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작은 별 아래서

체 게바라 2012. 5. 6. 22:43

 

 

                                                  작은 별 아래서

우연이여, 너를 필연이라 명명한 데 대해 사과하노라.
필연이여, 혹시라도 내가 뭔가를 혼동했다면, 사과하노라.
행운이여, 내가 그대를 당연한 권리처럼 받아들여도, 너무 노여워 말라.
... 고인들이여, 내 기억 속에서 당신들의 존재가 점차 희미해진대도, 너그러이 이해해 달라.
시간이여, 매 순간 세상의 수많은 사물들을 보지 못하고 지나친 데 대해 뉘우치노라.

지나간 옛사랑이여, 새로운 사랑을 첫사랑으로 착각한 점 뉘우치노라.
먼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이여, 태연하게 집으로 꽃을 사 들고 가는 나를 부디 용서하라.
벌어진 상처여, 손가락으로 쑤셔서 고통을 확인하는 나를 제발 용서하라.
지옥의 변방에서 비명을 지르는 이들이여, 이렇게 한가하게 미뉴에트 CD나 듣고 있어 정말 미안하구나.

기차역에서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이여, 새벽 다섯 시에 곤히 잠들어 있어 참으로 미안하구나.
막다른 골목까지 추격당한 희망이여, 제발 눈감아 다오. 때때로 웃음을 터뜨리는 나를.
사막이여, 제발 눈감아 다오. 한 방울의 물을 얻기 위해 수고스럽게 달려가지 않는 나를.
그리고 그대, 아주 오래 전부터 똑같은 새장에 갇혀 있는 한 마리 독수리여,
언제나 미동도 없이 한결같이 한 곳만 바라보고 있으니,
비록 그대가 박제로 만든 새라 해도 내 죄를 사하여 주오.

미안하구나, 잘려진 나무여. 탁자의 네 귀퉁이를 받들고 있는 다리에 대해.
미안하구나, 위대한 질문이여. 초라한 답변에 대해.
진실이여, 나를 주의 깊게 주목하지는 마라.
위엄이여, 내게 관대한 아량을 베풀어 달라.
존재의 비밀이여, 네 옷자락에서 빠져나온 실밥을 잡아 뜯은 걸 이해해 달라.
영혼이여, 내 너를 자주 잊었더라도 기분 나빠 말라.

모든 사물들이여, 용서하라. 내가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없음을.
모든 사람들이여, 용서하라. 내가 각각의 모든 남자와 모든 여자가 될 수 없음을.
내가 살아 있는 한, 그 무엇도 나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느니.

왜냐하면 내가 갈 길을 나 스스로 가로막고 서 있기에.
언어여, 제발 내 의도를 나쁘게 말하지 말아 다오.
한껏 심각하고 난해한 단어들을 빌려 와서는
가볍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써 가며 열심히 짜 맞추고 있는 나를.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노벨문학상 수상, 헝가리 할머니 시인)-


*오늘의 뒷담화 : 연산홍이 지고, 수국도 지면 봄은 다 간 것이고, 가는 봄과 함께 우리들 감성도 사라질테니, 감성을 잃는다는 것은 아마도 고층빌딩의 꼭대기층 스카이 라운지에서 애인을 기다리는 동안 저 아래 한강변을 달리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바라보면서 흥분되고 애틋하고 따뜻한 감정에 젖는 시간을 잃어버린다는 말이 되는 것이리라. 잘가거라 2012년의 봄이여.

 

 

 

 

 

'스토리1'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펌>동료애, 가족애로 뭉친 동물들  (0) 2012.05.09
다른 관점  (0) 2012.05.08
봄산은 꿈결 같았습니다  (0) 2012.05.05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송경동   (0) 2012.05.04
어느 대목장(大木匠)  (0) 2012.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