있었다. 게다가 제주도 특유의 인문정신인 민간 설화와 전설 역시 돈과 광고라는 자본논리에 매몰되어 있었다. 피할 수 없는 자본의 역습이자 영토 확장의 본성을 인문이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 것이다.

 

 

 

 

 

 

갈매기들 역시 생존논리로 뭍의 여행객들에서 손쉽게 획득할 수 있는 먹이에 익숙해진 것일까? 방송에선 유람선을 맴도는 갈매기들도 자기들 회사 소속 직원들이라고 진반농반의 멘트를 내보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남지나海를 가로 질러 북상한 봄바람은 제주도를 거의 점령하고 있었다. 곧 이 봄의 주력군은 남해에 상륙하여 쏜살같이 내륙으로 올라갈 것이다. 제주海의 봄을 띄워 보낸다.

 

 

 

                 

 

 

 

봄의 제주를 여행하며 매서운 봄바람을 탓하는 것은 여행객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바람을 맞을 각오없이 제주를 찾는 일은 봄을 맞이하지 않겠다는 천리를 거스르는 짓에 다름아니라는듯 따뜻한 봄을 예견한 자의 입성을 비웃으며 바다를 가로지른 찬바람은 여지없이 온몸을 파고든다. 그러나 이 매서운 바람속에 깃든 충만한 봄기운을 왜 나인들 모르겠는가?

 

 

서귀포 지식인 사회에서 서귀포 시민들과  강정마을 주민들이 강정마을 바라보는 관점은 정확히 둘로 나뉘고 있었고, 뭍에서 벌어졌던 대부분의 정부주도 개발정책이 그랬듯 반대 논리의 주류 역시 결국은 피할 수 없는 해군 기지 개발논리에 승복할 수밖에 없다는 열패감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자신들이 획득할 수 있는 최대의 보상금과 개발 이후에 따르는 부가이득에 더 관심에 많은 것이 현실이었고, 오직 토박이 제주의 환경 행동가들과 뭍에서 건너온 선의의 자발적 반대 투쟁가들의 저항논리만이 힘겹게 강정해군기지 반대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정부와 제주도와 해군기지 찬성파들은 슬그머니 강정해군기지의 명칭마저 '제주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공사'라는 카피로 바꾸어 부르고 있었고, 그 중에서도 '관광미항'이라는 단어만이 만장이 나부끼는 마을 인근에서 외로이 우뚝했다.  

 

  

 

 

우도의 나즈막한 언덕에 올라 층층 단애의 바다 절벽을 마주한다. 오늘 일정을 끝으로 친구들과의 삼일 밤낮의 여정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커피를 좋아하는 경구와 희두를 꾀어 우도 선착장의 까페로 들어섰다. 알싸한 에스프레소 더블 샷 3잔을 주문하고 쓰다는 녀석들에게 짧은 커피 강의를 마치고 뭍에서 이주한 젊은 부부 주인장이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추출한 커피를 입에 털어 넣는다. 오죽하면 에스프레소 커피를 일컬어 위스키 건배를 지칭하는 원샷!이라고 하겠는가. 진한 커피향이 목구멍을 거쳐 후두를 타고 올라온다. 제주도를 떠나면서 나는 우도의 커피향을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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