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선의 교훈과 향후 전망(4)
-진짜 패인에 대한 오래된 생각-
대선 평가에서 최고, 최대의 관심사는 핵심 패인이다. 이는 문책의 방향이자, 19대 대선—헌법이 개정되지 않는다면—전략의 요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수많은 장단기, 주∙부차 요인들이 얽히고 설킨 선거전에서 결정적인 패인 내지 승인을 집어 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추론(가설)을 검증하는 실험이 어려워서, 증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핵심 패인 도출은 결국 다양한 정황 증거나 논리적 사고, 곧 상식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상식도 사람마다 다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평가를 할 때 유의할 점이 몇 개 있다.
그것은 첫째, ‘망치를 들고 있으면 모든 것이 못의 문제’로만 보인다고, 사람은 아무래도 자신이 중시하는 가치의 영향을 과대평가하기 마련이다. 사상가는 사상에서, 전략가는 전략에서, 정책, 조직, 홍보 전문가는 각기 자기 전문 분야에서 핵심 문제를 찾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둘째, 등산을 해 본 사람이면 다 알듯이, 계곡에 있으면 산의 모습이 시야에 안 들어오지만, 산 정상이나 능선 혹은 어떤 언덕에 서면 산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자기 자신의 위치(시야)에 따라 선거판과 핵심 패인이 달라 보이는 만큼, 자신의 경험적(지적, 인맥적) 한계나 편향성(당파성)까지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셋째, 사용하는 개념의 상이성이다. 대표적인 것이 ‘진보’라는 개념이다. 단적으로 진보성 강화를 줄기차게 주장하는 사람의 머리 속에 있는 진보는 시장근본주의, 경쟁지상주의, 개방만능주의, 반북대결주의에 저항하는 주의•주장의 총체다. 한마디로 사람 중심주의고, 선이고, 정의다. 하지만 진보에 대한 일반 통념은 사회주의 혹은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노조(민노총, 전교조) 등 거리시위를 밥 먹듯 하는 시민사회단체의 주의주장을 추종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민주통합당의 진로와 19대 대선 전략을 놓고, 진보(좌클릭)-중도(우클릭) 논쟁을 벌이는 것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 모든 유의 사항으로부터 나 역시 자유롭지 않다. 가설 검증의 어려움과 자신의 편향성과 언어(개념)의 모호성이 있는 만큼, 자신의 평가를 너무 절대시 하지 말고, 남의 평가를 너무 폄하 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Swing Voter(부동층)의 시각
선거 승패는 국민 다수의 시각, 특히 swing voter(부동층)와 투표장에 나갈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들의 시각이나 심리를 꿰고 있어야 비교적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나는 대체로 swing voter의 시각이나 심리는 비교적 접할 기회를 많이 가졌다. ‘한386의 사상혁명(2004년)‘과 ‘진보와 보수를 넘어(2007년)’ 등 경계인 내지 중도성향을 강하게 풍기는 제목의 책을 쓴 나는, 정치판을 분석 할 때 최대한 경계인의 시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해 왔다. 하지만 투표하러 갈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들을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아무래도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 비교적 많이 배운 사람들의 숲 속에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것은 내 한계이다. 하지만 진보-보수를 균형적으로 보아온 시각은 강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정적 패인은 진보의 후진 생각! 이런 지적 편향성 내지 한계를 가진 나에게 선명하게 보이는 핵심 패인은 진보의 후진 생각이다. 진화가 덜 된(시대착오에 번지수 착오적인) 철학, 가치 내지 사상이념이다. 이 이면에는 잘못된 현실 인식과 모순부조리(주된 대립물) 인식이 존재한다. 한마디로 진보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구체적 현실(시장, 산업, 기업, 노동, 경제활동인구, 비 경제활동인구, 정치 등)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자기 자신이 객관적으로 뭐 하는 존재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너무 막연하고 추상적인가? 이 얘기를 풀어 쓴, ‘한 386의 사상혁명’ ‘2013년 이후’ 등 여러 권의 책도 있지만, 이번 대선전을 매개로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할 것이다.
그 전에 지금 피력하는 이 생각은 참여정부 초기부터 일관된, 최소 10년은 된, 그야말로 오래된 생각이라는 것만은 밝혀둔다. 그래서 나에게는 열린우리당이 사분오열 지리멸렬해서 사라진 원인과 참여정부가 실패, 좌절한 원인과 2007~8년 총∙대선에서 참패한 원인과 2012년 총∙대선에서 석패한 원인이 완전히 동일하다. 좀 더 확장하면 북한이 저 따위가 된 이유도, 소련이 망한 이유도 동일하다. 나는 이런 문제의식이 있어서 사회디자인연구소를 만들고, 여태까지 운영해 왔다. 어쨌든 결과론적인 평가는 아니다. 물론 인간사는 사람의 생각에 의해 창조되지 않은 것이 거의 없기에, 후진 생각 혹은 좋은 생각은 모든 사건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마나 한 평가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지목하는, 지난 10년간 한국 진보에게 뼈아픈 실패와 좌절을 안겨준 ‘후진 생각’은 전적으로 정치적 생각, 즉 사상이념이다.
