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마르크스 다시 보기

체 게바라 2010. 11. 19. 22:02

 

왜 다시 ‘마르크스’이고 <자본론>인가

 

1980년대 이후 30년 가까이 전 세계를 풍미한 신자유주의는 ‘종언’은 아닐지라도 커다란 한계를 드러낸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금융 위기가 시작된 이후 잇따른 은행·기업 국유화, ‘큰 정부’의 부활은 이제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본주의 체제 밖의 해법을 일부 받아들이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패니치 교수는 오늘날의 경제지도자들을 향해 “마르크스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마르크스주의의 일부분을 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마르크스는 금융의 사회화나 새로운 급진적 변화를 통하지 않고는 현재의 금융시장이 불모지로 변해버릴지 모른다고 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국은행에 근무했던 런던경제대학 윌리암 부이터 경제학 교수는 “금융기관들이 공익기업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은행은 공적인 업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공적인 중앙은행이 앞서서 위기를 헤쳐나가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논거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무너지는 은행들을 구하기 위해 지난해 9월 말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안을 내놓았다. ‘보이지 않는 손’에만 의지해 일어서기에는 ‘시장’이 너무나 취약했기 때문이다.

 

“몇 해 동안 우리는 자본주의의 또 다른 지류를 찾으려고 시도했지만 은행의 붕괴를 목격하면서 우리가 잘못된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됐다.” 중국의 한더치앙 교수는 <자본론>의 인기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시이 가즈오 일본 공산당 위원장은 마르크스가 주목받는 현상에 대해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감이 익으면 나무에서 떨어지듯 자본주의는 망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에서 공산당과 <자본론>이 인기를 끄는 데 대해선 시각이 엇갈린다. 도쿄 소피아대학의 정치학 교수 나카노 고이치는 “공산당이 견제와 균형의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한 반면, 일본대학의 토모카이 정치학 교수는 “공산당에 대한 최근의 대중적 관심은 반짝 인기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와 자본론의 인기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 환상의 끝을 목격한 사람들은 앞으로 상당 기간 마르크스의 말과 글 속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구원’의 요소를 찾아내려 애쓰는 작업을 할 것 같다. 패니치 교수의 말대로 마르크스는 ‘이상주의자’가 아닌 진정한 ‘현실주의자’였는지도 모른다.

 

카를 마르크스는 현대 자본주의 발전은 소득의 공정한 분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할 것이라고 우울한 예언을 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부는 늘어나도 혜택은 다수가 아닌 소수에게 돌아간다. 이런 불평등은 폭동과 혁명을 불러 새롭고 더 나은, 더 공정한 시스템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마르크스의 주장 이래로 주류 경제학자들은 그의 이론이 왜 틀리는지 설명해왔다. 물론 산업혁명 초기는 불평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일시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경제학자들은 농경사회와 산업사회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첫째, 부를 생산하는 게 땅처럼 고정되지 않고 다양하다. 숙련된 노동자와 엔지니어, 기업가의 경험, 기계와 공장 등은 늘릴 수 있는 것들이다. 숙련공과 기술자를 좀더 교육하고 기계와 공장에 투자를 더하면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포지티브 섬’ 게임이다.

 

둘째로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시장의 균형을 맞춰준다. 정부는 교육하고 투자하고 공급을 늘린다. 부유한 사람에게서 세금을 거둬 이익을 재분배하는 사회적 보장을 제공한다. 노벨상 수상자인 사이먼 쿠즈네츠는 산업화 초기에 불평등이 급격히 증가하다가 민주주의의 수준에 맞춰 불평등이 감소한다고 주장했다. ‘쿠즈네츠 곡선’에 대한 신뢰는 지난 세대 빛이 바랬다. 사회민주적인 정부들은 부의 재분배를 요구하는 사람들에 대해 경제성장에 많은 비용이 요구된다며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대중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위해 투자하는 데 대해 유권자를 납득시키지도 못했다.

 

사적인 영역에서 사람에 대한 더 많은 투자가 많은 이익을 주는 것은 아니다. 미국 본토 출신 백인 남성의 경우는 공부를 더 하지 않아도 이전 세대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사회민주적 정부들은 소득분배와 경제 운영을 위한 새롭고 다른 도구에 대한 탐구라는 마르크스의 주장이 장기적으로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최근 세계의 대형 은행들이 이익은 독점하고 손실은 사회에 떠넘기는 재능을 가졌다고 비판했다. 그는 은행들이 (당해도 싼) 문제에 봉착했을 때 공공 관료들이 구해주는데 실패했다며 그들 스스로 정당화시킨 분노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대형 금융기관들이 촉발시킨 갈등은 다른 어떤 산업보다 조정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울프는 시장경제 자체의 정치적 정당성을 파괴할 허약한 금융 시스템의 결합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울프의 해법은 은행가들이 10여년간 그들이 해온 일에 따라 월급을 ‘할부’로 받는 것이다. 그러면 주주와 투자자들이 조언을 해야 하는지, 투자된 것이 적절한 것인지 등을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울프의 해법은 충분하지 않다. 문제가 거액의 대출에만 국한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장경쟁의 더욱 광범위한 실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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