진화가 덜 된 진보의 후진 생각은 18대 대선전에서는 근거 없는 낙관 심리와 부적절한 선거 전략으로 나타났다. 선거전략의 중심은 선-악, 정의-불의, 도덕(항일, 민주, 피해자)-부도덕(친일, 독재, 가해자), 평화개혁-냉전수구, 진보-보수의 대결이라는 선거 프레임이었다. 거기다가 영남(PK) 후보 전략과 20~30대 동원(투표율 제고)전략을 덧붙였다. 선거 전략의 중심인 선-악 프레임은 진보의 전통적인 역사 인식과 현실 인식이 집약된 것이다. 이 프레임은 진보=도덕(?) 진영에는 분노, 증오를 증폭시키고, 투표, 필승 의지를 북돋았고, 승리를 낙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보수=부도덕(?) 진영에는 그 만큼의 공포, 혐오를 증폭시키고, 역시 투표, 필승(저지) 의지를 북돋았다. 그런데 도덕성에 관해서는 아무래도 보수가 진보에게 좀 밀리기에, 박근혜는 국정운영 능력과 안정감을 더욱 앞세웠다. 동시에 유권자들의 이익(이해와 요구), 한마디로 ‘국민행복’을 앞세웠다. 물론 선-악, 정의-불의, 도덕-부도덕 프레임이 객관적 사실이나 진실에 근거하면 swing voter가 당연히 도덕 진영으로 쏠리지만, 그렇지 않으면 반대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실제 결과는 후자였다.
수십 년 동안 진보의 머리 속에 똬리를 튼 역사현실 인식은 이정희의 TV토론 태도와 그에 대한 진보 일각의 반응--통쾌하다. 시원하다--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다. 이정희의 토론 태도는 이번 대선 전을 국민의 이익이나 행복을 위해,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선택 가능한 정치집단의 경쟁(둘 다 선)으로 보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선(소악)과 악(거악), 정의와 불의, 도덕과 부도덕, 개혁평화와 수구냉전, 민주와 독재, 99% 서민과 1% 부자(특권, 귀족), 정통과 이단의 대결로 바라보았기에 벌어진 현상이다. 일부 구 좌파들은 노동과 자본(PD파), 식민지 해방운동과 미일제국주의(NL파)의 대결로 보기도 하였지만, 찻잔의 태풍이었다.
요컨대 진보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정치 지형(MB정부 심판, 정권 교체 민심이 들끓는 상황)에서 총선과 대선을 잇따라 망친 핵심 이유는 정치를 선-악, 정의-불의, 도덕-부도덕이 명확하게 갈리는 민족독립운동과 반독재(유신) 민주화 운동의 연장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김두관은 이번 대선전에 엄청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면서--문재인, 손학규의 한계는 보고, 자신의 한계는 보지 않았기에--천신만고 끝에 차지한 경남지사직을, 적지 않은 지인들이 한사코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과감히 뿌리치고 나와 대선 경쟁에 나섰다. 독립운동 하러 만주로 떠나는 독립 지사들처럼, 왜군을 막으러 탄금대에 배수진을 친 신립장군처럼, 5천 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벌로 나아가던 계백장군처럼 비장했다.
이런 정서와 전략적 판단은 김두관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다. 평소 현실 정치를 하고 싶어하지 않은 문재인을 설득하여 끌어낸 사람들도, 문재인이 끝내 설득 당한 이유도, 정치를 민족독립운동과 반 유신민주화운동의 연장선에서 바라 본다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4.11총선 당시의 ‘민간인 사찰’ 자료나 이번 대선의 ‘국정원의 선거개입(국정원 댓글녀)’ 같은 독재의 증거 찾기에 혈안이 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솥뚜껑도 아닌 냄비 뚜껑을 가지고 ‘자라’라고 우기는 식의 오버를 한 핵심 이유다.
독립운동, 민주화운동 마인드로 정치와 세상을 바라보니 경륜과 컨텐츠는 경시되기 마련이다. 별로 쓸모도 없고, 이기고 나서 고민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동원력을 담보하는 명망가와 조직 동원력이 뛰어난 좌파와의 연대는 중시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하면, 선과 악, 평화개혁과 냉전수구 세력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닥치고 동원’이 필요하다. 친북, 종북 성향이 역력한 좌파 명망가들과 원탁회의를 결성한 것도, 야권연대를 위해 민주노동당 및 친북좌파 단체에 정책적으로 경도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젊은 층의 로망인 강남좌파나 패션좌파(비싼 외제차에 체게바라 티셔츠)가 우대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과 악의 전쟁이라는 프레임으로 현실과 정치를 바라보면, ‘국민이 악의 손을 들어줄 리 없다’며 승리를 낙관하게 된다. 당연히 패배 후 집단적 멘붕 상태가 된다. 거악과 맞서 싸워야 하는 우리 측(선 진영 내지 소악)의 허물과 과오에 대해서도 관대하게 된다. 이를 비판하면 뒤통수에 다가 총을 쏘는 이적행위로 간주하게 된다. 반대 진영이나 swing voter들에게는 뻔히 보이는 진보가 만든 짙은 그늘은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안다 하더라도 일단 승리를 위해서 묻어두게 된다. 또한 선=진보 진영이 아무리 부족해도 단일후보가 되기만 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후보의 자질, 매력, 정책, 당의 부실한 준비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전략의 핵심은 대동단결, 연대, 연합, 통합, 단일화가 된다. 이러니 진보가 얄팍해 보이고, 부박해보이고, 불안해 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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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을 거치면서 독립운동, 민주화 운동 색채가 점차 탈색되어 나가던 진보 정치판이 과거로 원상 복구(?) 내지 퇴행해 버린 것은 MB의 거친 통치 스타일(2009년 노무현의 억울한 죽음과 극도의 남북관계 경색) 및 박근혜의 독특한 이력이 중요한 계기였다는 것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이명박근혜가 아니라, 자기 성찰과 객관화의 부족에 있다. 즉 진보의 오만과 착각의 뿌리에는 진보가 상당한 책임이 있고, 자신들이 견지하고 있는 철학, 가치, 현실인식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는 짙은 그늘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즉, 20세기 초 중반의 진보/민족 가치를 나름대로 구현한 북한과 1987년의 그늘(힘센 이익집단의 권리, 이익의 과잉 확장의 패악)과 2002년의 그늘(참여정부의 정책적 실패)과 4.11총선을 전후한 민주통합당의 그늘을 객관적으로, swing voter의 눈으로, 국민의 눈으로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 중에 하나가 진보가 대기업(노조), 공공부문, 학위나 독점적 자격증 등 튼튼한 보호장벽을 가진, 경제활동인구의 20% 가량인 성안 사람의 이해와 요구만 집중적으로 대변하는 자신의 반 서민, 반노동적 면모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80% 성밖 사람들의 눈으로 정치와 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혁신하라 한국경제’의 저자 박창기는 진보의 철학, 가치를 20세 이상 인구의 10%가량인 G3(이권추종집단) 그룹의 이해와 요구를 주로 대변하는 존재로 본다) 국민 다수의 눈, 하다 못해 진보와 보수를 왔다갔다 하는 ‘Swing Voter’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 진보의 뿌리 깊은 악습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2012년 대선 결과는 한 시대, 한 사조의 무덤인지도 모른다. 철 지난 히트곡으로 대중을 다시 한번 감동시키려 한 왕년의 가수왕의 몰락이라는 점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린 상황에서 정치에 대한 국민적, 시대적 요구의 핵심은 경륜(유능)과 변화(개혁)와 안정이다. 유능 vs 무능 프레임이 첫째고, 변화=개혁 vs 수구=보수 혹은 안정 프레임이 둘째다. 따지고 보면 김대중, 이명박, 박근혜는 유능(준비된 대통령, 일 잘하는 대통령)을 앞에 놓았고, 김영삼, 노무현은 변화, 개혁, 새로움을 앞에 놓았다. 실은 박근혜의 간판 슬로건인 ‘(준비된) 여성대통령’이라는 구호도 새로움을 상징한다. 안철수도 ‘새로움과 변화’을 내세워 시대적 요구를 받아 안는 듯했지만, 9.19출마선언 이후 한달 간의 행보를 통해, 대통령에 대한 가장 중심적인 시대적 요구인 ‘유능한((준비된) 대통령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드러나면서--정치적 초보, 정책적 깡통--, 결국 후보를 사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번 총선과 대선을 유능(준비된 대통령, 준비된 의원) vs 무능 프레임으로 가져갔다면, 진보는 경륜과 컨텐츠(국가 비전, 국정운영 노하우 등)를 중시했을 것이다. 예컨대 문재인은 시험, 스펙, 취직, 결혼, 육아, 교육, 주거 등 일반 서민의 삶의 고통과 완전히 유리된 삶을 살았던 박근혜의 약점을 집중 부각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변화=신한국 vs 안정=보수 프레임으로 가져갔다면, 진보는 새로운 인물, 담대한 비전, 숙성된 컨텐츠, 국정운영의 안정감을 중시했을 것이다.
그런데 총선과 대선을 도덕(소악) vs 부도덕(거악) 프레임으로 가져 갔으니, 혁신은 어디론가 처박아 버리고, 거악을 물리치기 위한 연대, 연합, 통합, 단일화만 고창하였다. 이런 발상에서 나온 간판 인물이 문재인, 이정희 후보고, 한명숙대표고, 김용민 후보다. 이 결과가 진보의 대선 패배이다. 그것도 다시 오기 힘든 좋은 정치지형에서!! 그런 점에서 19대 대선 승리의 비결은 명백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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